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화가·판화가. 파리 출생. 가구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나 1885년부터, 스테인드글라스 수리기술을 배우기 위해 도제(徒弟)가 되는 한편, 장식미술학교의 야간학교에서 공부했다. 1890년 회화에 전념할 것을 결심하고, 에콜 데 보자르에서 G. 모로에게서 배웠다. 1898년, 모로가 죽은 뒤, 모로미술관 관장으로 있었으며, 1903년의 살롱 도톤(Salon d'Automne)의 창립에 참가했다. 제1차세계대전 전후에 이르는 초기에는 스승 모로의 작품의 영향 아래서 수채화를 주로 한 폭넓고 동적인 필촉, 청색을 기조(基調)로 하는 색채, 사회적인 불의에 대한 노여움과 슬픔을 어릿광대·창부·재판관, 교외에 사는 가난한 사람 등을 주제로 묘사하였다. 《거울 앞에서(1906, 파리국립근대미술관 소장)》 등이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야수파, 또는 피카소의 <청색시대>와도 유연성을 갖지만, 독자적인 정신성을 구비하고 있어서 프랑스에서의 표현주의의 태두라고 볼 수 있다. 1917년, 그는 화상(畵商) C. 보라르와 전속계약을 체결한 뒤 《미제레레(1917∼27년 제작, 48년 간행)》 등의 연작판화집 제작에 몰두했다. 유화를 중심으로 하는 루오의 중기(中期)의 제작도 이 무렵에 시작되었다. 초기의 죄·절망의 표현과는 달리 조용한 내면적인 세계가 그려졌다. 특히 1930년대 이후 그리스도교적인 테마가 많아졌는데, 그러한 것이 이따금 어릿광대·재판관·교외의 가난한 사람들 등의 테마와 합체(合體)되어 구원과 은총의 세계로 변하여 중세 르네상스 이후, 참된 의미의 종교화가로서의 루오의 세계가 이루어졌다. 대표작은 《베로니카(1945, 파리국립근대미술관 소장)》 등이며 아시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도 주목을 끈다. 1952년경부터 만년의 작품은 주제도 다양해졌으며, 색채 또한 빨강·노랑 등이 많아져 마티에르의 깊이와 맞물려서 휘황찬란한 광채를 낳았다. 1958년 2월 13일 파리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 국장(國葬)으로 장례식이 치러졌다. 작품으로는 연작판화집 《유성의 서커스(1938)》 《수난(受難, 1929)》 외에도, 리소그래프 삽화가 있는 《사적(私的)인 추억(1925)》 《독백(1944)》 등의 저작도 있다. 죽은 뒤 미완(未完)의 작품 약 200점이 파리국립근대미술관에 소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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