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_ 세상을 채우는 신의 몸짓
활 같은 눈썹,
꾸웨 열매 같이 붉은 입술 위에 피어오르는 미소,
상투 튼 푸른 머리,
우유빛 재를 바른 산호빛 살결,
춤사위 속에 사뿐 들어올린 감미로운 황금빛 발,
그분을 볼 수 있다면,
이 광대한 대지 위 하찮은 인간의 삶도
가치 있으리.
- [떼와람], 7-8세기, 남인도
흔히 인도의 민족종교인 힌두교에서는 창조의 신 브라흐마, 유지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시바의 세 신을 섬긴다고 한다. 그러나 힌두교도들은 이 세 신을 동등한 자격으로 섬기는 것은 아니고, 이 세 신 가운데 하나를 궁극적인 근원의 신으로서 섬긴다. 또한 신앙 대상으로서 브라흐마는 역사적으로 극히 미미한 존재였다. 말하자면 비슈누교와 시바교가 주류를 이룬 것이다. 그렇다고 비슈누교와 시바교가 배타적인 것은 아니었다. 비슈누를 믿는 사람에게 시바는 비슈누의 다른 모습에 불과하고, 시바를 믿는 사람에게 비슈누는 시바의 다른 모습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비슈누나 시바는 세계의 유지나 파괴라는 신화상의 특수한 역할에 한정되지 않고, 나름의 신앙에 따라 세계의 시작이자 동시에 끝이며, 세계 그 자체로 여겨졌다.
[춤추는 시바상].
뉴델리박물관 소장.
그 중에서도 시바는 자연과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도인들의 가장 원초적이고 강렬한 상상을 반영한다. 그를 모신 인도의 신전에는 인간 모습의 상 대신 작은 기둥 모양의 상징물이 안치된다. ‘링가’라는 이 상징물은 남근의 형태를 추상적으로 다듬은 것이다. 남근 숭배는 어느 문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남근을 본뜬 조형물이 발달된 종교에서 중심적인 예배대상이 된 것은 풍요에 대한 인도인들의 꾸밈없는 염원을 보여준다.
[삼면 시바상].
엘레판타동굴.
6세기.
모헨조다로에서 출토된 인장에는 시바의 조형(祖形)으로 보이는 인물상이 새겨져 있다. 요가 자세로 앉아 있는 이 인물과 같이 후대의 시바는 숲속에 사는 위대한 요가 수행자로 여겨졌다. 이 인물의 머리에는 커다란 황소의 뿔이 양쪽으로 뻗어 있다. 고대 서아시아처럼 인더스문명기의 인도에서도 황소는 폭풍우와 성적 에너지의 상징으로 널리 숭배되었다. 따라서 이 인물에 황소의 이미지가 반영된 것은 놀랍지 않다. 이보다 흥미로운 것은 황소가 장차 풍요의 신인 시바의 한 속성을 이루게 되었다는 점이다. 황소는 난디라는 이름으로 시바의 종자가 된 것이다.
인더스문명기를 이어 베다시대(기원전 1500~600년)에 우리는 시바의 직접적인 원형을 보게 된다. 그 이름은 루드라이다. 붉은 빛의 루드라는 사나운 폭풍과 같이 인간과 가축에게 질병과 죽음을 가져오는 무서운 신이며, 불의 신 아그니에 비견된다. 불로 세계의 종말을 일으키는 파괴의 신으로서의 이미지가 여기 이미 배태되어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자신에게 간구하는 이들을 구제해주는 자비로운 측면도 지닌다.
베다시대를 지나 인도인들이 세계와 존재의 근원을 하나의 신으로 형상화하면서, 고대 남근 숭배와 루드라의 속성을 이어받은 시바는 비슈누와 더불어 많은 신들 위에 우뚝 선 제1의 신의 위치로올라섰다. 기원후 5세기부터는 시바를 모신 신전이 점차 늘어났다. 이러한 신전에는 대부분 성소에 링가가 모셔졌다. 6세기에 뭄바이(봄베이) 앞 바다에 세워진 엘레판타 석굴에는 링가의 성소와 더불어 한쪽 벽에 거대한 시바의 삼면상이 새겨졌다. 다른 문명의 미술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여러 개의 머리는 기형이 아니라 신적인 존재의 전지전능한 능력을 상징하는 인도인들만의 특별한 기호였다. 세 개의 얼굴 가운데 중앙의 것은 ‘위대한 신 시바’를 나타낸다.
간다라 지방에서 출토된 삼면상 시바
Three-headed Shiva, Gandhara, 2nd century CE
오른쪽의 꽃을 든 여인의 모습은 시바의 자비로운 측면을 상징한다.
왼쪽에는 송곳니가 드러나고 머리에 해골 장식이 있는 험상궂은 모습이 있다. 이것은 시바의 흉포한 측면을 상징한다. 이와 같이 시바에게는 여자와 남자, 자비로움과 흉포함, 삶과 죽음, 창조와 파괴의 양면성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시바는 그러한 모든 것의 근원이며, 그러한 대립이 해소된 위대한 하나인 것이다.
춤추는 시바_ 뉴욕 박물관 소장
이처럼 엘레판타 곳곳에는 시바의 여러 신화적인 형상들이 새겨져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한쪽에는 요가 수행자 모습의 시바가, 다른 한쪽에는 춤추는 모습의 시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요가 수행자의 모습이 시바의 정적인 면을 상징한다면, 춤추는 모습은 동적인 면을 상징한다. 시바는 ‘춤의 왕’이기도 하다. 인도인들에게 전통적으로 춤은 늘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춤은 개인적인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신의 이야기의 표현이었다. 그러한 춤의 왕이 시바인 것이다.
다른 한 손으로는 치켜든 발을 가리키고 있다. 이 발은 휴식을 뜻한다. 몸을 지탱하고 있는 발은 안정의 상징이다.
그 아래에는 무지를 상징하는 작은 어린아이가 있다. 이와 같이 이 상에는 세계의 창조와 유지와 파괴의 이미지가 통합되어 있다. 여기서 시바가 추는 춤은 단순히 화장터의 유희가 아니라, 창조와 유지와 파괴를 거듭하는 세계의 움직임을 상징한다. 아니 어쩌면 세계의 그러한 움직임 자체가 시바의 유희에 불과하지 않을까.
남인도에서 쓰여진 또 하나의 시는 춤추는 시바에게 다음과 같은 헌사를 바친다.
시작이자 끝이신 우리의 주는
물라왐 북의 그윽한 소리에 맞추어
타오르는 화염을 손에 들고 춤을 추네.
화장터의 재를 바른 그가 바로
훌륭한 도시에 사는
우리의 주이시네.
- [떼와람], 7-8세기, 남인도
글_이주형,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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