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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 대한불교 조계종 선종대찰 월출산(도갑사 道岬寺)-5

모링가연구가 2011. 8. 22. 17:11


산세가 빼어나고 풍광이 아름다워 옛부터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월출산, 호랑이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는 형상이라는 산자락 아래 자리잡고 있다.
신라의 4대 고승 가운데 한 분이신 도선(道詵)국사께서 창건하신 대가람으로그 뒤를 이은 수미왕사와 연담선사, 허주선사, 초의선사 등 역대 고승대덕들이 주석 하시면서 깨달음의 참다운 이치를 널리 펼치셨다.해탈문(국보 제50호)과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 문수 보현보살 사자코끼리상(보물 제1134호), 5층석탑(보물 제1433호),대형석조, 그리고 도선수미비 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고찰이다.
도갑사의 역사는 월출산 남쪽 도갑산(해발 376m)을 등지고 주지봉을 바라보는 넓은 산자락에 자리잡은 도량으로 신라말 헌강왕 6년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현재 고려시대의 기록은 자료 유실로 알려진 것이 없고 조선 이후의 발자취는 소상히 남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원의 중창은 1456년(세조2년) 수미(守眉)왕사에 의해서였다.
수미왕사는 왕실의 어명을 받들어 국가적 지원으로 966칸에 달하는 당우와 전각을 세웠고, 부속 암자만 해도 상동암, 하동암, 남암, 서부도암, 동부도암, 미륵암, 비전암, 봉선암, 대적암, 상견암, 중견암, 하견암 등 12개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사원중창은 그 후로도 계속 진행되었는데 '억불숭유'의 열악한 사회적 여건 속에서도 대규모의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도갑사가 불교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그 후로도 사원의 중수는 계속 이어져 1677년(숙종3년)에는 당간석주를 세웠고 1682년에는 대형 석조(石槽)를 조성하였다. 18세기 중엽에는 연담 유일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당시 불교사전이라 할 수 있는 '석전유해'를 편찬하였다. 그런데 19세기 이후의 연혁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가 유실되었으며, 그나마 남아있던 것들도 일제시대와 6.25전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었다. 더구나 1977년 참배객들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 화려하고 아름다운 대웅보전과 안에 모셔져 있는 많은 성보들이 소실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1981년 대웅보전 복원을 시작으로 차츰 옛 가람의 복원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2004년 주지로 부임 月佑화상에 의해 "대웅보전"이중창되어 2009년 4월11일낙성식을 갖는 등 유관기관의 역사적 검증을 거친 복원불사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대가람에 걸맞게 눈푸른 납자을 양성하기 한 수행환경을 위해 選佛場(선불장)개창하려고 한다.
(이상은 불교tv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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