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피트리 실내 조각 공원에는 <레다와 고니(Leda and the Swan)> 라는 조각상이 두 개나 있다. 하나는 쟈끄 사라쟁(Jacque Sarrazin, 1592-1660)이라는 프랑스 조각가가 1640년대에 대리석으로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시 프랑스 조각가인 미셸 앵귀에(Michel Anguier, 1612-1686)가 1645년에 석회암으로 만든 것이다.
이 두 작품은 모두 실물보다 1.5배쯤 크게 만들어져 크기가 비슷하다.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고도 부르는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내다보이는 창문 반대편 깊숙한 안쪽 기둥 옆에 놓여 있다. 두 <레다와 고니>는 불과 5미터쯤 떨어져 전시돼 있지만 한 아름쯤 되는 돌기둥에 가려서 서로 마주 보이지는 않는다.
레다와 고니 (Leda and the Swan, 1640-50)
쟈끄 사라쟁(Jacque Sarrazin, 프랑스)
두 사람의 프랑스인 조각가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제목의 조각상을 비슷한 크기로 만들었던 것 까지는 우연의 일치였다고 치자. 그러나 그 두 작품이 결국 대서양을 건너 메국의 같은 미술관의 같은 전시실에 나란히 전시됐다는 건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니다. 관심이 끌릴 수 밖에 없다.
사라쟁의 <레다와 고니>는 가슴을 다 드러낸 아리따운 아줌마가 하나, 큼지막한 고니가 한 마리, 그리고 세살 박이 남자 아이 한명으로 구성돼 있다. 아줌마는 통통한 오른 허벅지 위에 고니 한마리를 올려 놓았고 오른 손으로는 그 고니를 감싸 안고있다. 그 옆에는 이제 갓 세살이나 됐음직한 남자 아이가 등에는 쬐그만 날개를 달고 손에는 활시위를 쥐고 나란히 서 있다. 한 눈에 큐피드라는 걸 알 수 있다.
레다와 고니 (Leda and the Swan, 1645)
미셸 앵귀에(Michel Anguier, 프랑스)
한편 앵귀에의 <레다와 고니>에도 가슴을 드러낸 예쁜 아줌마와 큼지막한 고니 한마리가 나오지만 날개를 달고 활을 든 남자 아이는 없다. 또 여기서는 고니가 아줌마 무릎에 올라 앉은 것도 아니다. 그냥 둘이 나란히 서서 키가 작은 고니의 목을 예쁜 아줌마가 쓰다듬으면서 그윽히 바라보는 모습이다.
‘스완(Swan)’을 ‘고니’라고 번역한 것을 양해 하시기 바란다. 보통 ‘백조’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가 없다. 백조는 ‘하얀새’라는 뜻인데, 고니의 색깔이 희기만 한 것은 아닌데다가 이 작품들에서는 고니가 흰색이냐 아니냐가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제목의 다른 그림이나 조각에는 ‘검은 고니’로 묘사돼 있는 경우도 있다. 검은 새를 ‘백조’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스 신화 이야기를 조금만 해 보자. 신화는 전설의 일종이다. 신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이다. 그리스와 로마에는 신들이 많았다. 그만큼 이야기 거리도 많을 수 밖에 없다. 오죽하면 신들의 계보를 정리하기 위해 신통기라는 책까지 써야 했을까.
올림포스 뿐 아니라 천지 사방에 흩어져 서식하던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이 가장 즐겼던 소일거리는 전쟁과 연애다. 다른 말로 쌈박질과 섹스라고도 한다. 지나친 일반화일지는 모르겠지만 오바는 아닐 것이다. 호머의 책이든 신통기의 책이든, 눈감고 아무데나 척 펼쳐 보기 바란다. 반드시 전쟁이나 연애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둘다 얽혀서 나올 가능성이 높은 것은 물론이다.
누군가 그랬다. 자기가 죽을 걱정만 없다면 전쟁처럼 신나는 일이 없을 거라고. 그리스의 신들이 바로 그랬다. 그들은 죽을 염려가 없었다. 불로였고 장생이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전쟁만큼 짜릿하고 신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죽을 수 없다는 것은 전쟁이 주는 스릴과 서스펜스를 반감시킬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신들은 죽을 수 있는 사람을 충동질해서 쌈박질을 시켰다. 자기편이 불리해 지면 직접 나서서 본때를 보여주는 일도 다반사였다.
연애에 대해서라면 두말하면 잔소리겠다. 그리스의 신들은 섹스를 너무너무 좋아했다. 당시 올림포스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섹스 행각은, 요즘 서울이나 뉴욕, 빠리나 암스테르담의 러브호텔에서 펼쳐지는 섹스 행각을 훨씬 능가한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신들의 그림이나 조각이 거의 누드일 뿐 아니라 섹스 어필을 최대한 강조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신들의 섹스를 통해 새로운 신도 태어나고, 영웅과 미인도 출생했다. 그 영웅과 미인들은 다시 신들의 음모와 질투와 분노에 휘말려 차례로 죽어간다. 하지만 어쩌랴. 신들의 음란과 질투, 분노와 전쟁이 바로 인간 역사의 원동력이었던 것을… 적어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그랬다는 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트로이 전쟁이다. 실제로 <레다와 고니>는 트로이 전쟁의 첫 단추였다.
그리스 신화의 두목은 제우스다. 그리스 신들의 주 관심사가 전쟁과 섹스라면, 그 총대빵이었던 제우스는 그 두 부문의 챔피언이었음에 틀림없다. 정말로 그랬다. 그는 무척 힘이 세서 다른 신들의 도전을 끊임없이 좌절시켰다. 그리고 그는 연애 능력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었다. 그의 섹스는 강간인 경우도 없지 않지만, 대개는 화간이다. 무슨 수를 쓰던지 우선 상대의 마음을 사고야 만다. 그리고 나서 섹스를 갖는 것이다. 그럼 둘다 만족한다. 그런 점에서 제우스는 카사노바의 전형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제우스의 연애 편력은 화려했다. 섹스 상대로 신과 사람을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 사람도 아니고 신도 아닌 님프를 건드린 적도 있다. 사람 중에서도 평민과 왕족의 구별이 없었고, 처녀와 유부녀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남자와 여자도 가리지 않았으니 더 말해 뭣할까. 그저 아름답거나 잘생기기만 했으면 에누리없이 ‘작업’에 들어가곤 했다.
<레다와 고니>도 제우스의 섹스 행각에 관한 조각상이다. 레다(Leda)는 스파르타의 왕 틴다레우스 (Tyndareus)의 아내였다. 왕비였다는 말이다. 미모가 지나치게 출중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제우스의 눈에 띠고 만 것이다. 그러나 제우스는 경비가 삼엄한 왕궁에 잠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변신술이었다. 제우스는 고니로 변신해서 목욕/물놀이(?) 중이던 레다의 품에 뛰어 들었다. 사실 그는 변신에 능하다. 다나에게 접근할 때에는 황소로 변신했었고, 가니메드에게 접근할 때에는 독수리로 변신했었다.
고니는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지만 이 첫 만남이 우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물놀이/목욕로 이미 반라가 돼 있는 레다 품에 황급하게 뛰어 들었다. 얼떨결에 고니를 품에 안은 레다는 하늘을 봤다. 커다란 독수리가 원을 그리면서 고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모성의 보호 본능 때문이었을까? 레다는 고니를 안고 왕궁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게 바로 고니/제우스가 노리던 바였다.
사실 독수리는 제우스의 아들 헤르메스였다. 제우스가 헤르메스더러 독수리로 변신해 자기를 쫓는 척 하라고 해 둔 것이었다. 헤르메스는 아버지의 엽색 행각에 적극 협조했다. 이 정도면 헤르메스의 효도 수준도 보통은 넘는다. 하지만 제우스는 헤르메스의 입막음을 단단해 해 두어야 했을 것이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질투 수준 역시 보통은 훨씬 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부자의 공동 작전으로 쉽게 반라의 미녀 품에 안겨 왕궁 안으로 들어간 제우스는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성급하게 서두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제우스는 고수였기 때문이다. 기다란 목을 고혹스럽게 꼬면서 레다를 바라보았다.
이때쯤 레다도 이게 보통 고니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제우스는 자기 정체를 밝혔다. 레다는 찬찬히 고니를 뜯어 보았다. 그렇잖아도 자태가 우아한 고니가 더욱 멋들어져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는 열망을 그득담은 제우스의 눈빛…. 레다의 가슴은 뛰기 시작한다. 사라쟁과 앵귀에의 <레다와 고니>는 똑같이 이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제우스는 자기 정체를 밝히며 ‘널 갖고 싶어’ 하는 의사를 전했고, 그런 제우스를 바라보면서 레다는 연정이 동하기 시작했다. 레다로서도 ‘웬 떡이냐’고 생각했는 지 모른다. 사람의 몸으로 신의 몸을 영접(?)하다니. 용납의 눈빛을 읽은 고니/제우스는 아름다운 날개를 펼쳐서 레다의 몸을 구석구석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고니/제우스와 여인의 섹스가 이뤄졌다.
대개의 불륜은 ‘한강에 배 지나가기’로 끝나는 법이다. 하지만 어떤 불륜은 아주 복잡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고니와 레다의 경우는 후자에 해당한다. 레다가 제우스와의 섹스를 통해 임신하고 출산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임신/출산을 통해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의 시작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주인공들이 탄생했던 것이다.
신화답게 레다가 낳은 것은 알이었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레다가 영접한 것은 고니였기 때문이다. 고니는 조류이며, 조류는 난생이지 않는가. 그러니 고니의 씨를 잉태한 레다가 알을 낳은 것은 지극히 그럴 듯한 일이다. 조류와 포유류가 섹스를 가지면 조류쪽 생식 방식을 따르는 게 자연스런 일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조류가 수컷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 그리스 신화에서는 수컷 사람이 암컷 고니와 교접하면 고니는 사람을 낳게 될까? 그것이 궁금하기는 하다.)
레다가 알을 ‘두 개’나 낳았다는 점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약간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레다가 고니와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그날 밤, 전쟁에 나갔던 남편 튄다레우스가 귀가 했다. 폭력이 난무하던 전쟁터에서 돌아온 튄다레우스가 절세의 미녀인 아내 레다를 보고 욕정을 발동시킨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레다로서는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낮에 고니하고 벌써 했는데요’ 했다가는 무슨 험한 꼴을 당할 지 몰랐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레다는 아뭇소리 못하고 상대를 바꿔서 2차전을 뛰게 된다.
제우스는 공정했다. 하루에 두 탕을 뛴 레다에게 두 개의 알을 낳게 한 것이다. 하나는 제우스 자신을 위하여, 다른 하나는 튄다레우스를 위하여다. 알이라는 게 겉으로 표시가 나는 게 아니잖은가. 그래서 아마도 레다는 두 개의 알을 모두 정성껏 품었을 것이다. 때가 되자 두 알에서 각각 두 명씩의 어린 아이들이 껍질을 깨고 나왔다.
제우스의 알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헬레나(Helena)와 폴리데우케스(Polydeuces)였다. 신의 혈통이므로 이들은 불사이기로 돼 있었다. 튄다레우스의 알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카스토르(Castor)와 클리템네스트라(Clytemnestra)였다. 이들은 이후 그리스의 역사를 화려하게 바꿔놓는다. 특히 헬레나와 클리템네스트라는 트로이 전쟁과 긴밀하게 얽혀있다.
트로이 전쟁 이야기를 길게 할 게재는 아니니까 간단히 요약만 하자. 우선 헬레나는 트로이 전쟁을 일어나게 한 장본인이다. 메넬라오스에게 시집간 헬레나는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홀딱 반하게 된다. 그건 아름다움의 여신이라는 아프로디테의 도움 때문이다. 아프로디테는 파리스의 도움으로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선택돼 사과를 상으로 받은 바 있었다. 그 반대급부로 아프로디테는 파리스에게 “그리스에서 제일 이쁜 여자를 소개 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게 바로 헬레나였다.
헬레나와 눈이 맞은 다음 배까지 맞춘 파리스는 헬레나를 데리고 트로이로 가버렸다. 마누라를 뺏긴 메넬라우스는 형님인 아가멤논을 충동질해서 트로이로 쳐들어가게 된다. 그리스의 내노라 하는 영웅들이 모두 헬레나 되찾기에 참가했고, 결국 10년 전쟁 끝에 트로이는 쑥대밭이 된다.
한편 클리템네스트라는 트로이 전쟁의 에필로그를 장식한다. 클리템네스트라는 메넬라우스의 형이자 트로이 전쟁의 총사령관이었던 아가멤논의 아내다. 그러나 트로이에서 승리하고 의기양양하게 개선한 아가멤논을 기다린 것은 클리템네스트라의 칼날이었다. 클리템네스트라가 전쟁에서 돌아와 목욕하는 아가멤논의 가슴에 칼을 꽂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트로이 출전을 위해 아가멤논이 클리템네스트라와 낳은 딸 이피게네이아를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산 제물로 바쳤기 때문이다.
트로이 침공을 위해 수만명의 병사와 수백척의 전선이 준비 됐는데 바람이 불어주지 않았다. 총사령관이었던 아가멤논은 아프로디테가 자기 딸의 피를 원한다는 신탁을 받게 됐다. 아프로디테는 자기를 ‘제일 이쁜 여신’이라고 선택해 준 파리스를 도우려고 그런 무리한 요구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가멤논은 딸을 희생시킨다. 자기 딸의 목숨을 구하려고 역사의 진행을 미룰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가멤논은 제수인 헬레나를 구하기 위해 제 친딸 에피게네이아를 희생시킨 셈이다.
역사를 바꿀 전쟁을 위해 아가멤논이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킨 것은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피게네이아의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가멤논이 전쟁터에서 트로이인들에게 피비린내를 일으키는 동안 클리템네스트라는 미케네의 왕궁에서 남편의 피비린내를 준비하고 있었다. 딸을 잃고 남편을 죽인 클리템네스트라는 결국 자기 아들 오레스테스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트로이 전쟁은 그 막을 완전히 내린다.
10년에 걸쳐 수 많은 영웅들이 피를 흘리고, 수만명의 젊은 병사들이 사지로 내몰리면서 결국 소아시아 최대의 문명 도시국가 하나를 초토화시켰던 트로이 전쟁은 헬레나 때문에 시작되어 클리템네스트라 때문에 끝맺어진 셈이다. 이 두 여인은 모두 모두 스파르타의 여왕 레다의 딸이었지만 그들의 아버지는 달랐다. 헬레나의 아버지는 올핌포스의 왕이었고 클리템네스트라의 아버지는 스파르타의 왕이었다.
다시 말해 트로이 전쟁과 관련된 모든 아수라장은 <레다와 고니> 사이에 벌어졌던 한번의 섹스에서 비롯됐다는 말이다. 그러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두 <레다와 고니> 설명문에는 이런 구절을 추가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한 번의 섹스가 세상을 바꿉니다.”
제우스는 전쟁과 섹스의 챔피언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레다와 고니>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다 보니 제우스에게 타이틀을 하나 더 안겨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섹스와 전쟁으로 교묘하게 인간 역사를 조작한 ‘음모의 챔피언’임에 틀림없다.
'전쟁'과 '섹스'와 '음모'의 3관왕, 제우스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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