현대시 옛시방

선시(禪詩), 깨달음의 표정

모링가연구가 2008. 10. 2. 06:12

선시(禪詩), 깨달음의 표정

    

한시의 산책
      
    ♤ 선시(禪詩), 깨달음의 표정 ♤  
    詩爲禪客添錦花  禪是詩家切玉刀
       시는 선객(禪客)에게 비단 위 꽃이 되고                
       선(禪)은 시가(詩家)의 옥 자르는 칼이라네.             
    
    禪而無禪便是詩  詩而無詩禪儼然
       선이면서 선 없어야 그제서 시가 되고 
       시 속에 시 없을 때 선이 또한 엄연하다.  
    詩心何以傳  所證自同禪
       시심(詩心)을 무엇으로 전할 수 있나                   
       증명함이 절로 선과 같구나.                    
    學詩渾似學參禪  竹榻蒲團不計年 
    直待自家都了得  等閑拈出便超然 
       시 배움은 마치도 참선 배움 같거니                        
       대 걸상 부들자리 햇수를 따지잖네.                  
       스스로 온전히 깨침 얻기 기다려                           
       멋대로 읊조려도 문득 우뚝 하리라.     
    學詩渾似學參禪  頭上安頭不足傳 
    跳出少陵窠臼外  丈夫志氣本冲天               
       시 배움은 마치도 참선 배움 같거니 
       머리 위에 머리 얹음 전할 것 족히 없네. 
       두보의 굴레 밖을 뛰쳐서 나와야만 
       대장부의 뜻과 기운 하늘에 솟구치리. 
    學詩渾似學參禪  自在圓成有幾聯 
    春草池塘一句子  驚天動地至今傳
       시 배움은 마치도 참선 배움 같거니 
       자재롭고 원성(圓成)함 몇 연이나 있었던고? 
       사령운(謝靈運)의 지당춘초(池塘春草) 한 구절이 나오자 
       천지가 놀라 떨며 지금껏 전하누나. 
    學詩渾似學參禪  語可安排意非傳 
    會意卽超聲律界  不須煉石補蒼天
       시 배움은 마치도 참선 배움 같거니 
       말이야 안배해도 뜻은 못 전한다네. 
       깨우치면 그 즉시 성률 따윈 내던져서 
       달군 돌로 하늘 구멍 막아서는 안 되지. 
                        


      언어란 본래 부질없는 도구다. 말로 무언가를 설명하고 남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간다. 툭하면 오해를 낳고, 곁길로 샌다. 옛 시인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고 노래한 것은 진실로 까닭이 있다. 말을 매만져 표현을 가다듬는 것이 시가 아니다. 포단(蒲團) 위에 앉아 독경 소리 가다듬는 것이 참선이 아닌 것과 같다. 마음에 문득 와 닿는 것이 있으면 거침없이 토해내야 한다. 성률(聲律)이니 계율(戒律)이니에 얽매이지 마라. 뜻이 없이는 성률도 없다. 깨달음이 없이는 시도 선도 없다. 하늘에 큰 구멍이 뻥 뚫렸다고 돌멩이 가져다가 막을 생각은 말아라.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구차미봉(苟且彌縫) 하느니 붓을 꺾고 종이를 찢어, 혀를 물고 죽는 것이 낫다. 시와 선은 이렇게 해서 한 자리에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