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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지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할 무렵. 둥, 둥, 둥, 둥, 둥둥둥둥… 법고 소리가 잦아들고 나면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인간이 고안해낸 언어로는 이 소리의 근사치도 표현해낼 수 없습니다. 미세한 파동을 일으키며 공간으로 스며드는 소리의 꼬리, 그 묘한 여음의 물결은 한국의 범종만이 지닌 아름다움이기도 합니다. 시간의 사슬에서 풀려난 소리가 공간과 일체를 이루고 나면, 스님들의 예불문과 반야심경 독송이 이어집니다. 하늘과 땅, 자연과 인간, 밤과 낮이 온전히 하나가 되는 순간입니다.
‘비를 맞지 않고 도량을 다닐 수 있는 절’
송광사의 창건은 신라 말 혜린(慧璘) 선사에 의해서입니다. 지금처럼 큰 규모도 아니었고 이름도 길상사였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버려지다시피 하다가 보조 지눌 스님이 이곳으로 오고부터 면모를 일신했습니다. 보조 스님이 타락한 고려 불교를 다시 일으키고자 33세에 팔공산 거조암에서 조직한 정혜결사의 근거지를 43세가 되던 해인 1200년에 이곳으로 옮긴 것입니다.
이후 스님은 선(禪)과 교(敎)의 합일을 수행의 근본으로 삼는 조계선을 선양하니 곧 오늘날 조계종의 연원입니다. 보조 스님 이후 송광사에서는 조선 초기까지 16분의 국사를 배출했고, 근세에서 효봉, 구산 같은 스님이 승보 사찰의 전통을 튼튼히 다졌습니다. 이리하여 송광사는 지금도 승보종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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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를 둘러싼 조계산 자락의 산세는 부드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것을 닮아서인지 송광사 스님들의 거동은 진중하면서도 부드럽습니다. 조계산 서쪽의 피아골과 홍골이 합쳐 이룬 계류는 사역의 남서쪽을 부드럽게 휘감고 흐릅니다. 이처럼 송광사는 산과 물과 사람이 일체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송광사는 대찰이면서도 석탑이나 석등과 같은 석조 문화재가 없습니다. 승보사찰이어서 의도적으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규모의 절이 의도 없이 그랬으리라 보기도 힘듭니다. 다 아는 것처럼 석탑의 기원이 석존의 사리를 모신 데서 비롯한 것을 미루어 보면 의도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불교에서 말하는 불(佛)·법(法)·승(僧) 삼보는 셋이면서 하나고 하나이면서 셋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부처로부터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계승한 승가집단이 비롯됐지만, 승가가 없으면 앞의 둘도 호지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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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광사를 승보 종찰로 일으켜 세운 보조 국사 사리탑. 송광사의 첩첩 건물의 진면모를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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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석조 장엄물이 없는 이유를 풍수적 상상력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관음전 뒤 보조국사 사리탑에서 절을 바라보면 마치 한 송이 연꽃이 피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왓골 가지런한 전각의 지붕들은 하나하나가 꽃잎인 양합니다. 따라서 이런 꽃잎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석조 장엄물을 세우지 않았나 하는 것이지요.
위의 두 가지 얘기 모두 억지로 꿰어 맞춘 얘기라 쳐도, 분명한 어떤 의도가 있었으리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듭니다. 절의 사실상 입구격인 우화각 아래의 무지개다리, 계류와 몸을 맞댄 사자루와 임경당의 석축, 아예 계류에 발을 담근 돌로 만든 긴 주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석재에 대한 의존도가 아주 높은 건축 공간이 송광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도량을 살피자 재미있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송광사에는 그 어느 절보다 정교하고 다양한 형태의 석축과 돌담이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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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웅보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앉아 있는 관음전. 방장실인 상사당과 그 아래의 하사당으로 가는 입구이기도 하다. 활짝 열린 공간이면서도 홀로 고즈넉한 느낌을 자아내는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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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고각하(照顧脚下·발밑을 살피라는 말로, 일상을 반듯이 하라는 뜻)하는 심정으로 찬찬히 도량을 둘러보았습니다. 쌓은 이의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돌들이 마당과 석축과 담장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대웅전 뒤 석축은 큰 돌과 작은 돌을 정교하게 그레질하여 쌓았고, 도성당은 담장을 허물고 자라는 나무를 피해 돌과 진흙을 섞어 쌓았습니다. 그 옆 국제선원은 기와를 켜켜이 넣은 토담으로 운치를 더했습니다. 산신각 뒤로 절을 감싼 돌담은 막돌을 있는 그대로 쌓아 올렸습니다. 목우헌의 석축과 돌담 위로는 담쟁이를 올려 돌에 온기를 더해 주고, 계곡을 건너 화엄전으로 오르는 계단은 막돌을 무심히 던져 놓은 듯한 모습으로 자연스러움의 극치를 보여 줍니다.
내친걸음에 부도전으로 올랐습니다. 편백과 대나무 사이 돌담은 마치 농가의 그것처럼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해줍니다. 부도전에 이르자 갖은 정성을 다한 돌담과 율원(律院)을 에워싼 막돌담의 천연한 아름다움이 이루는 조화는 세상 그 어떤 석탑보다 장엄해 보였습니다. 돌 하나도 허투루 다루지 않고 생긴대로의 쓸모를 찾은 그 모습에서 나는,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다시금 새겨보았습니다.
한국 전통 건축양식의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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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웅전 앞을 지나는 스님들의 안행(雁行, 기르기처럼 한 줄로 걷는 것). 송광사 스님들의 절고와 위엄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허리를 숙이게 한다.
- 무량수전으로 널리 알려진 부석사를 한국 고건축 박물관으로 부르는 모양입니다. 같은 관점에서 송광사를 보자면 한국 전통 건축양식의 박물관이라 할 만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전각들이 나름의 구실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근년에 지은 건물에서도 고격을 느끼기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송광사를 다시 찬찬히 둘러보면서 건물의 규모나 의장적 아름다움보다는 기단이나 석축과 같은 바탕의 튼실함에서 우리 전통의 진정한 뿌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