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축조물들
1.이집트 기자에 있는 쿠푸왕의 피라미드(Pyramid)
고대 이집트의 국왕·왕비·왕족 무덤의 한 형식. 어원은 그리스어인 피라미스(pyramis)이며 이집트인은 메르라 불렀다. 현재 80기가 알려져 있으나, 대부분은 카이로 서쪽 아부라와슈에서 일라훈에 이르는 남북 약 90 km인 나일강 서안 사막 연변에 점재해 있다. 그러나 와력의 산으로 변한 것과 흔적만 남아 있는 것도 있어, 옛날의 모습을 남기고 있는 것은 의외로 적다.
2.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또는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그리스어: o Φ?ρο? τη? Αλεξ?νδρεια?)는 기원전 3세기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섬에 세워진 거대한 건축물을 말하며 모든 등대의 원형으로 여겨진다. 고대의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유명하지만 지금은 파괴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파로스 섬은 알렉산드리아에 면한 작은 섬으로 헵타스타디온이라 불리는 인공적인 1km의 제방으로 알렉산드리아 항구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집트 해안선은 매우 단조로와서 항구를 찾는 것이 어려웠는데 아마도 이 파로스의 등대는 항해의 편의를 위해 건설된 것으로 보인다. 꼭대기에 횃불과 거울을 설치하여 밤에 불을 밝힌 것은 1세기 경 로마 시기부터였으며, 그 이전의 시기에는 주간에 항구의 위치를 알려주는 주간 항로표지로서 기능하였다.
파로스 등대는 기원전 3세기 경 알렉산드로스 대왕 휘하의 장군이자 헬레니즘-이집트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첫 번째 통치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에 의해 건축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스스로 이집트의 왕으로 즉위하여 자신을 소테르(구원자 라는 뜻)로 칭하고 알렉산드리아 항구 부근의 파로스 섬에 등대를 건축하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등대의 건축이 시작되었으며 그의 아들인 프톨레마이오스2세 대에 이르러 완공되었다. 정확한 완공 시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원전 280년경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치세에 크니도스의 소스트라투스라는 건축가에 의해 완공된 것으로 보인다.
전설에 따르면 등대는 하얀색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높이가 약 130 미터에 달했으며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맨 아랫부분은 정사각형의 거대한 성채, 중간 부분은 팔각형 맨 윗부부은 원형으로 만들어졌는데 맨 윗부분에서 빛이 나와 불을 밝혔다고 하며, 맨 꼭대기에는 신의 조각상이 있었다. 불빛이 나오는 부분에는 거다란 거울같은 반사경이 있어 밤에 빛을 반사했으며 건물자체는 워낙에 커서 군대의 막사 역할도 했다. 이 등대의 불빛은 머나 먼 43 킬로미터 밖에서도 보일 만큼 밝았다고 한다.
등대 건물은 매우 견고하게 지어져서 1183년 아랍의 지리학자 이븐 주바일의 기록에도 등장하지만 1303년과 1323년의 대지진으로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1480년 이집트의 술탄 카이트베이가 그 잔해로 카이트베이 요새를 만들어 완전히 사라졌다.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로 등대의 정확한 위치가 확인되었으며, 바다 속의 잔해물들도 발견되었다. 파로스는 여러 언어에서 "등대"를 뜻하는 낱말의 어원이 되었다. 그리스어(φ?ρο?), 불가리아어(фар) 뿐만 아니라 프랑스어의 phare, 이탈리아어의 faro, 포르투갈어의 farol, 에스파냐어의 faro, 루마니아어와 카탈루냐어의 far과 같이 로망스어군의 많은 언어에서 그 영향을 찾을 수 있다.
파로스 등대의 건축 형태는 후대의 건축에 영향을 주었다. 파로스 등대와 같은 시기에 지어진 아부키르의 무덤과 로마 시대 히스파니아(에스파냐)에 세워진 헤라클레스의 탑은 명백히 파로스 등대의 모습을 본 뜬 것이다. 정방형의 하단과 팔각형의 중단, 그리고 둥근 모양의 상부가 그것이다
3.메소포타미아 바빌론의 세미라미스 공중 정원 - Hanging Gardens of Babylon
바빌론의 공중 정원은 세미라미스의 가공정원으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비잔티온의 휘론이 선택한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조물의 하나인 옥상정원이다. 이름으로 보면 중력에 역행해서 공중에 떠있는 정원이 연상되지만, 사실은 높은 단에 만들어진 정원이다.
현재의 바그다드 교외에 약간의 유적이 남아 있다. 기원전 600년경에 신바빌론 왕국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메디아 출신의 왕비 아뮈티스를 위로하기 위해(식물이 있는 메디아에서 자란 아뮈티스 왕비는 건조한 사막의 나라인 바빌론의 기후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바빌론에 건조한 정원이다. 기원전 538년에 페르시아 제국의 침략으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궁전 안에 만든 높이 25미터, 1단이 넓은 장으로 5단 계단으로 되어 있는 테라스에 흙을 묻고, 물을 위에까지 끌어 올려 밑으로 흘리고, 수목과 꽃등을 심었다. 매우 큰 정원이어서 멀리서 보면 흡사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가장 위의 면적은 60평방미터로 추정한다.
고대 로마의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는 언급되어 있지만,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니네부에에 있었다고 하는 다른 정원과 혼동되고 있다는 설도 있다. 스토라본의 기록에 따르면 기둥과 지하실은 연기와로 만들어져 있고, 네 모퉁이를 기둥으로 받혀져 있는 높은 곳에 자리잡은 입방체의 테라스에 흙을 묻고 정원을 구성해서, 그 위에 아치지붕이 만들어져 있었다고 한다. 「매달려 있는 정원」이라는 오역이 있지만, 그것은 그리스어에서 kremastos또는 라틴어의 pensilis를 부정확하게 옮긴 탓으로 보인다. 물을 위에까지 끌어올린 방법에 대해서는 끝없이 물을 공급하는 기계, 아르키메데스의 나선식 펌프 등의 설명이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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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에페수스(Ephesus)의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
제우스와 레토의 딸, 아폴론과는 쌍둥이 남매간이다. 처녀사냥꾼으로 산과 들에서 사슴을 쫓는 활의 명수라고 하며, 그의 화살은 산욕(産褥)을 치르는 여자를 고통없이 그 자리에서 죽게 하는 힘을 지녔다고 한다. 또한 처녀의 수호신으로서, 순결의 상징이었는데, 처녀의 순결에 상처를 입힘으로써 죽음의 벌을 받은 자 가운데는 오리온이나 악타이온이 있다.
아폴론이 태양의 신인 데 반하여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으로 생각되었는데, 이는 월신(月神) 셀레네, 헤카테와 동일화되었기 때문이며, 아르테미스라는 이름도 그리스계(系)가 아니고 옛 선주민족(先住民族)의 신의 이름이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원래는 대지, 특히 야수들이 사는 들판을 주관하는 모신(母神)으로서 동식물의 다산(多産)과 번성(繁盛)을 주관하는 것으로 믿어, 출산과 어린이의 발육을 수호하는 신이 되기도 하였다. 소(小)아시아의 에페소스에서 신앙되던 아르테미스의 상(像)은 가슴에 무수한 유방을 갖고 있었으며, 고장에 따라 특징 있는 숭배를 받았는데, 옛날에는 인신공희(人身供犧)를 하는 고장도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로마 신화에서는 디아나와 동일시되었다.
5.제우스 신상
BC 457년 건설한 제우스신전에 안치된 신상으로서,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피디아스가 8년 동안의 작업을 거쳐 완성하였다. 당시 파르테논신전의 아테네 여신상과 함께 피디아스의 2대 걸작으로 평가되었다고 전하나 오늘날에는 남아 있지 않다. 신전에는 도리아식 기둥이 양옆 모두 13개, 양끝에 6개씩 세워져 있었으며 가운데에 신상이 높이 90cm, 나비 6.6m 크기의 받침대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신상은 높이 약 12m의 목조로 되어 있었으며 보석·상아 등으로 꾸민 금으로 된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어깨에는 황금 망토를 걸치고 오른손에는 승리의 여신 니케상을 받치고 있으며 왼손에는 금으로 장식한 왕홀을 쥐고 있었다. 두 다리는 금으로 된 디딤대 위에 올려져 있었으며 발은 신상을 예배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놓여져 있었다.
신전은 426년의 이교 신전 파괴령으로 파괴되었으며 6세기에 지진과 홍수가 일어나 땅속에 매몰되었다. 19세기 초에 들어와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신전의 메도프·기둥·지붕들 일부가 발견되어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1950년 무렵에는 신전터에서 피디아스의 작업장 흔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6.할리카르나소스(Halicarnassus)의 마우솔로스 영묘 - Mausoleum
페르시아 제국 카리아의 총독 마우솔로스를 위하여 그리스의 할리카르나소스에 건조된 장려한 무덤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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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 모
| 면적 29×35.6m, 높이 50m |
분 류
| 무덤기념물 |
소재지
| 그리스 할리카르나소스 |
시 대
| 페르시아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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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29×35.6m, 높이 50m. 할리카르나소스의 묘묘(墓廟)라고도 한다. 마우솔로스의 생전에 착공되었으나, 그가 죽은 뒤 왕비 아르테미시아가 계속 진행하여 완성된 시기는 왕비 아르테미시아가 죽은(BC 350) 뒤로 추측된다.
설계는 사티로스와 피테오스가 하였다. 동서남북의 장식조각은 각각 스코파스, 레오카레스, 티모테오스, 브리아크시스가 담당하였다. 각 면의 조각·프리즈는 발굴되어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또, 로마인은 비슷한 대규모의 분묘건축(墳墓建築)도 마우솔레움이라고 일컬었다. 마우솔레움은 그 특이한 모양과 복잡한 장식 때문에 세계의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혔다.
| 7.로도스 항구의 거상 - colossus
그리스어 콜로소스에서 유래한다. 이집트에는 현재도 거대한 인물상·동물상이 많이 남아 있으며 그것들을 보고 호칭한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의 말이 그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기제의 스핑크스와 멤논의 아멘호테프 3세의 좌상 2체 등이 그 예이다.
그리스 시대에 가장 유명한 것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던 로도스섬의 콜로서스이다. 로도스 항구에 서 있던 태양신 《헬리오스 청동상》은 높이가 36 m나 되었으며, 린도스의 카리오스에 의해 BC 280년경 건조되었는데 BC 224년의 지진 때 붕괴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현존하는 것도 많으나 모두 기념비적인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피렌체 시청 앞에 세워진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피렌체 아카데미미술관)이 있다.
○ 출처 : 안성시골프협회 - 안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