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는 조선 초기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날 무렵까지 남부 한국에서 대량 생산되던 그릇들이며, 이 그릇들의 계통을 따지자면 고려 시대의 청자기가 기술적으로 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신흥하는 조선 왕조의 발달한 문화적 기풍이 놀랄 만큼 성공적으로 반영된 사기그릇이다.그 욕심없는 부드럽고 무던한 그릇의 선과 장식 무늬의 탈속한 무심한 경지는 근대적인 참신한 감각을 이루어 이제 바야호로 세계 도자기계에 새로운 평가를 보이고 잇는 소중한 문화재들다.그러나 이 그릇 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이 한국에는 아직도 그 수가 적다. 그리고 이것을 알아보는 눈들 중에서는 이것을 사서 모을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이가 드물다.
일본인들의 분청사기의 아름다움에 대한 탐욕은 그럴 만한 연유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가식이 없는 소박한 매무새, 허탈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탐탁스러운 힘, 시작된 곳도 끝간 데도 모르는 어리숙 한 선, 익살스러우면서도 때로는 눈물겨은 그 모습, 저들로서는 도저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천정의 아름다움이 그들의 다도 속에 신선하고 아름다운 새 입김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현대 세계 도예 미술은 두 가지 큰 조류가 있다. 그 하나는 소위 스칸디나비아의 디자인이고, 또 하나는 일본인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도미모토 겐키치(富本憲吉)또 그의 동생이던 영국인 버나드 리치(Benard Leach) 등 일본계의 디자인이다. 일본계 디자인의 근저를 흐르는 아름다움의 방향은 조선 도자기의 아름다움이며, 이제 세계적 거장이라고 일컫는 이들 일본계 작가들은 모두 수백 년 전 조선의 무명 도공들의 무심한 경지를 뒤따르는 것만으로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이다.세계를 뒤덮은 일본계 도예의 붐, 이것은 말을 바꾸면 현대에 되살아나는, 500년의 수명을 지닌 조선 도자의 아직도 앳된 아가씨 모습임이 틀림없다.
<최순우 지음 학고재 간행 "나는 내것이 아름답다"중에서>
사진설명 (상) 粉靑沙器牡丹紋扁甁 15C-16C 高21.8Cm 국립박물관
(하좌)분청사기 象嵌雲龍紋壺 15C 高49.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하우)분청사기 剝地牡丹唐草紋甁 15C 高30.8Cm 국립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