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족의 눈물겨운 투쟁사를 그린 장예모 감독의 최신 문제작!!
1940년대 중국, 부유한 지주집 아들인 부귀(갈우 분)는 아름다운 아내(공리 분)까지 둔 부러울것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도박에 빠져 전재산을 잃게 되자 아내는 자식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리고, 아버지는 충격으로 숨을거둔다. 일순간에 생의 밑바닥으로 추락한 그는 아내가 돌아오자 자신의 재산을 뺏아은 사람에게서 그림자극 도구를 얻어와 그림자극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게 된다. 그렇게 행복을 조금씩 배워가는 그에게 역사는 그를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는다.
혁명이 일어나고, 국공내전이 발발하자 그는 이유도 모르고 무슨 전쟁인지도 모른체 전쟁에 끌려간다. 민중들에게는 아무 의미없는 전쟁에서 부귀는 생존의 방법으로 그림자극을 선택한다. 내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자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고 후에 딸은 아이를 낳다가 죽는다.
네이버 시시회로 이 영화를 봤는데요, 영화가 참 소박하고 유머러스하고 그러면서도
감동적이고... 음악을 통해 순간순간 예술성도 느끼게 해주는... 참 좋은 영화로 봤습
니다.
전 처음에 예고글만 읽었을 땐 `어둠속의 댄서`나 `아이엠 샘` 같은 눈물무비 이
리라 예상했는데, 전혀요. 물론 눈물도 흐르게 하고 감동도 줍니다만, 그렇게 의도된
계산성을 깔고, 억지로 최루탄 뿌려대듯 눈물을 쥐어짜진 않습니다. 상당히 소박해요.
정말... 소박하고 인위성이 없어요.
영화 속 아버지의 캐릭터, 어떻게 보면 숭고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건데, 감동적인
말 하면서도 동작 실수해서 등불을 치는 바람에 `아이구` 한다든지... 정말 평범하고
불완전하고, 그렇지만 사랑으로 가득찬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부모님 같았어요. 그리
고 윤도현 닮은(정말 어찌나 닮았던지 나올 때마나 웃음이 나오대) 레슨 선생님 캐릭
터라든지, 주변 인물들도 처음엔 당황스런 면모를 보이지만 자세히 알아나가다 보면 모
두 다정한 사연들이 있는 사람들이죠. 첨엔 무슨 창녀처럼 보였던 여자... 그 여자도 생각
없이 옷에만 돈 처바르는 여자가 아니고, `감정없이` 연주한다고 선생님한테 야단 맞던
괴팍한 여학생도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찬 어린 꿈나무 한 그루였음을 얘기해 주죠...
또 소년이 연주하는, 또 영화 중간 중간에 흐르는 바이올린 선율들은 다 클래식 곡인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클래식, 하면 떠올리는 지루함이나 단조로움이 전혀 없어요.
권위성을 다 벗어버리고 순수하게 열정만 남아 꿈틀거리는 듯한 음악들이죠. 굉장히 박력
있어요. 정말... 박력있는 음악들이란 말이 딱 맞아요. 전에 한중수교 10주년 기념으로 요
요마&상해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이 있었는데, 그 때도 좀 감을 잡긴 했죠. 중국이 굉장히 박
력있는 클래식을 좋아하는구나..^^ 또 영화 중간중간에 박장대소하게 하는 유머들이 예상 외
로 쏟아지니 것도 기대할 만 합니다.
이 영화 보면서 장이모우 의 `인생`도 생각이 나더라구요. 역시 소박하고 유머러스했죠. 천카
이거 감독의 `패왕별희`나 `현위의 인생`은 솔직히 좀 재미없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무게감을
벗고 소박잔잔한 시도를 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좋은 영화, 시사회로 즐기면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린 한 관객이었습니다 ~~
언젠가 MBC에서 방송해줬던 '마오 사후 30년 후의 중국'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마오의 공산주의 실험이 현재에 남긴 유산을 짚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국공 내전,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을 겪었던 중국은 이제 소위 '태평양 시대'를 맞아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을 꾀하고 있지만, 아직도 역사의 그림자가 깊다는 내용이었다. 도시과 농촌 사이의 빈부격차는 극심하고, 적어도 평등을 제창했던 과거의 마오이즘, 공산주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개방과 경제발전은 어떤 사람들의 인생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역사에는 거대한 흐름이 있지만, 그 흐름은 어떤 사람들을 비켜가기도 하고, 혹은 반대로 밀어보내기도 하며, 그에 쓸려가는 사람들을 다 삼키기도 한다.
영화 '인생(活着)'은 변혁기의 혼란속에 당면한 중국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봉화의 출산을 위해 병원에 간 부귀(갈우)와 가진(공리). 문화혁명 당시, 아직도 솜털이 가시지 않은 젊은 여자애들이 의사노릇을 하고 있다. 봉화의 남편은 과거의 유산으로 고발당한 의과대학 교수를 데리고 오지만, 막상 위기의 순간이 닥쳤을 때는 빵을 먹다가 숨이 막힌 의사는 기진맥진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시퀀스. 봉화의 아이와 노인이 된 부귀와 가진은 아이들의 묘에서 돌아온다. 병아리를 어디다 키웠으면 좋겠냐는 손자의 물음에 부귀는 인형들을 담았던 빈 상자를 내어준다. 아이는 과거에 부귀를 살렸고, 그들의 가족을 살렸던 인형들이 들어있던 상자에 병아리를 담는다. 이 병아리들은 자라서 거위가 되고, 양이 되고, 소가 되고, 그리고.....공산주의 대신 그 소를 타고 갈 부귀와 가진의 아이들이 된다.
사람의 인생엔 언제나 두 부분이 있다.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개인,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개인. 최근에 담화분석의 기초로 구조가 체화되는 개인이라는 개념이 설명되어 있는 일련의 저작들을 다시 읽으면서 약간 괴로웠다. 내가 역사 속의 개인임을 되새기게 하는 작업들은 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내 일상의 세계에 균열을 가져온다. 나를 삼키고 있는 거대한 흐름을 보지 않고 내 눈 앞의 삶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좀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역사가 나의 삶을 바꾸고 있다는 인식은 나를 꽤나 무력하게 한다.
이 무력감과 갈등에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힘을 더한다는 면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위대한 이야기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울고 웃는 역설적인 경험을 하였는데, 웃음과 울음은 모든 위대한 얘기 속에 들어있다. 울음에서 웃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라면 더 그렇다. 내가 위화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역사 속의 인간이 그저 역사라는 바람 속의 나뭇잎으로만 흔들리다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이 웃음을 통해서 개인이 무력하지 않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부귀(福貴)와 가진(家珍)은 중국 근대를 살면서 혼란기 역사 속의 개인으로 수많은 일들을 겪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사건들은 부귀와 가진의 일생이기도 하다. 국공내전, 대약진 운동, 문화혁명. 이 사건들은 이들의 인생에 영향을 끼쳤고, 그 때마다 삶이 무너질 듯한 불행에서 이들은 걸어나온다. 이 두 주인공의 이름처럼 사람들은 모두 다 자기 인생에서 행운과 고귀한 인생, 가정의 보배(아이들과 가족의 평안)을 원한다. 개인적인 결함 때문에, 이들을 둘러싸고 있던 사회구조의 필연적 결함 때문에, 혹은 모든 인생에 내재된 아이러니로 인하여 이들은 원하고 바라던 인생의 목적을 위협받는다. 재산은 사라지고, 목숨은 위험에 처하고, 아이들을 잃는다.
그렇지만 부귀와 가진은 말한다. 인생은 견디는 거야, 희망을 잃으면 안 된다. 부귀가 했던 그림자 인형처럼 이들의 삶은 과거의 전통으로부터 이어져서 인형처럼 줄에 묶여서 살다가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태워지는 비극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빈자리에서 다시 어린이들이 자라난다. 노신의 결말과도 같은 인생의 결말은 역사가 지속될 수 있는 힘을 말해준다.
다큐멘터리에도 분명 이런 사람들이 등장했다. 빈곤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농촌을 떠나 공장노동자로 취직했다가 팔을 잃어 귀농할 수 밖에 없던 젊은이들, 공장 기숙사에서 살면서 모든 월급을 다 가족에게 보낸다는 앳된 얼굴의 소녀 공원들. 이들은 봉화의 아이, 부귀와 가진의 후손들이다. 그들을 얽어매었던 역사의 사슬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언제까지 끝나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젊은이들은 가끔 웃었고, 어떻게든 될 것이다, 혹은 할 것이라고 말한다. 재산을 다 잃은 뒤에 찾아온 평온, 아이를 잃은 뒤에도 이어지는 인생, 혁명 속의 결혼식, 그리고 다시 자라나는 병아리처럼 모두들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 역사가의 말처럼 역사는 불행해도 사람의 인생은 불행하지만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부귀와 가진의 인생처럼 슬퍼하지만은 않는 것이다. 어쨌거나 살아있어야 즐거움도 있다.
이 작품의 영화적 요소들 - 연출, 배경, 연기-에 대해서 따로 말할 필요가 있을까?
장이모가 앞으로 20년동안 멍청한 영화를 계속 만든다고 해도 1994년에 만든 이 영화 한 편으로 모두 용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