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서예 방

운여 김광업[1906-1976]

모링가연구가 2009. 3. 12. 06:20


 


 


 


 


 


 


 


 


 


 


 


운여 김광업 선생님은 안과 의사셨고 한국 10대 서예가 의 한사람으로
회자되신 훌륭한 예술가 셨읍니다.
선생은 일직이 경성제대 의학부[현 서울대]를 졸업 하시고 평양에서 안과 의사로
구름같은 환자를 보시다 해방후 부인과 어린 자식들을 뒤로 한채 세아들과 38선을 넘어
남하 하셨읍니다.
부산 시청앞 중앙동 에서 안과를 개원 하시고 통일이 되면 가족과 만날 생각을 하셨지만
생전에 소원을 이루시지 못하시고 세상을 뜨시고 말았읍니다.
큰 아드님은 북진할대 가족을 만나기 위해 군에 입대 하셨지만 만나지 못하시고 그 길을
찾기위해 이민 하셨고 둘째 아드님은 나의 한해 선배로 안과의국에서 함께 공부하셨읍니다.
김광업 선생님의 동생 되시는 김중업 선생님은 건축가로 훌륭한 건물을 많이 설계하셨고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셨읍니다.
나와의 인연은 이렇게 안과의국 생활을 하면서 시작된 셈이지요.
당시 선생님이 그렇게 훌륭하신지 몰랐읍니다.
결혼할때 축하 글씨를 써 주셨고 도장도 몇개 새겨서 아드님 편에 전해 받앗지만 그 가치를
모르는 무례를 범했읍니다.
얼마후 당시 신동아에 한국의 10대 서예가가 소개 되었는데 김광업 선생님이 계셨고
특히 고문자를 누구보다 해박하게 구사하시고 전각에술에 조예가 있음을 소개 하였읍니다.
더구나 누구도 따를수 없는 고문헌에 대한 연구는 그를 독보적인 위치로 그의 감정이 필요한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선생은 생이별한 가족 대문에 평생 혼자 사시며 흥사단에 전 재산을 헌납 하고 계셨고
스님같은 도사로 사셨읍니다.
누구나 원하면 글씨를 주셧고 돈과 교환하지 않았읍니다.
고귀한 선생의 얼이 긷든 글씨와 예술을 여기 소개하려 합니다.
진난핸가 서울 에술의 전당에서 회고 초대전을 하셨는데 집사람과 함게 상경하여 자제분인
김희철 선생님과 오래 이야길 나눴던 기억이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