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계사의 규모와 미래까지 편한한 대둔산 밑자락의 아름다운 과수원길을 내려서 길다란 석별을 마음에 안은채 뒤로하고 안심사로 향한다. 법계까지는 논산시 양촌면이지만 바로 내려서 조금 지나면 개울까로 달리며 충정도와 전라도의 도계를 넘어선다. 이제부터는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이다. 안심사는 운주면 안심리라는 대둔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서 약 십리정도 들어가있는데 길이 꽤 가파르다. 한참을 정신없이 하늘만 보며 올라가게 된다. 온산이 너무 오묘하게 생겨 그것만 보며 올라도 십리길이 금방이다.
한참을 오르니 언덕에 잘 조성되어 있는 공원같은곳에 일주문이 버티고 있었다. 아마도 찻길을 피해 이곳으로 옮긴 것 같다. 이곳도 돌산이라 그러한지 돌 다루는 솜씨들이 보통이 아니다. 또한 이곳에서 마을을 내려다 보면 확트인 시원한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이길로 조금 오르면 부도전과 사적비를 만난다. 이런 표현이 어쩔런지는 몰라도 부도전이 너무나도 예쁘게 조성되어 있어 발길을 끈다.
[안심사 일주문 (大鈍山安心寺)...]
안심사 사적비에 의하면 "안심사는 신라 선덕여왕 7년(서기638)에 지장율사에의해 창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 뒤 도선국사에의해 중창 되었으며, 신라 조구화상에의해 재중창 되었다고 한다. 지장율사가 삼칠일을 기도하던 중 부처님이 나타나 열반성지 않심입명처로 가라는 말씀에 이곳으로와 정진하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 안심사라 정하였다." 고 쓰여져 있다 한다.
안심사는 6.25 전쟁 이전만 해도 30여채가 넘는 전각과 13개의 암자가 있었던 웅장한 사찰이었는데 아군에 의해 불타 버린 후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다만 부처님 진신사리와 치아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부도와 안심사의 역사를 말해주는 안심사 비문을 통해 옛적의 안심사 규모와 역사의 흔적을 겨우 더듬을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안심사 부도전...]
일주문을 들어서자마자 늦가을의 전령사처럼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서 있고, 그곳에 부도밭이 인상적이다. 부도밭에는 절에서 주석했던 여러 고승들의 부도를 모은 부도 밭이 있는데 '안심사 부도 및 부도전'이라는 이름으로 현재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 109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전부 8기의 부도가 모아져 있다. 현재 3기의 부도가 남아 있는데 그 중 1기는 서환당의 것이다. 안심사의 부도와 부도전도 그 중 하나로,
부도는 승려의 시신을 화장한 후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둔 곳이고, 부도전은 절의 앞이나 뒤쪽에 설치하여 그 안에 부도를 세워두던 널찍한 공간을 이른다. 부도는 땅위로 얕게 드러난 사각 바닥돌 위로, 낮은 8각 기단(基壇)을 마련한 후 종모양을 한 탑신(塔身)을 올렸다. 기단은 여덟 면마다 선으로 공간을 만들어 안상(眼象)을 얕게 새기고, 윗면에 연꽃무늬를 선명하게 새겨두었다. 탑신의 꼭대기에는 꽃봉오리모양의 돌을 얹어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안심사 부도전...]
사찰에 전해오고 있던 석가불타의 치아사리 1과와 10과의 사리를 모시기 위하여 부도전을 건립하였다. 당시 안심사에 있던 명노 스님의 주장으로 하여 수십명의 시주 받아 5개월여에 걸쳐 부도전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형식의 부도들이지만, 자연과 어울린 분위기는 고즈넉하게 느껴진다.
[무척 오래된 것 같은 부도...]
부도전은 옛부터 이 절에 전해오던 부처님의 치아 한 개와 사리 열 개를 모시기 위해 지은 것으로, 세조가 직접 글을 짓고, 글씨까지 보내주어 이를 보관해 둘‘어서각(御書閣)’을 함께 지어두었다 하나 이 역시 불에 타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부도전은 앞면과 옆면에 돌을 길게 깔아 직사각형 모양의 축대를 이루게 하고, 그 위로 비슷한 크기의 판돌을 한줄로 길게 쌓아 놓았다. 특히 이 판돌은 아래에 연꽃무늬를, 윗부분에는 ‘회(回)’자 무늬를 두어 장식하고 있다. 네 모퉁이에는 갑옷을 입고 무장을 한 사람모양의 석상이 안쪽을 향해 서 있다.
절내에 남아있는 사적비를 통해, 조선 1759(영조 35)에 만든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안심사 부도전은 1759(영조 35)에 건립된 것으로서 세조가 직접 글을 짓고, 글씨까지 써서 안심사에 보내주었으며, 글씨를 보관하기 위해 어서각도 함께 세웠다. 그리고 부도전을 세운 목적은 당시까지 이 곳 안심사에 전해오고 있던 석가불타(釋迦佛陀)의 이빨 1개와 10개의 사리를 모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당시 안심사에 있던 명응(明應) 스님을 중심으로 수십명의 시주를 받아 5개월여에 걸쳐 부도전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입구 부도전옆의 고목엔...]
[대둔산과 감나무...]
[안심사 적광전(寂光殿) 비로자나불이 모셔진곳...]
적광전은 1991년에 세웠고, 정면 5칸, 측면 3칸에 인공석축 위에 다포형식으로 지은 팔작지붕의 형태를 지닌 목조기와집이다. 편액은 ‘적광전’이고 주련은 6기가 걸려 있으며, 양쪽 2칸의 2분합문이고 중앙은 4분합문으로서 빗살창문을 하고 있다. 내외부에 단청이 아름답고 외벽화는 그려져 있지 않다. 내부 천장은 우물반자에 화려하고 장엄한 단청이 칠해져 있으며 닫집이 웅장하고 장식적이다.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좌상을 비롯하여, 보살입상과 지장보살입상이 봉안되어 있고, 후불탱을 비롯하여 지장탱과 신중탱이 걸려 있다. 내부에 모셔져 있는 의식구로는 중종 2개가 있는데, 그중 1개는 건륭 25년(1760, 영조 36)의 명문이 있고, 또 하나는 석 현웅 주지가 조성한 것이다
[경내엔 곳곳에 국화가...]
[국화꽃에 벌이...]
[은행잎이 소복히 쌓여만 가고...]
[홍일점?...노란은행잎 가운데 빨간 단풍이...]
[안심사 칠성각-북두각이라하기도-칠성신앙과 북두칠성은 무관 현재는 삼성각이라고...]
삼성각은 1999년에 정면 3칸, 측면 2칸에 인공기단 위에 원형주춧돌을 놓고 두리기둥으로 주심포 형식의 맞배지붕으로 지은 목조기와집이다. 이전까지는 칠성각으로 불렸는데, 현재 전각의 편액은 ‘삼성각’으로 되어 있으며 주련은 4기가 걸려 있다. 전각의 내외부는 단청으로 화려하게 칠해져 있고, 외부의 벽화는 나한도와 산수도가, 내부의 벽화로는 나한도와 연꽃, 난초, 매화 등이 그려져 있다.
창호는 교살창의 2분합으로 되어 있으며, 수미단 위에 근래 불기 2543년 2월 9일에 금어 조정우(曺廷宇)가 조성한 칠성탱, 같은해 같은 사람이 제작한 용왕탱화 및 독성탱화가 모셔져 있다. 사리계단에서 삼성각은 그다지 멀지 떨어져 있지 않지만 계곡물이 흐르는 계류가 지나므로 석재로 조성한 무지개 다리를 건너 가게 되어 있다. 뒤쪽에 자라는 아름다운 나무와 함께 어우러져 고찰다운 인상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그런 곳이다.
[사리부도전 옆에...]
[안심사 적멸보궁앞 사리부도전...]
사리부도에는 전신사리, 쇄신사리, 생신사리, 법신사리 이렇게 4가지로 구분이 되는데 사리란 한량없는 공덕을 쌓아 생기는 계, 정, 혜로써 훈수로 생기는 것인데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육신을 다비해 나온 진주처럼 생긴 것을 부도에 넣어 보관하는 곳이 적멸보궁이라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 적멸보궁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의 5대적멸보궁이라는 양산 통도사, 오대산 월정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외에도 건봉산 건봉사, 그리고 또 대둔산 안심사에서도 보게 되는 영광을....
[안심사 적멸보궁을 옆에서...]
[안심사 적멸보궁안에서 사리부도전을...]
이 부도전 앞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안심사 부도 및 부도전(浮屠殿)-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109호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소재. 이 구조물은 석가모니의 치아 한 개와 사리 열 개를 모시기위해 조선 영조 35년(1759)에 세웠다. 부도전은 앞면과 옆면에 긴 직사각형 돌을 놓아 축대를 쌓고, 그위에 비슷한 크기의 돌판을 한 줄로 얹었다. 돌판에는 연꽃과 회(回)자문양을 섬세하게 조각하였다. 부도전의 네 귀퉁이에는 장군모양의 돌조각을 놓았다. 부도전 중앙 뒤쳔에는 종모양의 부도가 있는데, 받침부와 지붕에 새긴 문양이 매우 섬세하다. 부도전을 짓기에 앞서 세조가 직접 글을 짓고 글시를 써 주었는데, 그 글시를 보관하기 위해 별도의 건물을 함께 지었다고 한다. 이렇게 표지판을 이용 알려주고있다.
[오래된 부도탑이...]
[안심사 감로수의 수각...]
[안심사 산신각 오르는 문...]
[안심사 산신각 -산신당이라고도-...]
산신각은 1998년에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인공기단 위에 원형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주심포 형식에 맞배지붕으로 세운 목조기와집이다. 편액은 ‘산신각’이고 주련은 2기를 걸어 놓았으며, 내외부에 단청을 칠하고 외부벽화는 산신도와 비천도 및 주악천인을 그렸으며, 내부벽화는 산수도를 그려 놓았다. 내부의 불상으로는 산신목각탱을 걸었으며, 수미단과 닫집은 용머리의 조각이 아름답다. 적광전 뒤쪽에 인공계단을 지나 산신각 문이 따로 나 있으며 그 위쪽으로 꺾여 위치한 산신각은 안심사에서도 풍광이나 조경이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 산신각 전체를 대나무가 빙 둘러 싸고 있으며, 단풍이 아름답게 물드는 갈참나무가 만들어내는 조화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과도 같다.
[산신각앞에서 내려다본...]
[안심사 산신각 오르는 계단...]
[지붕위엔 그림같이 낙엽이...]
[초겨울에 코스모스가...]
[하루만 지나면 멋진?...]
사찰엔 비구니 스님들 뿐이었다. 바쁘게 들 김장 담구시느라 정신 없으신가 보다. 오늘도 벌써 사찰을 세군 데나 둘렀으면 서도 공양시간은 놓치고 말았다. 왜 사찰 안에 서는 배고 품을 느끼질 못하는지 아니면 정신을 빼앗기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바쁘게 찾아 가야할 곳이 점심을 해결해야 할 식당인 것이다. 다음코스는 완주군 경천면에 소재한 화암사 이다. 화암사는 가천리 불명산 자락에 있어 오르는 계곡이 너무 아름답다고 한다. 기대를 안고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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