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헌트의 [고용된 양치기 The Hireling Shepherd]
William Holman Hunt
[고용된 양치기] The Hireling Shepherd
1851-52, Oil on canvas, 30 1/16 x 43 1/8 in
Manchester City Art Galleries
라파엘전파가 전통주의와 근대성, 복고주의와 사실주의라는 상반되는 개념들을 역설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었던 것은 초기 이탈리아 화가들이 단순히 관습적인 형태들을 반복적으로 그린 것과 달리 자연세계를 관찰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라파엘전파는 복고주의를 견지하면서도 동시에 근대생활의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
<고용된 양치기 The Hireling Shepherd>(1851-52)에서 배경이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그가 풀잎 하나, 이삭 하나까지도 꼼꼼하게 관찰했음을 본다. 육체적 관계를 갖기 이전의 술에 취한 듯 홍조를 띤 인물들의 얼굴은 너무도 실제에 가까워서 관람자를 경악하게 했다.
새로 고용된 양치기는 양떼를 돌보는 일보다 여자 양치기를 희롱하는 일에 더 심취해 있다.
<고용된 양치기>에 대한 설명문에서 헌트는 셰익스피어의 5막으로 구성된 <리어 왕 King Lear>(1605) 3막에서 에드가가 부르는 노래 한 소절을 인용했다.
<리어 왕>은 <맥베스 Macbeth>, <햄릿 Hamlet>, <오셀로 Othello>와 더불어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불린다.
리어 왕은 영국의 전설적인 국왕으로 16세기의 영국 문학에서 가끔 등장하는데 셰익스피어는 독자적으로 다뤘다.
<고용된 양치기>에서는 현대를 배경으로 훨씬 일반화된 도덕적 메시지를 나타내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노래는 양들을 돌보는 자신의 임무를 소흘히 하는 양치기를 말하며, 그 양치기는 신도들에게 봉사하기보다는 인간의 영혼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헛된 질문들을 토론하는 멍청한 목사를 의미한다.
이 작품을 보고 멍청한 목사를 머리에 떠올리기는 어렵다.
일부 양들이 목장을 벗어나 익은 옥수수를 망치는 가운데 여인의 무릎 위에서 한 양은 초록색 사과를 먹음으로써 건강을 해치고 있다.
중앙에는 책임을 방치하는 젊은 남녀가 있으며 이는 헌트가 양과 양치기가 있는 이상화되고 낭만적인 전원과 반대가 되는 장면을 묘사하려는 의도이다.
<고용된 양치기>는 러스킨의 종교적 입장과 동일한 선상에 있는데, 러스킨은 논문 <외양간의 건설에 대하여 Notes on the Construction of Sheepfolds>에서 교회에 대한 은유로 외양간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그는 영국국교회The Church of England가 파벌주의에 힘을 낭비하느라 신도들을 돌보지 않고 가톨릭에 대항할 힘을 결집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했다.
이런 종교적 논쟁은 라파엘전파와 관계가 있다. <고용된 양치기>에서 헌트는 사회적 풍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도덕주의의 성가신 잔소리로 인해 그 가치가 떨어졌다.
Hunt, William Holman
[영국해변]Our English Coasts, 1852 (Strayed Sheep)
1852, Oil on canvas, 17 x 23 in
Tate Gallery, London
이런 경향에서 예외적인 작품이 <길 잃은 양 Strayed Sheep>으로 더 잘 알려진 <영국 해변 Our English Coasts>(1852)이다.
다채로운 색채가 뛰어난 이 작품은 헌트의 어둡고 죄책감에 사로잡힌 정신이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풀밭과 바다 위에 태양이 비추는, 이와 같은 순수한 회화라는 점을 보여준다.
극히 미세한 부분까지 시각적 효과를 노린 이 순수풍경화에서의 헌트의 과감성은 모든 기존의 양식을 포기하고 대신 자연에서 실제로 본 색들을 가능한 한 모두 재현하려는 데 있다.
그는 저녁에 들판을 비추는 석양빛의 효과와 바다 위에 비친 구름의 효과를 정확하게 묘사했다.
양의 얇은 귀를 비추는 밝은 빛도 충실하게 묘사했으며 심지어 양의 핏줄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영국 해변>이 1855년 파리에서의 만국박람회에서 대대적인 호응을 받자 제목을 <길 잃은 양>이라는 종교적인 의미로 바꾸었다.
Hunt, William Holman
[세상의 빛]The Light of the World
1851-53, Oil on canvas over panel, 49 3/8 x 23 1/2 in
Keble College, Oxford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파의 영향을 받고 정교한 사실주의를 추구한 헌트는 라파엘전파 구성원들 가운데 유일하게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회화기법을 거의 바꾸지 않았다.
그는 타계할 때까지 자신이 “진정한 원칙들”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에 집착했다.
그는 성서적 장면을 주로 그렸으며, 강렬하고 선명한 색채와 명암효과 및 섬세한 세부묘사가 양식적 특징이다.
그의 대표적인 두 작품 <세상의 빛 The Light of the World>(1853)과 <속제양 Scapegoat>(1854)은 경건한 성품을 지닌 그로 하여금 회화에서의 진전과 더불어 신앙이 더욱 깊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1851년에 개종한 뒤 그리스도를 살아 있는 존재로 보는 광교회의 일원이 된 그는 복음주의에 이끌려 성경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태양이 없는 밤의 장면과 기이하게 활기 없는 종교 주제를 결합시키는 유쾌하지 않은 강박관념을 전개했는데, 이런 밤의 장면을 그린 첫 작품이 <세상의 빛>이다.
작품에 도덕적 감정을 뚜렷이 드러낸 점에서 러스킨의 호평을 받았다.
러스킨은 <세상의 빛>을 성화 가운데 최고의 성화라고 극찬을 아끼기 않았다.
헌트는 육화된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를 그린 것이 아니라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기록된 부활한 그리스도가 인간의 영혼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신비스러운 모습을 묘사했지만 명목으로만 신의 은총에 관한 것일 뿐 실제로는 절망에 관한 그림에 가깝다.
그리스도의 손에는 십자가의 상처가 있고 천국 왕의 의상을 하고 있다.
등불의 빛은 영혼의 각성을, 닫힌 문은 인간 정신을 상징한다.
그는 1854년 왕립미술원 전시회에 이 작품을 출품하면서 카탈로그에 성경 구절을 적어 넣었다.
그는 농장에서 보름달 아래 구부러진 사과나무 줄기에 호롱을 걸어 놓고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상징주의 도식에 따라 구세주에게서 인간을 분리시키는 잡초를 그리기 위해 밤에 이웃의 사용하지 않는 오두막, 담쟁이와 가시나무 덤불로 무성하게 덮인 문을 소재로 삼았다.
문을 가로지른 빗장과 못이 녹이 슬었으므로 한눈에 문이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많은 상징적인 세부가 구세주의 구원하는 힘을 강조했더라도 그림의 분위기는 절망적이다.
<세상의 빛>은 엄청난 양의 판화로 제작되어 전 세계에 유포되었다.
헌트는 이 작품을 더욱 큰 크기로 다시 그렸으며 그것은 1908년 런던의 성 바울 성당에 기증되었다.
Hunt, William Holman
[속제양]The Scapegoat
1854, Oil on canvas, 33 3/4 x 54 1/2 in
Lady Lever Art Gallery, Port Sunlight
성경을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인 예표론적 상징주의Typological Symbolism를 최대한으로 추구한 <속제양>(혹은 희생양)은 이전의 자연주의와 상징주의 회화, 종교화, 또는 동물화 그 어디에서도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작품이다.
예표론적 상징주의란 성경의 인물이나 사건들이 미래에 일어날 보다 더 중요한 사건을 예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예표론은 알레고리와는 다르다.
주제는 구약성경의 ‘레위기’에서 유대인들이 인간의 속죄를 받기 위해 행한 제식에 관한 것이다.
‘레위기’에 의하면 유대인은 두 마리의 양을 골라 한 마리는 사원에 바치고 다른 한 마리는 하나님의 속제를 받게 하기 위해 광야로 내몰린다.
헌트는 이 장면을 그리스도의 수난, 특히 이사야서 53장 4-5절을 상징적으로 예견하는 것으로 보았다.
속제양의 뿔에는 유대교 율법인 『탈무드 Talmud』에 나오는 붉은색의 모직 끈이 둘러져 있다.
『탈무드』는 유대교의 율법, 전통적 관습, 민간전승, 해설 등을 총망라한 유대인의 정신적, 문화적 유산으로 유대교에서는 ‘모세 5경’이라고 하는 『토라 Torah』 다음으로 중요시된다.
속제양이 산 채로 발견되고 붉은색이 흰색으로 변한다면 하나님이 속죄를 받아들인 것으로 간주했다.
붉은색의 모직 끈은 그리스도의 면류관을 예견한다. 왼편에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고 있는 비둘기는 하나님이 노아에게 한 약속을 의미한다.
헌트는 흰 염소를 사서 사해 서안 남단에 위치한 유스담Usdum에 있는 자신의 막사로 가져갔는데, 그곳은 사해가 염분이 있는 습지로 변한 장소로, 죽은 동물들의 뼈가 해변에 흩어져 있었으며, 하나님이 저주로 벌한 소돔과 고모라가 있던 황폐하고 척박한 그 땅에서는 결코 자랄 수 없는 섞은 나무들이 퇴적되어 있었다.
섬뜩한 목적지 유스담은 비인간성의 표현이 지배적인 이 작품에 적합한 배경이었다.
이 작품에는 사람의 흔적, 농사를 지은 흔적이 없고 오로지 짐승들의 뼈와 부목들이 있을 뿐이므로 비인간적일 수밖에 없다.
유대인이 자신들의 죄를 대신할 혹은 그리스도의 한 유형으로 해석되는 속제양을 아무도 살지 않는 곳으로 데려간 테마 때문에 비인간적이다.
헌트는 중요한 작품일 경우 액자에 그 의미를 설명해두었는데, 이 작품의 액자에도 성경구절 두 개를 적어 넣어 속제양의 희생이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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