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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술접대·

모링가연구가 2008. 9. 30. 06:39

[중국-북한 접경지대 현장취재]

중국에서 술접대·

매춘(賣春)하러

밤마다 강을 넘는

북한 여성들

중국 국경도시에서

휴대전화로 북쪽과 흥정

가격 맞으면「쭈부」타고 강 건너

김성남(월간 조선) 기자 

 

 

 

북한 여인들이 강을 건너고 있다.

 

 

두 배로 오른 북한 아가씨 값

 

『장사장, 아니 뭐가 그렇게 비싼가? 매번 1000위안(13만원)만 주면 넘어왔잖은가 말이오. 아무튼 아가씨 한 명 보내줄 수 있는가, 아닌가』
 
  지난 3월19일 압록강에 맞닿아 있는 중국 국경도시의 한 K-TV(중국式 가라오케). 조선족인 김재원(50·가명) 사장은 10여 분간 휴대전화로 흥정을 했다. 그가 「장사장」이라고 부르는 남자는 북한에 있는 渡江(도강) 브로커였다. 김사장의 휴대전화 너머로 『날이 풀려서 힘들다 말이오』라는 북한 사투리가 몇 차례 들렸다. 북한의 渡江 브로커와 전화통화를 끝낸 후 김재원 사장은 『내 참, 북한 아가씨 한 명 부르는데 2000위안을 어떻게 주냐』면서 나를 쳐다봤다.
 
  ─평소보다 가격이 올랐습니까.
 
  『네, 두 배 넘게 비싸졌어요. 넘어오기가 힘들어지니까, 아주 지들 맘대로 가격을 부르네요. 어이가 없어서』
 
  ─가격이 비싸진 이유가 있나요.
 
  『요새 날씨가 풀려서 압록강의 얼음이 녹았다는 거 아닙니까. 겨울에 얼음이 얼었을 때는 쉽게 강을 건넜는데, 지금은 강을 건너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쭈부」(튜브)를 타고 넘어와야 합니다. 쭈부 한 번 타는데 중국 돈으로 200위안이니까, 왕복 400위안을 더 줘야죠』
 
  ─그러면 400위안만 더 주면 되잖습니까.
 
  『북한 주민들이 강을 건너서 중국으로 한 번 넘어오는데 200위안 정도를 국경경비대에게 줍니다. 그런데 쭈부를 타려면 북한 브로커가 국경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돈을 더 줘야 합니다. 일종의 위험 수당이죠. 그래서 가격이 두 배 넘게 높아지는 겁니다』
 
  나는 김재원 사장에게 『2000위안을 줄 수 있으니, 북한 아가씨를 불러 달라』고 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취재를 왔는데,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김사장은 다시 북한에 있는 브로커에게 전화를 했다. 중국 현지시각 밤 10시. 강 건너 북한땅은 달빛만이 존재하는 暗黑(암흑)이었다. 암흑의 땅에 있는 渡江 브로커는 김재원 사장에게 「내일 젊은 여성 한 명을 K-TV로 보내겠다」고 했다.
 

『전화하면 북한 여성들 가라오케로 와』
 

북한 보위부원에게 심문을 당하는 북한 여인의 모습(일본 후지TV방영).


지난해 나는 중국 요령省과 길림省 일대에 취재하러 갔다가, 김재원 사장을 처음 만났다. 조선족 사업가인 김사장은 저녁식사를 하며 마신 빠이주(백주)가 얼큰해지자 『북한 에미나이들이나 부르자』고 말했다.

나는 김사장의 말을 「중국에 살고 있는 북한 여자들을 부르자」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김사장이 말한 「북한 에미나이들」은 북한에 살고 있는 북한 여성들이었다.

북한에 있는 브로커를 통하면 북한의 젊은 여성들을 중국 가라오케로 부를 수 있다는 얘기였다. 김재원 사장의 이야기다.

『3~4년 전부터 중국과 북한 접경지대에 살고 있는 북한 여성들이 중국으로 출장 접대부를 하러 강을 넘습니다. 일부 여성들은 단순 술접대뿐만 아니라, 이른바 「2차」라고 하는 性매매까지 하고 있습니다. 중국 사업가들이나 조선족들이 가끔 북한 여성들을 부르죠』

─중국 여자들도 있을 텐데 왜 북한 여성들을 부릅니까.

『압록강·두만강 일대는 중국에서 변방이에요. 요즘 시골에 있는 젊은 중국 여자들은 중학교만 나오면, 모두 도시로 가버립니다. 이런 시골에는 젊은 여자들을 구경하기 어려워요. 북한에는 젊은 여성들이 천지란 말입니다. 가격도 싸고』

─북한 여성들이 어떻게 강을 넘어올 수 있습니까.

『북한에는 중국으로 넘어와서 장사할 수 있는 브로커들이 있어요. 그들이 국경경비대, 당 간부들에게 뇌물을 줘서 자격이 없는 주민들까지 강을 넘게 합니다. 물론 돈을 받죠.

대부분 장사하기 위해 중국으로 오는데, 일부 젊은 여성들은 다른 장사를 하기 위해서 오는 거죠. 한 번 오면 자기 수중에 중국 돈으로 200위안(2만6000원)은 떨어지니까요. 여기에 몸까지 팔면 몇백 위안을 더 받아가죠』

─직업적으로 접대부 생활을 하는 북한 여성들이 많이 있나요.

『직업적으로 접대부 생활하는 여성들은 거의 없지요. 집안 형편이 어려운 여성들이 다른 수단이 없으니까, 그때그때 접대부로 일하는 거죠. 하지만 이 일이 수월하지는 않죠. 검열에 잘 안 걸리지만 재수 없이 걸리면, 생매장당하다시피 하니까요』

김재원 사장은 당시 북한에 있는 渡江 브로커에게 전화를 걸어 북한 아가씨들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날은 북한 아가씨들을 만날 수 없었다. 북한 측 渡江 브로커는 『하루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다음날 한국으로 와야 했던 나는 後日(후일)을 기약했다.
 
 

  『북조선은 어떻게 돼 가고 있는 건가』

탈북하려다 붙잡힌 북한 주민들이 정치범 수용소에서 단체 기합을 받고 있다(일본 후지TV방영).


지난 3월20일 오전 나는 승합차를 타고 북한 여성들이 중국으로 넘어온다는 압록강 일대를 둘러봤다. 승합차를 운전했던 조선족 기사 李모(46)씨는 알아듣기 어려운 조선족 사투리로 압록강과 관련된 金日成 父子의 이야기를 해줬다. 그는 『북한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녀서 金日成 傳記(전기)를 거의 외우고 있다』고 했다. 그와 나눈 이야기다.

─북한 여성들이 중국에 와서 몸을 팔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습니까.

『늙은 중국 시골 남자들이 결혼을 못하니까, 완전히 푼돈에 팔려 갑니다. 푼돈에. 불쌍해요. 우리 집이랑 친한 중국 사람이 길림성 이도백하에 사는데, 나이 50세에 결혼을 못 했거든. 그런데 얼마 전에 북한 자강도에서 스무 살짜리 처녀를 데리고 왔어요. 팔려 온 게지』

─북한의 경제 사정이 점점 어려워지나 봅니다.

『이제는 이 중국 촌동네보다 못삽니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북한이 훨씬 잘 살았거든요. 우리 동네에 북한 친척들이 오면 중국 사람들이 다 몰려갔시요. 큰 손님 왔다는 거지요. 북한 친척이 오면 먹을 것, 학용품 이런 것들을 가져왔으니 인기가 높았지요(웃음). 요즘은 거꾸로 됐지비』

李씨의 작은아버지는 북한 양강도 혜산市에서 교장선생님을 했다고 한다. 과거 李씨의 작은아버지가 중국에 있는 李씨 집에 오면, 그날은 잔칫날이었다. 작은아버지는 『큰집이 못 먹고 못살아서 마음이 아프다』며, 쌀과 설탕, 학용품, 북한 돈을 그의 아버지에게 쥐어 주고 갔다. 李씨의 어머니는 이웃에서 오리, 닭을 구해 와 작은아버지를 대접했다.

그러나 요즘 그의 작은아버지는 먹고살기 어려워서, 李씨 집에서 먹을 것을 대주고 있다. 교장 생활을 은퇴한 李씨의 작은아버지는 중국의 李씨 식구들이 북한으로 넘어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李씨는 그런 작은아버지가 너무 불쌍해서 『갈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했다. 李씨의 말이다.

『우리도 중국에서 못살지만, 먹고는 살잖습니까. 그렇게 잘사는 것처럼 보였던 우리 작은아버지는 이제 먹고사는 게 어려워요. 우리 식구들은 모두 한국으로 가는 게 소원인데, 우리 작은아버지 식구들은 중국으로 오는 게 소원입니다. 북조선은 이제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건가』

李씨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길림省 임강市에서 120km 떨어진 중화촌 어귀에 닿았다. 중화촌의 건너편은 김정숙郡이었다. 김정숙은 金日成의 첫 아내다. 金日成 전기에 의하면 김정숙은 젊었을 적에 金日成과 중화촌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이곳에서 죽었다고 한다. 金日成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김정숙郡이라고 이름 붙였다. 김정숙郡 앞에 흐르는 압록강가에서 북한 여성들이 찬물에 빨래를 하고 있었다. 오늘밤 저 물을 타고, 어디선가 북한 여성들이 중국의 접경 마을에 나타날 것이다.

길림성 중화촌 앞길에서 바라본 북한 김정숙郡의 전경. 金日成은 이곳에서 죽은 첫 아내 김정숙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지었다.

 

쭈부 타고 나타난 북한 여성
 

겨울 압록강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북한 여성.


  이날 저녁 9시30분 중국의 가라오케. 김재원 사장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김사장은 『왔나 보네』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는 2000위안을 넘게 주는 게 여전히 못 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는 북한의 渡江 브로커인 장사장과 이야기를 나눈 후 『북한 아가씨를 데리고 오겠다』며 문을 나섰다.
 
  나는 미리 준비해 놓은 디지털 녹음기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혹시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등산 바지 안쪽에 디지털 카메라를 준비해 놓았다.
 
  5분 후, 북한 여성 한 명이 가라오케에 들어왔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더니 흠칫하는 눈치였다. 김사장은 그녀에게 『한국에 사는 내 동생인데 걱정할 것 없어. 맘 놔도 된다』고 했다. 그녀는 북한에서 넘어올 때 가라오케에 한국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한 듯했다.
 
  1982년생인 그녀는 어려 보였다. 가라오케에 접대부로 일하러 오는 여자답지 않게 화장기가 거의 없었다. 생머리 단발에, 몸에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있었다. 얼음이 녹고 있다고 하지만, 밤의 기온은 영상 5℃. 강바람을 이기기 위해 점퍼 안에 두 겹의 옷을 입고 있었으며, 앵글부츠라고 하는 발목까지 올라오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어려 보이는 얼굴과 달리 새카맣고 갈라져 있는 손에 눈길이 갔다. 그녀는 내 눈길이 닿자 손을 동그랗게 오무려서 점퍼 안으로 넣었다. 나는 이후, 의식적으로 그녀의 손에서 눈길을 뗐다.
 
  가라오케 안에는 여러 명이 있어서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웠다. 북한 여성은 여러 명의 한국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더니, 거의 얼어붙어 있었다. 김사장이 북한 여성의 눈치를 보더니 『조용한 방에서 우리끼리 술이나 마시자』며 나와 북한 여성을 자신의 숙소로 이끌었다. 그녀는 조선족인 김사장은 안심이 되는 지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눴다.
 
  김사장의 방에서 맥주와 과일 안주를 놓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눴다. 김사장은 나를 가리키며 『이 사람은 내 동생이나 다름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술동무 해주라』고 북한 여성을 달랬다. 김사장은 『가라오케에 있는 일행들을 챙기고 올 테니 안심하고 놀고 있으라』며 방문을 닫고 나갔다.
 
  10여 평이 넘는 그의 숙소 안에, 남한에서 온 30代 기자와 북한에서 온 20代의 여성이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이곳에 왔고, 그녀는 고무 튜브를 타고 이곳에 왔다.
 


『카메라는 없는가』


  내가 그녀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이름이 뭡니까.
 
  그녀는 당혹해하는 표정이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이름은 알아서 뭐 하겠습니까. 그냥 김씨라고 하시오』
 
  ─내 이름은 안 궁금합니까.
 
  『그냥 남조선에서 온 사장님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장님』
 
  어색해서 중국 맥주를 들어 그녀에게 부어 주려고 했다. 북한 여성은 화들짝 놀라며 『제가 드려야지요. 한잔 받으시오』라며 병을 빼앗아 들었다. 그녀는 『북조선 여자들은 술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라며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불안해하며 방을 둘러봤다. 그러더니 『카메라는 없는가』라고 혼잣말을 했다. 내가 『여기는 카메라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자, 『들었는가?』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하고 있는 게 불안한가요.
 
  『남조선 사람을 만나면 불안하지요. 오지 못할 거 쭈부 타고 왔으니 더 불안하지요. 다시 넘어가야 할 거 생각하면 더 불안합니다. 또 사장님이 남조선 가서 북한 아가씨와 술 마셨다는 이야기하면 우리는 다 죽지. 사진이라도 나오면 정말 다 죽지요』
 
  ─여러 명이 올 줄 알았는데, 한 명이 왔네요.
 
  『한 명만 와야 이야기하기 좋지, 같이 오면 우리는 입을 다뭅니다. 북한은 사람이 카메라기 때문에 서로 감시가 되니까, 입을 다물지요. 혼자 오는 게 말동무하기에는 사장님한테는 더 좋을 겁니다』
 
  ─이렇게 나오면, 보통 몇 시에 돌아 갑니까.
 
  『그거야, 손님들이 술 마시는 시간에 따라 다르지요. 요새는 다니기가 힘들어져서 비쌉니다. 그래서 부르는 횟수가 줄어들었지요』
 
  ─김사장은 너무 비싸다고 불만이 많던데요.
 
  『아, 그 사장님은 사정을 다 알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가. 얼음이 얼어 있을 때는 200위안 주면 됐지만, 지금은 쭈부 타고 오는데. 잘못하다가 물에 빠져서 얼어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럼 안 비싸고 어떻게 하는가. 비싸면 안 부르면 되지』
 
 

『5개 기관에서 국경 감시』


 

국경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북한 군인. 밤에는 야시경으로 감시를 한다.


  ─쭈부를 타고 오면 물에 젖지 않나요.
 
  『몇 개를 이어 붙여서 배처럼 만듭니다. 잘 안 젖지요. 그래도 힘듭니다』
 
  그녀는 최근 야간 경비가 강화됐다고 했다. 한 달 전부터 국경경비대에 검열이 붙었다. 국경경비대는 북한 주민들에게 돈을 받고 渡江을 묵인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검열을 한다는 것이다. 검열이 붙으면, 강 주위에는 아예 얼씬 못 한다. 그녀는 『억만금을 줘도 못 나온다』라고 했다. 김씨에 따르면, 북한의 국경경비대는 군인으로만 구성돼 있는 게 아니었다.
 
  『3~4년 전에 남조선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 적에는 경계가 심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경계가 심해졌단 말입니다. 그때는 일없었는데(문제없었는데), 경비도 약하고 해서. 요새는 밤에 야시경 가지고 본단 말입니다(웃음). 중국 쪽에서 밤에 보면 깜깜해서 안 보이지만, 150m 사이에 한 곳씩 보초를 선단 말입니다. 인민군, 보위부 등 5개 기관에서 한 개 「그루빠」(그룹)를 이뤄서 보초를 서니까. 정말 수월하지 않다는 말이오』
 
  ─가라오케에서 단순히 술접대만 합니까, 「2차」도 나갑니까.
 
  『2차가 뭔가, 몸 파는 거 말하나. 나는 몸은 안 팝니다. 아이가 있는 아줌마가 몸을 어떻게 팔겠는가. 처녀들은 와서 중국 사람이나, 조선족 손님들에게 몸을 판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남조선 사람들한테는 절대 안 되지. 보위부 아새끼들이 여기저기 박혀 있는데』
 
  ─중국 가라오케에 와서 일하는 아가씨가 많나요.
 
  『아가씨? 사장님이 말하는 아가씨는 몸 파는 여자들을 말하나. 그런 아가씨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냥 처녀나 아줌마들이 돈 벌러 가라오케에 다니는 겁니다. 다른 일도 하고, 가끔은 이 일도 하고 그러지요. 중국에 끈이 별로 없는 처녀들은 가라오케만 가끔 다니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통은 팔려 가는 처녀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팔려 간다는 건가요.
 
  『모릅니까? 지금 북한에는 처녀들만 전문으로 파는 인신 브로커들이 많습니다. 빈민집에 처녀가 있으면 납치를 하기도 하고, 부모에게 접근해서 처녀를 사기도 합니다. 납치하는 놈들은 정말 나쁜 놈들입니다. 어떻게 같은 동족을 납치해서 팔아먹습니까.
 
  먹고살기 힘드니까, 늙은 똥띠놈들한테 팔려 가는 거지요(그녀는 중국인을 욕할 때, 「똥띠놈」이라고 했다. 과거에 중국인들이 똥을 묻히고 다닌다고 해서 이런 명칭이 붙었다는 것).
 
  북조선에 처녀들 씨가 마른다 아닙니까. 그래서 중국 가라오케에도 처녀들이 안 오고, 나 같은 아줌마가 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몇백 위안에 딸 팔아 감자· 강냉이 사


 

북한 주민들이 강에서 물을 길어 가고 있다.


  ─부모는 얼마를 받기에 딸을 파는 겁니까.
 
  『몇백 위안 받으면, 그것으로 강냉이나 감자를 살 수 있으니까 파는 겁니다. 대부분 브로커 놈들이 받아 처먹습니다』
 
  김씨의 이야기는 지난 3월부터 朝鮮日報가 연재하고 있는 크로스 미디어의 기사 가운데 하나인 「두만강 심청」의 내용과 일치했다. 朝鮮日報 3월3일자 「두만강 심청」의 기사 가운데 일부다.
 
  <브로커는 강을 건너 북한으로 돌아갔고, 은신처로 안내된 그녀에게 물었다.
 
  『왜 넘어왔어요?』
 
  윤희씨가 대답했다.
 
  『아버지는 未供給(미공급: 1990년대 후반 식량난 시절) 때 喪(상)하고, 어머니는 못 먹어서 앞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꿔다 먹은 「강냉이, 콩, 쌀」 같은 곡식 빚이 300kg이라고 했다.
 
  심청이처럼, 눈 먼 어머니와 남동생을 위해 그녀가 팔려간다. 브로커는 몸값으로 곡식 빚 절반을 갚아 줬다. 350위안. 한국 돈 4만6000원에 「조선의 딸들」이 팔려간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던 그녀는 목이 마른지 자신의 잔에 담긴 맥주를 조금씩 마셨다. 그녀의 얼굴이 금방 빨개졌다. 내가 질문하느라 술을 마시지 않자, 그녀는 술잔을 부딪치며 『사장님은 꼭 기자회견하는 것처럼 말을 하십니다』라고 했다. 나는 기자가 아닌 것처럼 질문하느라, 일부러 농담을 많이 하고 술을 많이 마셨다.
 
  ─북한 여자와 처음 술 마시는데 궁금한 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웃음)처음 술을 마시는가. 왜 금강산 가면 북조선 여자들이 시중도 하고 그런다고 하던데, 사장님은 금강산 안 가봤습니까. 거기는 이제 북조선 땅이 아니고 남조선 땅이 다 됐다고 하던데. 우리 인민들 사이에서는 돈을 받고 판 거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우리는 가보지 못하는데, 온통 거기(한국) 사람들만 간다고 하던데요』
 
  ─중국에는 얼마나 자주 넘어옵니까.
 
  『한 달에 두 번쯤. 일 생기면 우리 사장(渡江 브로커)을 통해서 넘어옵니다』
 

지난해 탈북자 가족 스물여섯 명 처형


 

얼어붙은 압록강 중간에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 여성은 고무 튜브를 타고 중국으로 넘어왔다.


  ─그쪽 사장에게 돈만 주면, 누구나 넘어올 수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끈이 없으면, 아무나 못 넘어옵니다. 만약에 기껏 200위안 주고 넘어 보냈는데, 남조선으로 넘어가서 기자회견하면 沒殺(몰살)당한단 말입니다. 보위부에서 가만히 안 둔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상대방을 파악하지 못하면 아무리 돈을 줘도 못 간단 말이오』
 
  ─한국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이 기자회견하면, 가족들이 사형당합니까.
 
  『작년에 북조선 사람 한 명이 남조선에 가서 기자회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가족 스물여섯 명이 다 처형당했습니다. 滅族(멸족)을 당한 겁니다. 왜 그렇게 죽이는지는 모르지만, 국가가 하는 거니까 그러려니 합니다. 불만이 있어서 그러는지, 창피해서 그러는지. 그래서 우리는 남한으로 가는 거 관심도 안 둡니다』
 
  ─북한에서 먹고살 만한가 봅니다.
 
  『그런 게 아니라, 남조선에 가면 기자회견해야 되고, 기자회견하면 우리 집안이 멸족당하는데 어떻게 갑니까. 보위부에서 멸족을 시키는데 억만금을 줘도 못 갑니다』
 
  김씨는 북한 사람들이 한국에 가면 반드시 기자회견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한국에 가면 국가에서 직업과 집, 돈을 풍족히 주느냐』고 물었다. 한국으로 가는 데 관심이 없다는 말과 달리, 그녀는 한국에 갔을 때의 처우에 대해 궁금해했다. 내가 탈북자들의 처우와 현실에 대해 얘기하자, 그녀는 실망한 듯 이렇게 말했다.
 
  『역시 만족하고 살아야죠. 만족하기보다는 우리는 더 좋은 세상을 보지 못 했으니까, 그냥 우리 수준에 맞춰서 살아야겠죠. 국가가 못 하게 하는데, 자꾸 다른 생각하면 안 되지. 하긴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가는 건 어디 쉽습니까』
 
  김씨는 그러면서 『중국에 오면 자꾸 태국, 태국 하던데 거기는 어디입니까. 우리는 태국이라는 말 자체를 모릅니다』라고 했다.
 
  그녀에게 태국을 설명하기 위해서 동남 아시아의 여러 나라 이름을 얘기했다. 그녀는 베트남을 얘기하자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이며, 『거기는 같은 사회주의 국가니까 알지요』라고 했다.


 
『남조선 양반 출신, 북조선에서는 상놈』


  그녀는 자신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집안에는 남조선 출신이 많습니다. 우리 당할아버지(친할아버지)는 경상도가 고향인데, 아주 좋은 양반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일제 시대에 길림省으로 왔지요. 우리 외할아버지도 남조선 출신입니다. 우리는 북조선에서 지금 상놈 취급을 받습니다』
 
  얘기를 하다 보니, 맥주 10여 병을 비웠다. 그녀는 반 잔 정도 마셨다. 시간은 밤 10시30분을 넘었다. 그녀에게 농담을 걸었다.
 
  ─집에 애도 있다면서, 늦게 들어간다고 휴대전화로 전화해요.
 
  『(웃음)유선전화는 있어도 휴대전화는 없어서 전화를 못 합니다. 한 시간밖에 안 됐는데, 술 동무 더 해드려야지요』
 
  ─집에 전화기는 있습니까.
 
  『북조선에 유선전화를 가지고 있는 집은 많습니다』
 
  ─전기가 안 들어오는데 전화가 되나요.
 
  『전화하는 데 전기가 얼마나 들겠습니까』
 

북조선 남자들은 「멍멍개」나 「낮전등」


 

산에 불을 붙여 화전을 일구는 모습. 산에 일구는 밭은 개인 소유라서, 북한 주민들은 이곳에 옥수수밭을 일군다.


  ─애는 몇 살이에요.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딸인데 어립니다. 제가 사연이 있어서 결혼을 빨리 했습니다』
 
  어떤 사연인지 물어봤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 남편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사연이 있었다』고 했다. 한국에서처럼 젊은 여자가 결혼하기 전에 「속도위반」을 했다는 그런 사연은 아닌 듯했다.
 
  ─딸이 있으면, 아들 하나 낳아야겠네요.
 
  『아들을 왜 낳습니까. 북조선은 딸이 좋지, 아들은 안 좋아요. 한국은 딸 싫어하나요. 북조선 인구 비율은 여자가 많은데 딸을 좋아합니다. 여자들의 살림가치가 높아서 그렇습니다. 다닐 만한 기업도 없고 남자는 장사를 다닐 수 없으니 돈을 못 벌어옵니다. 북조선은 아직까지 남자들은 직장에 다녀야 하는데 배급을 못 받잖습니까.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 강제노동을 보낸단 말입니다. 여자들이 없으면 못 벌어 먹습니다. 그래서 북조선 남자들은 집 지키는 「멍멍개」나 「낮전등」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부르죠.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말 아닙니까. 북한에 지킬 게 없는데, 멍멍개가 무슨 필요 있습니까. 그렇다고 잡아먹을 수도 없다는 거 아닙니까. 사람보다 개가 더 비쩍 말랐는데, 먹을 게 어디 있습니까. 전기가 없는 북한에서 낮전등만큼 쓸모 없이 아까운 게 어디 있겠습니까.
 
  북조선 남자들이 집에 와서 일을 도와주지 않으니까, 엄마한테도 딸이 필요합니다. 집에서 여자가 쓸모 있지, 남자는 필요없습니다. 요새는 여자가 많아서 군대에 여자가 많이 갑니다. 포병에 여자들이 많습니다』
 
  ─그럼 북조선 남자들은 어디에 쓰죠.
 
  『어디 쓰나? 애 만드는 데 쓰죠(웃음). 이렇게 말하면 너무 음탕하나. 쓸모는 없지만 인구를 줄일 수 없으니 그때 씁니다(웃음)』

 


『북한 전역에 매일 장(場)이 선다』


 

북한 시골 마을 모습. 마을 뒤쪽 산에 구호가 붙어 있다.


  ─북한은 밤만 되면 암흑으로 변하던데, 북한 사람들은 밤에 어떻게 삽니까.
 
  『(웃음)여기 오면 북한이 하나도 안 보이지. 촛불 켜고 삽니다. 가운뎃손가락보다 조금 더 긴 초 한 개 가격이 북한돈으로 200원입니다. 한 3시간 켤 수 있나… 그나마 초가 중국에서 들어오는 것이라서 가격이 비쌉니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은 초를 안 켜고, 기름잔을 씁니다. 디젤유나 항공유를 사서 불을 밝히는데, 초보다 그게 더 쌉니다. 한 킬로(1kg) 사면 한 달은 켭니다. 하지만 촛불보다 밝지 못해요. 그슬름(그을음)이 많고. 「그슬름」이란 말을 아는가?』
 
  ─길거리는 뭘로 밝힙니까.
 
  『길거리는 아무것도 안 밝힙니다. 나갈 일이 있으면, 등을 달고 나가지. 북조선에서 밤에 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 같은 범죄자라서 등이 없는 게 편합니다. 어두운 게 편하지(웃음)』
 
  ─밤에 통행금지는 없나요.
 
  『자기 거주지역에서는 자유롭게 다닙니다. 다른 지역으로 가는 건 안 되지만』
 
  ─북한의 산은 왜 그렇게 민둥산입니까. 산에 전부 밭을 일궜더군요.
 
  『(웃음) 전부 나무 불을 때니까 그렇지요. 먹고살아야 하니까. 인민들이 산에 옥수수밭을 일군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북한에서 개인이 땅을 가질 수 있나요.
 
  『벌방(논)은 가질 수 없지만, 산지에는 개인이 밭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산은 협동조합에서 해먹을 수 없으니까, 개인이 해서 먹고사는 겁니다』
 
  ─개인이 땅을 가질 수 있고, 배급이 없어졌으면 이제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네요.
 
  『맞습니다. 북한은 현재 모든 게 시장에서 이뤄집니다. 평양에만 배급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배급이 없어졌습니다. 주민들은 고추라도 길러 시장에서 팔아야 먹고살 수 있습니다. 그걸 아니까, 당에서 어쩌지 못합니다. 옛날에는 개인이 농사를 하거나 장사를 하면, 생매장당했지요. 지금은 북한 전역에서 매일 場(장)이 섭니다』
 

『북한 당국에서 마약 제조 판매 묵인』


 

나무 한 그루 없는 북한 산의 모습.


  ─요새 물가는 어떻습니까. 북한 식량 사정이 어렵다고 하던데.
 
  『우리는 상놈이니까, 나라 전체 사정은 잘 모르지. 그런데 어렵지, 안 좋아졌지. 남조선에서 물자가 안 오니까, 자꾸 물가가 오릅니다. 우리 지역에서는 쌀 한 킬로(1kg)에 1500원(북한 돈)입니다. 작년에는 1200원 정도였는데. 그래서 중국에 선을 대야 살 수 있습니다.
 
  중국하고 선을 댈 수 있는 사람은 먹고사는 게 일없고(문제없고), 끈이 닿지 않는 사람들은 몽땅 빈민이죠. 장마당 가서 있고. 나쁜 짓을 해야 돈 벌고 먹고삽니다』
 
  ─나쁜 짓이라니요.
 
  『밀수 말입니다. 당국은 중국에 귀금속 유출하지 말라고 하지만 북조선에서 그게 어디 순환이 됩니까. 귀금속 모아서 쭈부 타고 중국으로 가져다 팔면, 돈이 남으니까 하는 거죠. 또 다른 것도 팔고…』
 
  ─다른 게 뭡니까.
 
  『말해도 되나, 우리는 아무 말이나 막하면 안 되는데. 마약 말입니다. 「빈두」라는 각성제를 제조해서, 중국으로 팝니다. 조직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官(관)을 끼고 주민들이 만들어서 파는 겁니다』
 
  ─官을 끼고 마약을 제조합니까.
 
  『나쁜 짓 하는데 官을 안 끼고 할 수 있나. 각성제는 만들 때 냄새가 나고 해서 사람 없는 곳에서 만든단 말이오. 그런 데는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보위부나 당에서 바로 알게 됩니다.
 
  그러면 뇌물을 주고 모른 척하도록 만드는 거 아니겠습니까. 官을 껴도 일이 틀어지면 죽는 거고. 한국은 더 하겠지. 중국에 와서 한국 영화 「인간시장」 보니까 한국이 더하던데요』
 
  그녀는 한국에서 1980년대에 나왔던 드라마 「인간시장」을 최근 중국에서 봤다고 했다. 김홍신 원작 소설인 「인간시장」은 1980년대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풍자하고 비판한 내용이다. 그녀는 「인간시장」이라는 드라마를 근거로, 「한국 관리들이 북한 관리들보다 부정부패로 더욱 찌들어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녀는 『북조선 사람들에게 「인간시장」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사랑이 뭐길래」같이 사랑 타령만 하는 영화(드라마)는 재미가 없다』고 했다.
 
  중국 현지시각으로 밤 11시30분이 지나자, 김씨는 시계를 보기 시작했다. 「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일없다』고 했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녀가 화장실에 간 동안, 김사장에게 전화를 해서 『10분 후에 숙소로 오라』고 말해 뒀다. 잠시 후 돌아온 그녀는 자리에 앉으면서, 『중국에 오면 물이 잘 나와서 제일 부럽다』고 했다.
 
  그녀에 따르면,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은 모두 강에서 식수와 목욕물, 빨랫물을 얻는다. 강이 가까운 사람은 강에서 빨래를 하고, 강에서 멀리 사는 사람들은 지하수를 사용한다.
 
  나무가 없어서 지하수가 점점 줄어들어 몇 km를 걸어와 강에서 빨래를 하고 식수를 길어 간다. 이런 상황에서 목욕은 이들에게 사치다. 『목욕을 잘 못한다』는 말을 하면서 그녀는 민망해했다.

─가라오케에서 일하려면, 목욕을 하고 와야 되잖습니까.

『오늘 같은 때는 나무 불에 물을 데워서 목욕을 합니다(웃음). 뭐, 북조선 여자들이 전혀 안 씻을까. 불편하다는 거지, 안 씻는다는 건 아닙니다』

─아까 남조선에서 식량이 잘 안 온다고 했는데, 왜 그런 것 같습니까.

『대통령이 이명박이로 바뀌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 여기서 보도로, 신문으로 계속 나왔습니다. 노무현이 바뀌기 전부터 나왔습니다. 남조선 괴뢰도당의 대통령이 바뀌어서 공화국에 대한 압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정치공부를 많이 합니다(웃음). 우리는 아직 괴뢰도당이라고 합니다. 조금 완화되면 남조선 당국이라고 하고』

─한국 경제가 계속 좋지 않아서, 북한에 무조건 지원을 할 수 없어요.

『알고 있습니다. 당에서 남조선은 미국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요새 미국 놈들이 어렵다면서요. 우리는 미국이 없어도 살 수 있는데. 남조선이 큰일입니다』

  『개화하면 경제가 금방 나아질 겁니다』

 

김씨는 김재원 사장이 들어오자, 중국돈을 받아서 방을 나섰다. 그녀가 받은 돈의 대부분은 그녀가 사장이라고 말하는 渡江 브로커에게 전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녀도 북한에서는 꽤 큰 금액을 두 시간 만에 벌게 됐다.
 
  나는 방을 나서는 그녀를 배웅하며 『돈 많이 벌고 잘살라』고 했다. 그녀는 『당이 개화만 하면, 북조선 경제는 몇 년이 못 가서 나아질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그녀가 방을 나간 시간은 자정이 조금 넘은 12시10분. 북한시간, 아니 한국시간으로는 새벽 1시10분이다. 그녀는 그날 새벽 달빛을 받으며, 압록강 어느 곳을 타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북한이 하루 빨리 개화해서 그녀와 그녀의 딸이 활짝 웃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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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임 민요 한마당♬

굿거리 22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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