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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난민

모링가연구가 2008. 9. 23. 06:07

북한의 난민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판에 어떻게 병원에 가느냐..."



갔더니 여인 3명과 어린이 2명 등 5명이 있었다. 그 중 한 여인은 뼈만 앙상히 남은
몰골로 누워 있었는데 두 손은 껍질이 다 벗겨지고 헐어 있었고, 6세가 되었다는 아이는 3세
아이보다도 더 어린 모습에 온몸에 옴이 올라 피부가 헐어 있었으며 비가 오고 있는데도 비를
피할 비닐 조각 하나 없이 그냥 앉아 있었다.

작은 양철 그릇 하나가 있었는데 이 그릇으로 죽을 끓여 먹었다고 했다.
병든 여자는 함흥 출신으로 30세라고 했다. 아버지 ,어머니, 남편과 아이 2명이 죽었고,
6세된 아이와 병든 본인만 겨우 살아 남았다는 것이다.



"병원에 한 번 가 보았어요?" 고 묻자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가는데 어떻게 병원에
갈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내 눈 앞에 이렇게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데도 나는 왜 이 여인을 살릴 수 없는가? 국경이 무엇이며 법이 무엇이기에, 이 죽어가는
여인을 눈앞에 두고도 나는 어찌 하지 못할까? 하며 번민 하고 있는데, 여기 더 있으면 위험하니
빨리 내려가자는 구호 활동가의 요청에 따라 의사에게 보여줄 사진 몇 장을 찍고 죽어가는
환자를 비가 오는 산속에 그냥 내버려 두고 내려 올 수밖에 없었던 내 얼굴위로 빗물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흘렀다...


돌아온후 그 여인을 구제할 길을 여러 곳에 문의 해 보았지만 현재의 중국법으로는
안 된다는 절망적인 대답뿐이었다. 사진을 본 의사의 처방에 따라 다음날 약을 지어
보냈지만 그 여인은 이미 변방수비대에 체포되어 사라졌다....

먹을 것을 찾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사람들...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온다는 것은 한마디로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북한 국경수비대의 감시 뿐만 아니라, 압록강의 물살, 백두산의 밀림지대,
야생동물, 그리고 중국 공안(경찰)들의 감시의 눈초리... 배고픔, 추위, 두려움...
겨울철에 백두산 자락을 넘어 중국으로 넘어오는 것은 특히 위험합니다.

이들은 도망자의 신세이기 때문에 도로로는 이동하지 못하고 감시를 피해
깊은 숲속으로만 다녀야 하는데, 백두산에는 허리 깊이의 눈이 쌓인 곳인 많고,
백두산 자락이 워낙 넓고 숲이 울창하여서 길을 잃고 산속에서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어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 고개숙이고 모자쓴 청년은 탈진 상태이다.
이들은 지나온 산속에서 죽은 시체들을 보았다고 한다.

두만강에서 장백현으로 들어가는 백두산 자락에서 길을 걸어오고 있는 2명의 청년을
발견하였습니다. 다떨어진 옷차림과 생김새로 보아 북한청년들이었습니다.

지나가는 길은 다른이들의 눈에 띌까 두려워 , 일단 함께 산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남자는 나이가 29세이고,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다니던 곳의 정기배급은 96년도에 끊겼으며, 그후로는 야산을 떠돌면서
식량을 구하러 다니기 바빴다고 합니다. 이들은 중국의 무송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하여 무송으로 가는 중이었다고 합니다. 국경을 넘어온지는 10일이 넘었고,

장백현에 숨어 있다가 산을 타고 무송현으로 가는길에 우리를 만난 것입니다.


▲ 청년은 무엇을 생각할까..건네준 양말과 옷으로 갈아 입고 있다

산속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은 해 뜨는 곳으로 방향을 삼아 길을 가게 되었는데,
곧 길을 잃어 버리게 되어 이틀이면 갈길을 10여일 이나 헤매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해가 뜨는 방향으로 걸어가서 하루를 자고 일어나면 또 처음 출발한 도시의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고 계속에서 근처를 맴돌았던 것입니다.

산속에서 남의 밭의 음식을 훔쳐 먹거나 산속의 나무뿌리를 캐먹으며 지내 왔는데,
산속의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볼을 피우다가 옷을 태우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일행중 1명의 몸은 탈진 상태였으며, 이제는 걷기 힘든 산길을 통해서 숨어서 가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지친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중 아스팔트 도로길을 발견하여 다시 무송을
향해 걷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굶주리는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중국돈 500위안(우리돈 75,000원)을 마련해 가야 한다며
청년들은 지친몸으로도 우리에게 굳은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은 이유는 단하나, 자신과 가족들이 먹을 식량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중국 현지 답사자의 일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