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고전 ,야경,방

신륵사와 강월헌

모링가연구가 2008. 11. 18. 20:07

정해년 가을 1박2일 여행중에 2일째 들린 신륵사이다. 

 

로부터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신륵사는 신라 진
평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어느 날
원효대사의  꿈에 흰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지금의
절터에 있던 연못을 가리키며  신성한 가람이 설 곳이
라고 일러준 후 사라지니,그 말에 따라 연못을 메워 절
을 지으려 하였으나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이에 원효
대사가 7일동안 기도를 올리고 정성을 드리니 9마리의 용이  그 연못에서 나와 하늘로 승천한 후에야  그곳에
절을 지을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러나 이는 이곳에 절을 짓기가 어려웠던 사실을 전하는 전설일 뿐 정확한 문헌사료가 없어 창
건의 유래를 확실히 알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절 이름에 관한 유래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고려 우왕 때 여주에서 신륵사에 이르는 마암 馬岩 이란 바위 부근
에서 용마 龍馬 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자 나옹선사가 신기한 굴레를 가지고 그 말을 다
스렸다는 설화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고려 고종 高宗때 건너편 마을에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이를 사람
들이 붙잡을 수 없었는데, 이때 인당대사 印塘大師 가 나서서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으로 제압하였다하여 신력 神力 의 신" 神 " 과 제압의 뜻인 륵" 勒 "을 합쳐 신륵사 " 神勒寺 " 
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로부터 농경사회에서 용은 물의 변화신으로 여겨져 왔다. 이처럼 용과 관련된 설화는 신륵사가
강가에  있음으로 해서 생겨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홍수와 범람이  잦은 남한강의 자연환경과
지역적 단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옛 선인들이 이 절을 세우고  강을 돌본 것에서  이러한 설화가 생
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속에는 한국의 자생풍수에 따른 비보 裨補  적인 의미 역시 부
여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려 때에는 신륵사 내 동대 東臺 위에 서 있는 전탑 때문에 벽절이
라 부르기도 하였다.

 


 

 

 

                                     암반 위에 세워진 강월헌 과 남한강이 잘 어우린다.

 

                                                         강월헌 아래로 뜨다니는 황포돗대 유람선

 

 

강월헌(江月軒)은 나옹선사님의 호이다. 선사님께서 이 신륵사에서 입적을 하셨는데,

다비를 한 장소가 남한강을 머금고 있는 이곳 암반이었는데 후에 그 자리에 정자를 짓고

선사님의 호를 따서 강월헌이라 현액을 달았다. 천하의 명당이다.

 나옹선사님 께서는 이 곳에서

그 유명한 시를 지어셨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靑山見我 無言以生  蒼空見我 無塵以生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蒼空見我 無塵以生

  無 성 냄도 벗어 놓고 탐욕도 벗어 놓고

            解脫嗔怒 解脫貪慾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如山如水 生涯以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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