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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모링가연구가 2012. 5. 31. 12:33

‘너는 소금이 되어라.’ 종종 어른들께서 후손이나 후배들에게 주는 인생 길잡이 가르침이다. 이세상 살아가면서 몸담고 있는 어느 곳에서든 꼭 필요한 사람, 기둥이 되라는 큰 뜻을 지닌 충고다. 이처럼 소금은 소중한, 고귀한, 꼭 필요한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때 등장하는 단어다. 소금은 우리 생명과 식생활에서도 똑같이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 맛있는 설탕을 삼가라더니 이젠 소금을 될 수 있는 한 적게 먹으란다. 조미료 글루탐산나트륨(MSG) 이 음식 맛을 돋우어 줄 뿐 아니라 한 때는 머리도 좋게 해준다고 거짓 선전까지도 서슴지 않더니, 이제는 건강에 해로울 수 있으니 이 조미료 사용을 삼가라고 말한다. 우연히도 이들은 모두 결정성 흰 가루로 우리에게 친근한 식품 첨가물이다.

 

 

소금의 화학명은 염화나트륨 (NaCl, 염화소듐) 이다. 염이나 간단히 나트륨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화학적으로 이들은 전혀 다르다. 소금 이외에도 염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나트륨(소듐)은 반응성이 큰 금속이다. 소금이 우리 혀에 닿으면 우리는 짜게 느낀다. 단맛을 주는 설탕 대체물은 여러 가지가 시중에 팔리고 있으나 소금 대체물은 아직 찾지 못했다. 물론 소금은 짠 맛의 공급원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식품의 갈무리에도 필수적으로 사용되었다. 야채, 생선, 육류 등 다양한 식품을 소금에 절여 미생물의 번식을 막아 이들을 장시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채를 소금에 절이면 야채가 수분을 잃어 부드러워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미생물이 고농도 소금과 접촉하면 견디지 못하는데 야채를 절이는 경우와 같은 이유에서다. 삼투압 현상으로 이를 설명한다. 세포 밖에 있는 소금의 농도가 짙으면 세포 속에 있는 물이 세포 밖으로 나가 세포 안팎의 삼투압이 같아지게 만들려는 현상이 일어난다. 따라서 병원균 등 박테리아가 번식하지 못하게 된다. 비료를 지나치게 주면 화초가 시들어 죽는 까닭도 같은 현상에 기인한다.


소금은 음식을 오랫도안 보존할 수 있게 해준다.

 

 

소금 없이 살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심장병 등 소금 섭취를 자제해야 하는 질환을 지닌 환자들은 의사의 지시에 따라 일체 소금섭취를 중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몸은 생리적으로 소금을 필요로 한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가 소금의 한 성분인 나트륨 이온을 조금이나마 필요로 하고 혈액과 근육은 더 많이 필요로 한다. 더구나 아무리 소금을 먹지 않아도 소변, 땀 등으로 잃는 소금의 양이 하루에 1 그램은 되므로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는 나트륨을 섭취하여야 한다.

 

간디의 소금행진


현실을 생각해보자. 생리학적으로 필요한 양만큼만 소금을 섭취하면서 음식 맛을 즐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음식 맛은 ‘간이 맞아야 제 맛이 난다’ 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짠맛에 익숙해져 있다. 어찌나 짠맛에 익숙해있는지 인류 역사상 소금 공급 때문에 전쟁과 싸움도 종종 있었다.

 

16 세기 후반에 시작해 1609 년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네덜란드의 반란은 이베리아 반도로부터 소금 수입이 방해를 받게 되자 더욱 힘을 얻게 되었으며, 1930 년 4월에 인도의 카티아워 해변에서 있었던 간디의 소금행진은 소금 소비에 세금을 부과하고 있던 영국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시작하였으나 후에는 해방 운동으로 발전한 역사는 너무나 유명한 얘기다. 10 세기경부터 베니스 공화국이 경제적 번성을 누리고 무역의 중심이 된 것도 소금무역이 중요한 몫을 담당했다. 그런가 하면, 아름답게 조각된 소금동굴이 가슴 아픈 역사를 되새기게 하기도 한다.

 

폴란드의 고도 크라코프 근교에는 아름다운 인공 암염동굴이 있으며, 그 속에는 작은 교회까지 만들어 놓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그러나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나치의 유태인 집단수용소가 있던 아우슈비츠시가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암염동굴의 아름다움 보다는 집단 수용소에 있던 유태인들이 이 숨이 막힐 것 같은 소금동굴 지하에서 중노동에 시달렸을 장면을 연상하며 가슴 아파하곤 한다.

 

 

소금은 오래 전 바닷물이 증발해 생긴 소금덩이들이 땅속에 묻혀 있는 소금바위인 암염을 채굴해 얻기도 하고, 우리나라 남서 해안에서처럼 소금물을 가두어 뜨거운 태양으로 물을 증발시켜 천일염으로 얻기도 한다. 이들 간에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소금을 한문으로 염(塩) 이라 부르는데 이 글자가 의미하는 바도 재미있게 풀이된다. 갯벌 (皿) 의 흙 (土) 위에서 인부 (人) 가 사각결정 (口) 소금을 모은다는 뜻인 모양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격언에는 ‘소금 없이는 싱겁기가 끝이 없겠네’ 하는 표현이 있다고 한다. 무슨 일을 훌륭하게 끝내려면 힘을 들여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단다. 맛을 돋우기 위해 음식에 소금을 뿌리는 동작의 중요성에 비유하고 있다. 또 ‘소금 한 통을 함께 먹었지’ 라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우정을 표현하는 폴란드의 격언도 있다. 자주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아 빵과 소금을 나누며 기나긴 세월 긴 정을 나누었기에 찬장  속에 두었던 소금 한 통을 다 먹어 치웠을 정도가 되었다는 재미난 표현이다.


염전에서 소금을 모으는 장면

 

 

소금 대체물이라고 흔히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제품은 염화나트륨과 염화칼륨(염화포타슘)의 1:1 혼합물이다. 염화칼륨은 염화나트륨처럼 우리 몸이 꼭 필요로 하는 성분이다. 그러나 이 염들을 특별히 따로 섭취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에 충분히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염화나트륨보다는 염화칼륨을 더 필요로 한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소금은 매우 건강에 해롭고 염화칼륨은 유익한 것처럼 선전이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나중에 설명하겠으나  독성 자체로 따지면 그 반대가 옳다.

 

소금은 체내에서 오줌으로 배출된다. 피가 콩팥을 지나 걸러지고 오줌이 배설될 때 우리 몸의 세포 내 소금의 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조절되고 나머지 소금만 배출된다. 소변의 배설, 소금의 양 조절 등은 뇌에 전달되는 신호에 따라 필요한 호르몬이 생산되어 콩팥에게 적절한 명령을 내린다. 예컨대, 바소프레신은 콩팥에게 소변 배설 중지 명령을 내려 탈수를 방지한다. 반대로 목마름을 느껴 물을 더 마시게 하는 메신저도 있다. 세포 내에는 칼륨(포타슘)이온이 더 많이 존재하며, 세포 내 효소의 활동을 조절한다. 나트륨 이온은 세포막 밖에 존재하며, 세포 내외 체액의 수분 함량이 균형을 이루도록 한다.

 

 

이 두 이온은 우리 몸에서 신경계의 전기신호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이 전기신호에 이웃사촌격인 나트륨 이온과 칼륨 이온이 관계하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우리 몸에 가장 많이 있는 무기질은 칼슘이다. 쉬고 있는 신경 축삭돌기막 밖은 양전하를, 내부는 음전하는 띠고 있으며 약 -50 밀리볼트의 전위차를 보여준다. 그러나 세포 안으로 나트륨 이온이 들어가고 칼륨이온이 세포 밖으로 방출되면서 전위가 0볼트를 거쳐 약 +50 밀리볼트까지 커진다. 그 다음 다시 휴식단계로 되돌아 간다. 신경 자극은 이 같은 편극 소거 전위차 변화가 신경을 따라 전파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을 아래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우리의 이해가 완벽하지 못하여 아직도 연구가 많이 필요하다. 아마도 인체 세포막을 나트륨 이온과 칼륨이온이 가장 신속하게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두 이온이 세포 내외에 존재하도록 인체가 진화했다고 추측한다.

 

 

이제 이야기를 염화칼륨으로 돌려보자. 우리 몸은 칼륨이온을 나트륨이온보다 40 퍼센트 더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일일 필요섭취량이 칼륨은 3.5 그램이고 나트륨은 1.5 그램이다. 씨와 견과에 칼륨이 많이 들어있다. 칼륨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으면 근육이 약화되어 심장 근육운동을 해친다. 칼륨의 만성결핍은 우울증과 정신적 혼란을 유발하기도 한다. 앞에서 염화칼륨이 염화나트륨보다 더 독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는 앞에서 설명한 신경자극 전달 메커니즘을 보면 잘 이해가 된다. 염화칼륨을 다량 주사하면 세포 밖의 칼륨농도가 크게 증가해 세포내부 칼륨이 세포막 밖으로 방출되기 어려워지므로 신경자극이 마비되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영국에서 실제로 소생이 불가능한 환자에게 염화칼륨을 주사해 생명을 잃게 한 의사가 살인죄로 처벌을 받은 예가 있다. 자기 장기를 기부하고 싶은 사형수에게는 이 방법이 일부 쓰인다는 보고도 있다. 장기가 손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바나나 팬케이크는 베이킹파우더(탄산수소나트륨)이 들어간다.
<출처 : louisana.gov>


끝으로 소금은 생명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할 뿐 아니라, 소금을 원료로 해 여러 가지 중요한 화학제품이 생산된다. 대표적인 예로 수산화나트륨 –흔히 가성소다라고 부른다- 과 염소기체가 있으며, 탄산수소나트륨–중조라고 칭한다-도 소금으로부터 만든다. 불행히 우리나라는 이 중요한 공업용 소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제 왜 어른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소금같은 사람이 되어라.' 라고 하시는지 이해할 듯하다.

 

 

 

진정일 / 고려대 화학과 석좌교수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시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화학과 석좌교수이며, 국제순수·응용화학연맹(IUPAC)과 한국과학문화진흥회 회장이다. 저서로 <교실 밖 화학이야기> 등이 있다. 한국과학상, 수당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