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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그림 총 집합. 조선 최고의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1745~?)의 작품 120여점이 나오는 ‘단원대전’이 15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열린다. 1995년 단원 탄신 250돌 기념전이 열렸을 때도 내보이지 않았던 단원 그림들이 대거 선보이는, 그야말로 사상최대의 단원 그림전이다.
조선 후기사회의 핵심 문화 키워드는 실학과 진경(眞景). 겸재(謙齋) 정선이 우리 고유의 화풍을 세워 진경시대를 활짝 열었다면, 단원은 진경 회화를 화려하게 마무리지은 화선(畵仙)이다.
겸재의 진경풍속화풍을 10년 후배인 관아재(觀我齋) 조영석이 계승해 풍속화의 시조가 되었으며, 겸재의 제자인 현재(玄齋) 심사정은 명의 남종화를 받아들여 조선 남종화의 시조가 된다. 단원의 진경풍속화풍은 조선의 고유색과 조선 남종화풍의 접목으로 이뤄졌다.
단원은 표암(豹菴) 강세황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되었으며 일곱살 아래인 정조의 어진을 그리면서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그는 연풍현감 시절 사냥과 여색을 가까이 하면서 비리로 탄핵 당하는 등 말년운이 좋지 않았다. 이번 전시엔 단원의 모습인 듯 매사냥하는 그림도 포함되어 있다. 구속받지 않으려는 화가의 자유분방한 기질 때문이리라.
그는 산수·인물·영모·화조·사군자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그 중에서도 인물풍속화가 발군이었다. 신선이나 불교의 고승·나한 등을 그린 도석(道釋) 인물화에서도 모두 우리 모습, 우리 인물로 그려놓았다. 소 타고 함곡관을 나서는 노자(老子)도 주먹코에 눈 작은 조선 노인이며, 달마 역시 눈을 부라린 중국인이 아닌 조선의 선승이요, 남해 관세음보살은 우리네 어머니처럼 푸근하게 그려졌다. 조선 초기 그림에 등장하던 물소가 우리의 소로 그려지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단원에 와서의 일이다.
단원은 중국 남종화의 영향을 받아 공간 구성에 무척 신경을 썼다고 한다. 필묵이 겸재처럼 웅혼하지 않으면서, 현란하고 세련된 것이 특징이었다. 산수는 특히 겸재에 비해 크게 뒤지는 것으로 보인다. 단원 스스로도 산수로는 승산이 없다는 판단이어서인지 인물화에 더 주력한 인상이라는 것. 금강산에 직접 가서 사생을 한 그림들도 나온다. 임금의 안목에 맞추다 보니 독창성 있는 화면 구성보다는 사진에 가깝게 그린 실경들이 대부분이다.
단원은 화원 신분에 불만도 많았던 모양이다. 자신이 중인이지만 겸재처럼 사대부인 척 그린 그림들도 많다. ‘空山無人 水流花開(빈산에 사람 없어도 절로 물 흐르고 꽃 피더라)’ 같이 문사들의 세계를 표현한 그림이 있는가 하면, 기생의 춤사위처럼 요염한 자태의 매화 그림도 있다. 화원 그림이기엔 문인의 체취가 강하고, 문사들은 또 따를 수 없는 심오한 화기가 보이는 그런 그림들이다.
그의 만만치 않은 장난기가 드러난 작품도 많다. 진흙에서 옆걸음 치는 게를 통해 선비의 기상을 흠모하기도 하고, 호랑이 탄 스님 그림에서 호랑이를 동네 개처럼 묘사해 친밀도를 나타내기도 했다.
단원의 작고 연도는 정확치 않다. 1805년까지의 행적이 보이고 그 뒤론 분명치 않다. 1806년 추정이 많지만 1805년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1805년이라면 올해는 단원 탄신 260주년이자, 서거 200주기가 되는 해이다.
전시를 기획한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최완수 연구실장은 “단원은 조선이 세계문화의 중심이라는 철저한 조선중화의식을 갖고 있었다”면서 “단원 그림의 전모를 펼쳐보이는 전시로 꾸몄다”고 말했다. 관람료 없음. (02)7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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