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년전 무덤속의 편지
원이 아버지께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고,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수없어요.
빨리 당신에게 가고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수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것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일이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갖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없고 끝도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수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편지 전문을 현대어로 표기함)
1998년, 택지개발이 한창이던 경북 안동시 정상동 기슭에서
주인모를 무덤 한기의 이장(移葬) 작업이 있었다.
시신을 보호하는 외관(外棺)은 갓 베어 놓은 듯
나뭇결이 살아있어 혹시 최근에 조성된
무덤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했다.
그러나 야간까지 이어진 유물 수습 과정에서
무덤은 수백년전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유물을 절반쯤 수습했을 무렵
망자의 가슴에 덮인 한지(韓紙)를
조심스레 벗겨서 돌려보니 한글로 쓴 편지가 있었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으며 아내가 쓴
이 편지는 수백년 동안 망자(亡者)와 함께
어두운 무덤 속에 잠들어 있다가
이장하는 과정에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고스란히 전하며
심금을 울렸던 이 편지는 남편의 장례전까지
짧은시간 동안 쓰여진 것으로 보여지며
죽은 남편에게 그 아내가 꿈속에서라도
다시 보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내는 지아비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하고픈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종이가 다하자 모서리를 돌려 써 내려갔다.
모서리를 채우고도 차마 끝을 맺지 못하자
아내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거꾸로 적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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