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시모음 (최윤수 홈페이지에서 옮김)
내 삿갓
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 한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 목동은 가벼운 삿갓 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가고 어부는 갈매기 따라 삿갓으로 본색을 나타냈지.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 흥겨우면 들고서 다락에 올라 달 구경하네. 속인들의 의관은 모두 겉치장이지만 하늘 가득 비바람쳐도 나만은 걱정이 없네.
詠笠 영립
浮浮我笠等虛舟 一着平生四十秋
부부아립등허주 일착평생사십추 牧堅輕裝隨野犢 漁翁本色伴沙鷗
목수경장수야독 어옹본색반사구 醉來脫掛看花樹 興到携登翫月樓
취래탈괘간화수 흥도휴등완월루 俗子依冠皆外飾 滿天風雨獨無愁
속자의관개외식 만천풍우독무수
*자신의 조부를 탄핵하고 시작한 방랑 생활. 언제나 벗이 되어 주며 비바람에도 몸을 보호해 주는 삿갓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 ....그리해서 '병연'은 그 이름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이 시인은 '병연'이란 이름을 스스로 숨기고 잊어 버렸다. 그리고 삿갓을 쓴 이름없는 시인이 되었다....그가 읊은 자신의 '삿갓'시는 표연자적하는 자연과 풍류 속의 자기 운명을 그린 자화상이었다. -양기원 <김삿갓 이야기>
스스로 탄식하다
슬프다 천지간 남자들이여 내 평생을 알아줄 자가 누가 있으랴. 부평초 물결 따라 삼천리 자취가 어지럽고 거문고와 책으로 보낸 사십 년도 모두가 헛것일세. 청운은 힘으로 이루기 어려워 바라지 않았거니와 백발도 정한 이치이니 슬퍼하지 않으리라. 고향길 가던 꿈꾸다 놀라서 깨어 앉으니 삼경에 남쪽 지방 새 울음만 남쪽 가지에서 들리네.
自嘆 자탄
嗟乎天地間男兒 知我平生者有誰
차호천지간남아 지아평생자유수 萍水三千里浪跡 琴書四十年虛詞
평수삼천리랑적 금서사십년허사 靑雲難力致非願 白髮惟公道不悲
청운난력치비원 백발유공도불비 驚罷還鄕夢起坐 三更越鳥聲南枝
경파환향몽기좌 삼경월조성남지
*월조(越鳥)는 남쪽 지방의 새인데 다른 지방에 가서도 고향을 그리며 남쪽 가지에 앉는다고 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대나무 시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바람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대로 맡기리라. 손님 접대는 집안 형세대로 시장에서 사고 팔기는 세월대로 만사를 내 마음대로 하는 것만 못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나세.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차죽피죽화거죽 풍타지죽랑타죽 飯飯粥粥生此竹 是是非非付彼竹
반반죽죽생차죽 시시비비부피죽 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빈객접대가세죽 시정매매세월죽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만사불여오심죽 연연연세과연죽
*한자의 훈(訓)을 빌어 절묘한 표현을 하였다. 此 이 차, 竹 대나무 죽 : 이대로 彼 저 피, 竹 : 저대로 化 화할 화(되다), 去 갈 거, 竹 : 되어 가는 대로 風 바람 풍, 打 칠 타, 竹 : 바람치는 대로 浪 물결 랑, 打 竹 : 물결치는 대로
스무나무 아래
스무나무 아래 서른 나그네가 마흔 집안에서 쉰 밥을 먹네. 인간 세상에 어찌 일흔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서른 밥을 먹으리라.
二十樹下 이십수하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
이십수하삼십객 사십가중오십식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인간개유칠십사 불여귀가삼십식
*二十樹 : 스무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나무 이름 三十客 : 三十은 '서른'이니 '서러운'의 뜻. 서러운 나그네. 四十家 : 四十은 '마흔'이니 '망할'의 뜻. 망할 놈의 집. 五十食 : 五十은 '쉰'이니 '쉰(상한)'의 뜻. 쉰 밥. 七十事 : 七十은 '일흔'이니 '이런'의 뜻. 이런 일. 三十食 : 三十은 '서른'이니 '선(未熟)'의 뜻. 설익은 밥.
*함경도 지방의 어느 부잣집에서 냉대를 받고 나그네의 설움을 한문 수자 새김을 이용하여 표현한 시이다.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가 망할 놈의 집안에서 쉰 밥을 먹네.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선 밥을 먹으리라.
죽 한 그릇
네 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가 그 속에서 함께 떠도네. 주인이여,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물 속에 비치는 청산을 내 좋아한다오.
無題 무제
四脚松盤粥一器 天光雲影共排徊
사각송반죽일기 천광운영공배회 主人莫道無顔色 吾愛靑山倒水來
주인막도무안색 오애청산도수래
*산골의 가난한 농부 집에 하룻밤을 묵었다. 가진 것 없는 주인의 저녁 끼니는 멀건 죽. 죽 밖에 대접할 것이 없어 미안해하는 주인에게 시 한 수를 지어 주지만 글 모르는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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