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유물방

단재가 거세한 김유신을 다시 부른다

모링가연구가 2008. 4. 28. 11:21

단재가 거세한 김유신을 다시 부른다

'흥무대왕, 새로운 해석' 학술대회

 

 

 

"신채호는 민족의식을 이데올로기로 내세우며 '을지문덕', '이순신' 등의 역사소설을 발표함으로써 '김유신 거세작업'의 모범을 보였다."
20세기 이후 현재까지 각종 문학작품이나 영화, 연극 등의 매체에서 나타난 김유신(金庾信.595-673)의 모습을 추적한 대구가톨릭대 임선애 교수는 단재의 이런 시각이 문학계로 전이되어 1920-30년대에 이광수와 김동인, 박종화, 현진건 등이 역사소설을 잇따라 발표했음에도 김유신은 그 인기작가들의 소설에 등장할 수 없었다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신라사학회와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가 19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공동개최한 '흥무대왕 김유신, 새로운 해석'이란 학술대회에서 '한국문화 속에 부활하는 김유신'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우리 사회 저변에 흐르는 신채호 사관의 후유증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등 고구려 영웅들을 중심으로 제작되는 문화텍스트들의 유행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문화계의 정치적 대응으로 볼 수 있으나 "그들이 내세우는 고구려 정통설의 근간에는 신채호 사관이 있고, 고구려 중심의 역사 편에서 제작된 문화텍스트들은 신라와 백제를 비하시키는 또 다른 모순에 빠지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김유신이 정통 신라 출신이 아니라 금관가야 후손인 까닭에 신라 지배층에서 "중용(重用)되지 못할 줄 알고"는 일부러 당시 실력자인 김춘추에게 접근하고, 갖은 음모로써 정권을 틀어쥐었다는 단재의 시각에 대해서도 반론이 이어졌다.

서강대박물관 조범환 연구교수는 '김유신 가계와 후손들의 활동'을 살핀 결과, 김유신은 부계나 모계 모두 신분이나 정치적 지위로 보아 신라 정통 진골과 차이가 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모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김유신은 지증왕의 아들이자 법흥왕 동생이며, 진흥왕에게는 아버지가 되는 갈문왕 입종(立宗)이 증조부로 드러난다면서, 따라서 "김유신은 신라 왕족의 피를 이어 받은 최고 혈통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조 교수는 김유신이 죽은 뒤 상대등(上大等) 자리를 이은 그의 동생 김흠순(金欽順)을 주목할 것을 촉구하면서 김유신 사후 그의 가문이 몰락했다는 학설도 그 후손들의 활동 양상을 분석한 결과 성립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주보돈 경북대 교수는 기조강연을 통해 이제는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을 멸했다는 이유로 김유신을 반민족주의자로 폄훼한 단재의 시각에서 벗어나 김유신을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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