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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hur Hughes

모링가연구가 2011. 9. 27. 09:56

Arthur Hughes

[English Pre-Raphaelite Painter, 1832-1915]

 

The Young Poet

 The Young Poet
1849

Arthur Hughes: Self-Portrait
 Self-Portrait
1850-51

Portrait of an Elderly Woman
 Portrait of an Elderly Woman
1851

Ophelia
 Ophelia, 1852, retouched 1857-58

 

"버드나무가 비스듬히 서 있는 시냇가의 거울 같은 물위에 하얀 잎새가 비치고 있는 곳이란다. 그곳에서 그 애가 미나리아재비, 쐐기풀, 실국화, 연자주색 난초 따위를 엮어서 이상한 화환을 만들었구나. 이 자주색 난초를 음탕한 목동들은 상스런 이름으로 부르지만 청순한 처녀들은 ‘죽은 사람의 손가락’이라 부르지. 아무튼 그 애가 화관을 쓰고 와서 늘어진 버들가지에 올라가 화관을 걸려고 할 때 심술궂은 은빛 가지가 갑자기 부러져서 오필리어는 화관과 함께 흐느끼는 시냇물 속에 빠지고 말았어. 그러자 옷자락이 물위에 활짝 펴져 인어처럼 잠시 수면에 떠 있었다는구나. 그 애는 마치 인어처럼 늘 부르던 찬송가를 부르더라. 마치 자신의 불행을 모르는 사람처럼, 아니 물에서 나서 물에서 자란 사람처럼 절박한 불행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야. 하지만 그것도 잠깐, 마침내 옷에 물이 스며들어 무거워지는 바람에 아름다운 노래도 끊어지고 그 가엾은 것이 시냇물 진흙바닥에 휘말려 들어가 죽고 말았지."


왕비 거트루드는 아들 햄릿의 연인이었던 오필리어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햄릿이 오필리어의 아버지 재상 폴로니어스를 왕으로 착각하고 죽이는 순간 아버지와 연인을 동시에 잃은 그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미쳐서 자살을 택하게 된 것이다.

아더 휴즈(Arthur Hughes, 1832~1915)의 <오필리어>라는 작품에서는 아름다운 모습보다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그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림에 묘사된 오필리어는 세속의 인간이라기보다는 요정이나 인어에 가까우며 이국적인 배경과 온기가 느껴지지 않은 창백한 얼굴에서 더욱 어둡고 무거운 느낌을 자아낸다.

Benedick in the Arbor
 Benedick in the Arbor
1852-54

The Long Engagement
 The Long Engagement
1853-55

Fair Rosamund
 Fair Rosamund
1854

Edward Robert Hughes as a Child
 Edward Robert Hughes as a Child
1854-55

April Love
 April Love
1855-56

Home from Sea
 Home from Sea, 1856-57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될 때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내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수 있을까?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큰 병이 들면 전 재산을 다 날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식구를 낳게 하기 위해 전 재산을 포기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가끔 늙거나 병 든 가족을 내버리는 사람들이 뉴스에 오르내립니다만, 그런 사건이 뉴스거리가 된다는 것 자체가 아직 우리 사회가 돈보다는 가정을 중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물론 그런 종류의 가족 해체가 빈발할 정도로 사회 안전망이 부실한 우리 공동체의 현실을 먼저 반성해야 하겠습니다만.
간혹 보험에 든 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목숨을 끊는 사람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압박이 너무도 컸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겠지만, 그런 이들은 가족에게 그 자신의 가치가 보험금보다 훨씬 큰 것임을 순간적으로 망각한 이들이라 하겠습니다. 아무리 자본주의의 최전선을 달리는 사회라고 하더라도 가족의 행복과 건강, 안위보다 돈이 더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돈뿐 아니라 인생의 그 어떤 목표나 일도 가족보다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가족보다 중요한 그 어떤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결혼한 사람이라면, 그가 제아무리 원대한 이상을 가졌다 해도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사람일뿐입니다. 우리가 가족을 뒤로 물릴 수 있는 순간이란 내가 불가피하게 타인의 생명과 존엄을 위해 희생을 하지 않으면 안될 때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가족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행하는 것이 가족 구성원의 기본적인 도리라 하겠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성심껏 노력을 한다고 해서 항상 우리가 원하는 대로, 뜻하는 대로, 가족의 안위와 행복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라는데 있지요. 남아시아 일대를 강타한 참혹한 쓰나미 재해에서 보듯 갖가지 재난과 사고로 가족을 잃거나 가정이 붕괴되는 모습을 우리는 빈번히 봅니다. 생로병사의 주어진 운명 자체도 그 때를 알 수 없기에 우리의 간절한 노력을 무위로 만들 때가 있습니다.
영국 화가 아더 휴즈의 <바다에서 돌아온 아들>은 사랑하는 어머니를 생각보다 일찍 여의고 큰 슬픔에 빠져 비통해하는 젊은이를 그린 그림입니다. 배경은 작은 교회 뒤뜰입니다. 비석들이 이리저리 기울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뜰의 용도가 묘지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전경에 선원 복장을 한 젊은이가 엎드려 울고 있고 그 옆에 검은 옷을 입은 그의 누이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듯 앉아 있습니다. 자신이 바다로 나가 있는 사이에 돌아가신 어머니. 젊은이는 자신이 가족을 충실히 뒷바라지할 만큼 성장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렇듯 효도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너무도 아쉽고 애석할 따름입니다. 아버지의 모습 또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버지는 더 일찍 돌아가셨나 봅니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이 오누이를 기르느라 홀몸으로 엄청난 고생을 하셨을 겁니다. 그 보람도 없이 이렇게 일찍 스러지신 어머니. 아들의 통곡이 볼수록 더 서럽게 다가옵니다.
아버지의 부재 하에 서로 격려하고 노력해왔으나 이제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상황에서 이 가정에 드리워진 외로움은 더욱 짙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남매는 서로에게 큰 의지가 될 것이고, 부모님의 덕과 사랑, 교훈은 이들의 삶을 끝까지 지키는 등대가 될 것입니다. 가족의 사랑, 가족의 힘이 위대한 것은 다친 상처가 아물어 새 살이 돋듯 시련을 겪은 가정도 그 사랑 위에서 곧 안정되는 복원력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이 오누이는 성가해 새로 얻은 식구들과 함께 어머니 묘소를 다시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들려주겠지요. 그 이야기를 통해 가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다시금 깊이 깨달을 것입니다.


이주헌

The King's Orchard
 The King's Orchard
1857-58, retouched in 1859

The Annunciation
 The Annunciation
1857-58

The Nativity
 The Nativity
1857-58

The Knight of Sun
 The Knight of the Sun
1859-60

The Woodman's Child
 The Woodman's Child
1860

Home from Work
 Home from Work
1860-61

That Was a Piedmontese
 That Was a Piedmontese
1861-62

The Rift within the Lute
 The Rift within the Lute
1861-62

Bedtime
 Bedtime
1861-62

La Belle Dame Sans Merci
 La Belle Dame Sans Merci
1861-63

A Music Party
 A Music Party
1861-64

The Mower
 The Mower
1861-65

The Lady with the Lilacs
 The Lady with the Lilacs
1862

Silver and Gold
 Silver and Gold
1862-64

The Font
 The Font
1863-64

Ophelia

 Ophelia
1863-64


Mrs. James Leathart and Children
 Mrs. James Leathart and Children
1863-65

In the Grass
 In the Grass
1864-65

The Guarded Bower
 The Guarded Bower
1864-66

Good Night

 Good Night, 1865-66

 

봄날
밝아오는 무렵

아침 7시,
언덕 한켠에는 진주같은 이슬.

종달새, 하늘을 날고
달팽이는 가시 위를 기어간다.

신, 하늘에 계시니
온누리는 모두 평화롭도다.


앞부분은 생략......



영국의 빅토리아조 대표시인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의 극시 「피파가 지나간다」(Pippa Passes:1841)라는 작품이 생각난다. 베니스의 실크 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소녀 피파는 1년 중 단 하루의 휴가날 아침, 한껏 희망과 기대에 차서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침의 노래,’ 또는 ‘봄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자주 인용되는 시는 사실은 이 장시(長詩)의 제일 첫 부분이다. “계절은 봄이고/ 하루 중 아침/ 아침 일곱시/ 진주 같은 이슬 언덕 따라 맺히고/ 종달새는 창공을 난다/ 달팽이는 가시나무 위에/ 하느님은 하늘에/ 이 세상 모든 것이 평화롭다.”

피파는 이 마을에서 가장 ‘행복한’ 네 사람의 삶을 동경하며 차례차례 그들의 창가를 지나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피파가 부와 권력을 기준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사실 제각기 극심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은 이들의 영혼을 구하는 것은 피파와 그녀의 노래였다. 불륜을 범하고 살인까지 한 오티마와 세발드는 피파의 노래를 듣고 자신들의 죄를 회개, 자백하기로 결심하고, 속아서 창녀의 딸과 결혼한 줄스는 아내를 버리려다가 피파의 노래 소리에 새로운 사랑을 발견하고, 난폭한 폭군을 암살하려던 계획을 포기하려던 루이기는 피파의 노래 소리에 다시 자신의 이상과 사명을 깨닫고, 속세의 악에 항복하려던 늙은 성직자는 피파의 노래를 듣고 다시 자신을 재무장한다.

날이 저물고, 자신이 네 사람의 영혼을 구한 것도 모른 채 피파는 단 하루뿐인 휴가를 헛되이 보낸 것을 슬퍼하며 고달픈 내일을 위해 다시 잠자리에 든다.

어차피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행복을 얻기 위해 남보다 더 많은 재산 차지하고 권력 한번 잡아 보겠다고 온 세상이 시끌벅적하다. 그렇지만 진정한 가치와 행복은 우리들이 그냥 스치는 작은 순간들--무심히 건넨 한 마디 말, 별 생각 없이 내민 손, 은연중 내비친 작은 미소 속에 보석처럼 숨어있는지도 모르겠다.

(장영희 / 서강대 영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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