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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유 끌로델

모링가연구가 2011. 6. 7. 16:38

까미유 끌로델

 

 

스승 로뎅의 연인이자 모델,

공동작업자로, 프랑스 대시인이자 극작가인 폴 끌로델의 누이로,

까미유 끌로델의 예술과 사랑

까미유 끌로델...
영화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녀는 로댕의 연인이자 비운의 조각가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나는 그녀의 삶에 대해 분노를 느꼈다.
어쩌면 그렇게 바보같게도 살았을까?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빼앗기면서 말이다.
한 여자의 인생이 로뎅이라는 한 남자에 의해 무너지다니... 사랑이 뭔데?
우리는 그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녀의 사랑과 열정 그리고, 그녀의 재능을...
프랑스 페렝 타르데누아에서 태어난 여류 조각가.

그녀와 로댕의 러브스토리는 미술계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로댕과 맺은 내연의 관계로 오히려 더 유명한 조각가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독립된 예술가였으며

로댕의 작품에 깊은 영감을 주었던 다재다능한 조각가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의 작품세계가 아직 온전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각가의 길을 일찍이 선택한 선각한 젊은 카미유 클로델은

 17세에 이미 아카데미 콜라로시에서 조각가 수업을 받는다.

1885년 로댕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는 로댕의 작업실에서 모델과 조수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미 1888년에 발표한 [사쿤탈라]로 극찬을 받으며,

전도가 매우 유망한 조각가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미술사에서는 로댕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었던 그녀의 위상이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물론 근대 조각의 거두(巨頭)였던 로댕의 그림자에 가렸겠지만,

나중에는 로댕의 보이지 않는 온갖 방해로 인해 제대로 조각의 꿈을 펴 보지도 못하고

정신병 증세로 시달리다 말년에 정신병동(30여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힘)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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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유 끌로델 의 시

이제 나는 몸을 빼려 한다
사랑으로부터, 세상의 비웃음으로부터
사랑하는 폴, 일찌기 너를 따라 중국으로 가고 싶었지만
내겐 건너지지 않는 바다 하나 너무 깊었다
이제 혼자서 노를 저을 수 있겠다
로댕이란 바다를 건널 수 있겠다
폴, 나를 재촉하는 인어의 금빛 풀루트 소리 들리는가
저 황홀한 빛,

꿈 하나를 깨는 데 일생이 걸렸구나
지지 않는 햇살 같은 바다의 쪽빛 명성을 위해서
나는 죽어서도 더 불행해야 한다
로즈는 내 삶의 터전이오 그..녀..를..외..면..할.. 수..는..
로댕의 목소리는 나를 할퀴며 자라는 겁없는 손톱이었다
밤마다 깨어지며 덮치는 조각상들, 초인종은 울리지 않고
작업실 거미들은 탄성좋은 타액으로 나를 엮었다
그의 등을 향한 날들의 혼미한 정신
찢긴 팔다리 타고 올라 나의 뇌수를 뽑아내던 잔혹한 그리움의 대롱
맨발의 거리를 헤매도 바다는 끝내 내 발바닥 적셔주지 않았다
아, 일몰에 젖은 사람들의 눈빛이 나를 찢어발기고
구름처럼 바람처럼 폴 네가 맞은편에 서 있기도 했던가

배에 올라야 할 시간이다, 사랑하는 폴
파도 위 바람처럼 가벼워지는구나
너무 무거웠던 짐, 때가 되면 스스로 떠나지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다른 사랑, 이제서야
고모는 몽드베르그 정신병원에 있었다,
라고 말 할 조카들의 병아리 같은 입
훗날이 미한할 뿐이다


까미유끌로델
(Camille Claudel 1864-1943)
프랑스 페렝 타르데누아에서 태어난 여류 조각가.
그녀와 로댕의 러브스토리는 미술계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로댕과 맺은 내연의 관계로 오히려 더 유명한 조각가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독립된 예술가였으며
로댕의 작품에 깊은 영감을 주었던 다재다능한 조각가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의 작품세계가 아직 온전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각가의 길을 일찍이 선택한 선각한 젊은 카미유 클로델은
17세에 이미 아카데미 콜라로시에서 조각가 수업을 받는다.
1885년 로댕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는 로댕의 작업실에서 모델과 조수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미 1888년에 발표한 <사쿤탈라>로 극찬을 받으며,
전도가 매우 유망한 조각가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미술사에서는 로댕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었던 그녀의 위상이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물론 근대 조각의 거두(巨頭)였던 로댕의 그림자에 가렸겠지만,
나중에는 로댕의 보이지 않는 온갖 방해로 인해 제대로 조각의 꿈을 펴 보지도 못하고 정신병 증세로 시달리다
말년에 정신병동(30여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힘)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사쿤달라
프랑스 예술가 살롱전에서 힌두교의 전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사쿤탈라(Sakuntala)>
마술에 걸려 눈이 멀고 말 못하는 사쿤탈라가
남편과 재회하는 모습의 대리석 작품은 최고상의 영예를 얻는다.




1897 파도


파도



파도



깊은 생각



하프와 비올라, 플룻을 위한 소나타


날아가버린 신


    그녀의 가장 유명한 작품<왈츠>
    그녀의 개인적인 모든 예술의 특성이 표출되는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은 "겉으로 나타나는 모양
    그대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화하고 확대시켜
    더 깊은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접근하려했다"는 평을 받고있다.
    까미유는 로댕의 영향에서 벗어나 그녀만의 독창성을 나타내 보였다.
    까미유의 작품은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많은 비평가들이
    신문, 잡지등에서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