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모음방

도둑맞은키스

모링가연구가 2009. 1. 22. 17:03
Jean-Honoré Fragonard, 사랑의 샘 The Fountain of Love, 1785
 
사랑은 보여줄까, 보여주지 말까의 게임이다. 즉, 가장 깊숙이 숨기고 있던 비밀들의 폭로이다. 그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는 사랑 속에서 너무나 찰나적으로 일어난다. 바보처럼 모두 고백해 버리고,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모두 보여주고 만다. 비밀의 한 부분을 털어놓고 한 부분만 보여주는 것일지라도 사실 모두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랑을 하게 되면 그처럼 자신을 폭로하고 싶어진다. 자신을 보여주는 것은 사랑의 끝없는 시작이다. 사랑의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는 매우 점잖고 고지식한 사람이었지만 그림을 그릴때만은 연인들의 비밀스러운 열정을 누구보다도 과감하게 그린 화가였다. 그의 그림을 보면 빛과 어둠, 대사와 침묵, 보여주는 비밀과 보여주지 않는 비밀의 게임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프라고나르는 스승이었던 18세기 프랑스 회화의 거장 프랑수아 부세와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의 연결 고리이자 18세기 프랑스의 바로크 회화와 19세기 신고전주의 회화의 가교 역할을 하는 화가이다. 동시대에 활동하며 연인들의 열정을 주로 그렸던 앙투안 와토와 매우 유사한 시대적 감정을 그리고 있지만 와토의 연인들은 우아하고 기품이 있는 반면 프라고나르의 연인들은 방탕하고 속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라고나르의 그림이 속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물감의 기법과 그림의 생동감이 특별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카르페 디엠이라고 불리는 이 기법은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한순간을 포착하여 가볍게 그리는 화법을 선보인다. 색을 중첩시키지 않고 가벼운 색의 터치로 마치 색과 함께 이미지가 캔버스에서 증발하는 느낌이 나도록 그리는 것이다.
 
The Swing
Jean-Honoré Fragonard, 그네 The Swing, 1767
 
1767년의 작품 <그네 타는 여인의 행복한 우연>은 이와 같은 기법을 볼 수 있는 유명한 그림으로, 그네를 타는 여인이 떨어뜨리는 신발은 지극히 빨리 지나가는 시간, 증발하는 듯한 순간을 그리고 있다. 여인의 의상 또한 무겁게 인물을 내리누르지 않고 인물과 함께 불타오르는 듯 보인다. 이런 느낌은 여인을 둘러싼 숲의 풍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화가는 타오르는 불길처럼 나무를 표현했다. 배경의 희미한 숲도 불이 난 숲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같은 느낌을 준다. 이 가운데 가장 주된 포인트는 공중으로 날아가는 신발 한 짝이다. 신발은 항상 귀족들의 정숙한 자세와 인격의 품위를 드러내는 소재였다. 그러나 그 신발은 벗겨져 공중으로 내던져졌고 그와 함께 멀리 날아간 것은 귀족들의 체면과 전통의 무게이다. 프라고나르의 물감 속에는 이처럼 폭로의 순간들이 진하게 녹아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 그림을 주문한 화상 드 생 줄리앙의 요구이다. 가톨릭 주교가 여인이 타는 그네를 밀도록 하고, 공중으로 올라간 여인의 두 다리가 드러나 보이도록 그려달라고 주문했던 것이다. 그림의 왼쪽에서 두 다리를 올려다보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림을 주문했던 드 생 줄리앙의 모습이다. 그와 주교 사이에서 그네를 타는 여인. 의미심장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분명 사연이 있는 그림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 사연이란 다음과 같다. 여인은 고상한 귀부인으로 매일 주교와 함께 속내를 이야기하며 산책을 즐겼다. 어느 날 그녀는 주교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평소처럼 정원을 거닐다가 문득 그네를 발견한다. 아무도 보지 않으리라 안심한 여인은 마음이 동해 주교에서 그네를 밀어달라고 부탁한다. 주교는 어린아이를 태우는 기분으로 그네를 힘껏 밀었다. 그러나 속마음으로는 아름다운 귀부인과의 달콤한 밀회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공중으로 날아올라간 여인은 뜻밖에 건너편 덤불 숲 아래 숨어서 자신을 훔쳐보고 있던 한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남자는 숲속에서 몰래 여인을 따라다니다 갑자기 그네를 타고 올라온 여인에게 발각된 것이다. 그는 놀랐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네가 올라갈 때마다 훤히 드러나는 여인의 두 다리와 속옷이었다. 남자는 그 행운에 당황하지만 그네는 계속 밀려 올라가고 그 장면은 되풀이되었다. 이제 두 사람은 주교 모르게 사랑의 게임을 즐기기 시작한다. 여인은 그네가 밀려 올라갈 때마다 좀더 과감하게 다리를 들어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며 성적인 흥분에 상기되고, 남자는 점점 농도를 더해가는 여인의 은근한 노출을 올려다 보며 격한 흥분에 사로잡힌다. 두 사람의 볼이 발갛게 달아오를 즈음 여인은 일부러 신발 한 짝을 벗어 공중으로 휙 내던진다. 그 남자에게 그날 밤 신발을 들고 침실로 찾아오라는 징표인 것이다. 바야흐로 불같은 연정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림을 부탁했던 드 생 줄리앙은 수줍음에 귀부인을 찾아가지 못하고 그 대신 프라고나르를 찾아와 이와 같은 그림을 주문했다. 그는 그림을 들고 부인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사랑을 그리는 화가 프라고나르는 이런 연정의 사연을 한순간의 장면 속에 모두 담아내고 있다. 이그림으로 인해 프라고나르는 금세 명성을 얻었고 비슷한 그림을 그려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Jean-Honoré Fragonard, 빗장 The Bolt, c. 1778
 
그러나 그가 단순히 사랑의 게임만을 그리는 삼류화가로 전락하지 않았던 것은 색을 구사하는 탁월한 화법 때문이었다. 프라고나르의 붉은색은 실제로 흉내낼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이다. 붉은색을 이토록 화려하고 생동감 있게 그려낸 화가가 과연 있었던가. 그의 붉은색에는 다양한 심리적 표현이 들어 있다. 이 그림에서 보면 홍조는 여인의 옷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연인의 뺨에서도 붉게 달아오르고 있다. 가슴을 뛰게 만드는 흥분과 부끄러움에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는 감정, 그와 동시에 한꺼번에 밀려오는 기쁨의 심리 상태, 사랑의 육체의 정열과 뒤섞일 때 드러나는 참을 수 없는 갈증과 열기가 두 연인의 뺨에 어린 그 붉은색에서 타오르고 있다. 프라고나르의 다른 작품 <걸쇠>를 보면 침대 위로 무겁게 드리운 붉은 커튼에서 또 다른 사랑의 감정이 진하게 전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성적으로 흥분한 두 연인의 심리가 죄책감이 뒤석인 진한 타락의 느낌으로 그 붉은 커튼에 배어 있다. 누구나 그 둘의 관계가 불륜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커튼의 붉은색 때문이다. 불길하며 그 연정의 말로가 비극으로 끝날 것 같은 긴장감이 무겁게 드리워진 커튼 위로 흐르고 있다. 여기서 붉은색은 피와 죽음을 상징한다. 프라고나르가 붉은색은 피와 죽음을 상징한다. 프라고나르의 삶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후대에 루브르 박물관이 된 18세기 튈르리 궁의 회화박물관 관장을 지냈고, 그 안에서 평생 거주하며 미술관을 경영하고 오늘날 큐레이터가 하는 일들을 그 시대에 처음으로 했던 인물이었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런 독특한 이력으로 인해 프라고나르는 고전 회화들을 쉽게 접하며 오묘한 회화의 색을 쉽게 연구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고전 회화 속에서 남들이 보지 못한 주제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고전 회화의 본질적 주제가 남녀간의 사랑이라고 결론을 내린 듯하다. 여기에는 그 당시 귀족 사회의 경박한 사랑 놀이와 유흥을 위해 예술의 전 장르가 발전한 시대적 분위기도 작용하고 있다. 당시에 연극과 오페라가 성행했던 것도 타인의 사생활을 엿보는 취향이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The Stolen Kiss 
Jean-Honoré Fragonard, 도둑맞은 키스 The Stolen Kiss, 1787 - 1789
 
저속한 성적 유희의 취향은 회화에까지 영향을 미쳐 연인들의 사랑 장면을 그리는 춘화의 주문이 쇄도했다. 당시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화가에게 바랐던 것은 오늘날 대중이 가수들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흥분을 맛볼 수 있는 가장 탁월한 묘책은 사랑이다. 자극적인 사랑이 담긴 그림은 순간적으로 권태를 깨뜨리는 재미를 준다. 그것은 훌륭한 오락이며 고달픈 인생에 해방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일종의 구원인 셈이다. 인생이 던지는 권태의 무게를 견뎌낼 장사는 없다. 권태는 병이며 그 병을 치유하는 약은 사랑밖에 없다. 아무 자극 없는 인생만큼 비참한 것도 없다. 사랑이 없는 인생은 곧 병든 인생이다. 그래서 '사랑의 묘약'이란 말이 있는 것일까. 사랑의 묘약은 오페라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바로 당신 손이 닿는 곳에 그 약이 놓여 있다. 권태 속에 머물지 말고 붉은 비단 신을 던져야 한다. 당신의 속을 보여주지 않으면 에로스 또한 당신을 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