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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카라바조의 작품

모링가연구가 2008. 5. 11. 21:51
미켈란젤로 카라바조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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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화가.

북이탈리아의 베르가모 근교 카라바조 출생.

정식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지(Michelangelo Merisi)이며, 일반적으로는 고향이름을 따서 카라바조라 부른다.

밀라노에서 수학하고, 1592~1593년 무렵에 로마로 건너가 풍속화와 정물화를 주로 그렸다.

초기 대표작은 1599~1602년 로마 산 루이지 디 프란체지 성당에 그린 《성 마테오의 소명》 《성 마테오의 순교》인데, 이들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참신한 화풍으로 로마의 미술계는 물론 회화계에 일대의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그 요인은 빛에 대한 취급방법과 사실묘사의 독특함에 있었다. 거의 암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음영부가 강한 인공적인 빛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며 윤곽과 세부의 억양이 약화되어 있는 반면 배경이 거의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기 때문에 모든 형상의 조형효과가 뚜렷하다. 또한 배경이나 장식물과 같은 주제 표현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닌 것은 모두 화면에서 배제하여 사실 표현에 철저하였으며, 심지어 종교적인 장면 속에 극히 평범하며 거칠고 촌스럽다고 할 정도의 인물들을 그려넣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처음으로 이 성당에 그린 《성 마테오와 천사(현존하지 않음)》는 교회의 권위자들로부터 거부당하였다고 한다.

이것과 전후하여 2점의 《바코스》 《이집트로 피난하는 성가족의 휴식》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점쟁이》를 제작하였으나, 이 작품들에서는 그다지 참신한 화법은 찾아볼 수가 없다.

카라바조의 생애는 그림보다도 더 격동적이었다. 말다툼·결투 등 계속되는 무법행위로 1600년부터 1607년에 걸쳐 경찰과 법원의 감시를 받고 있었는데 1606년에는 살인까지 범하였다. 이런 소란 속에서도 그는 화필을 놓지 않고 제작을 계속하였다. 더욱이 이 시기에 제작한 작품이 그의 일생 중 가장 고요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1604년에 누오바성당에 그린 《그리스도 십자가 강하(降下)》는 그의 종교화 가운데서도 매우 동감(動感)이 풍부한 대표작이다.


지상천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