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이들은 도자기라고 하고 나는 이것을 회화라고 한다"
[도자벽화작가 전영신의 작품속으로]
지난봄 청도소싸움대회가 열렸던 흔적이 내려다보이는 다리를 지나고 쾌청하게 부는 바람속에서 산들거리는 들꽃에게 물주는 손길도 만난다.
사슴무리 뛰노는 겹겹산 아래. 빗살무늬 토기가늘어서고 정교하지 않고 투박스럽지만 그래서 더 낮익은 연꽃이 수 놓여 있다.
그리고, 흙의 풍경 가득한 그곳 조용한 작업실에서 자연의 그리움을 빛어내는 작가 전영신, 그를만난다.
어디를 가도 흙 밟기 어려운 세상이다. 흙 만지기도 어렵고 흙 냄새 맡기조차 어렵다. 차들은 시멘트 덕지덕지 씌운 포장도로를 달리고 사람들은 블록을 깔아놓은 인도를 걷는다. 가끔 공원을 찾기도 하고 산을 오르기도 하지만 흙과 함께 숨쉬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는 힘든 회색 빛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 연유에 우리는 흙에 대한 향수를 꿈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그마한 밭때기 일구며 사는 노년을 꿈꾸는 현대인들의 소망은 바로 흙에 대한향수에서 비롯된 것일지도모른다. 어찌 보면 우리는 결국 흙으로 돌아갈 운명 인데도 너무 동떨어진 생의 순간을 이어가고 있는 젓은 아닌가. 흙을 만지고 흙 속에 세상을 그리고 흙 위에 생명을 탄생시키는 작가 전영신. 그래서 그의 삶은 흙의 순리를 닮은 듯 하다.
「빗살-그리움」전영신 도화벽화읜 작품세계
'도화벽화' 라는 장르는 우리에게 생소한 장르이다. 전영신의 작품을 보고 미술평론가들조차도 그의 작품을 도화라고 해야할지 도판화 또는 도벽화라고 해야할지 마땅한 이름을 찾는데 고심했을 정도니 말이다. 이런 장르의 작품들이 흔치 않은 방식이긴 하지만, 또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의 작품이 생소하면서도 생소하지 않은 이유는 전통적으로 여러 형태의 도편 위에 그려진 그림이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도예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회화작품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엄격히 말한다면 제작과정이 도자기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예 도자기의 범주에 포함된다. 하지만 작가 전영신은 이들 작품의 회화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도편위에 선묘와 형상을 통해 작가의 의도대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 이다.
그렇다면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빗살-그리움」 이라는 일관된 제목의 작품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인간 생명의 탄생지 '흙'이 가지고 있는 그리움과, 꾸미지 않은 빗살무늬의 소박함으로 자연을 향한 회귀(回歸)를 꿈꾸는 것. 그것이 그가 도자벽화라는 생소한 장르의 작품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다.
작업실에 놓여 있는 작품에는 사슴 무리, 연꽃, 달이 떠있는 산, 백로나 해오라기 같은 새 등이 존재하고 있다. 작가의 애정어린 그곳 세계에서 그들은 생명감을 얻은 듯 하다.
그의 작품을 바라보며 놀라운 것은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색감이다. 황토및 색감만이 아니라 내용을 표현하는데 사용된 자연스러운 청색이나 짙은 초코렛 색 등이다. 일반적인 회화재료에 익숙한 눈으로 바라보니, 그의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색감의 재료 역시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직만 작가는 그러한 색감들을 광물에서 찾는데, 그마저도 자연에서 찾으려는 작가의 애정이 돋보인다.
녹슨 철(산화철)은 초코렛 색이 나고 코발트계통의 용물은 자연스러운 청색을 불러낸다. 이런 자연스러운 청색은 전통에서도 쓰였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유약을 바른 색이 아니라 자체의 색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유약을 처리하여 작품을 굽는 경우에는 작가가 의도한 색감과 다른 것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 런 변수를 최대한 줄여서 표현하고자 하는 색을 불러내기 위해서이다.
하나의 도판 형태를 만들어 거기에다 그림을 그리거나 또는 벽돌 크기의 작은 도편에 따로따로 그린 그림을 모자이크 하듯 타일링 해서 하나의 전체 형태를 만드는 식으로 작품을 한다. 작품 자체를 고온의 열에서 소성시키면서 결정한 책식 등이 일반적인 회화재료에서 감지되는 안료의 느낌들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고온의 열에 의해 물리적. 확학적 변성을 거친 아주 큰 내구성을 지닌 도자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 그리고 요즘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커서는 공예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에서 다시 한국화를 전공했다. 처음부터 도자벽화라는 장르의 작품을 할 의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면서도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는 이유로 도자기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지만 그는 표현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의 감수성을 ?아 적절하고도 만족스러운 매체인 도자벽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작품을 통해 표현욕구를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흙을 만지고 불을 가까이 하던 공예학교 시절 친숙감이 그의 회화적 표현욕구가 자연스럽게 결함하게 된 것이다.
이런 도자벽화는 외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많이 활성화 된 것과 달리 국내는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책자나 전문서적 없이 실험을 거쳐 혼자 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젊기에 그런 시행착오를 통해 장르를 고착화 시켜 가고자 하는 열의가 있음을 강조한다.
인터뷰 도중 그의 어깨 너머로 고운 색채가 보인다. 흙판 위에 녹색 소주벙 유리를 잘게 부수어 얹어 1,200℃의 열에서 구워 유리를 녹여 만든 것이다. 유약의 광택이 없는 대신 유리를 활용하는 식의 작품은 초기에 작업을 많이 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양에 으해 결정된는 광물의 농도로 먼 신과 가까운 산을 표현하며 작품에 깊이를 더하고 있다.
요즘의 그는 개인빌딩에 들어갈 작품을 의뢰 받아서 작업하고 있는 중이다. 작업실 바닥에 놓여있는 꽤 큼직한 흙판이 그것인 듯 했다. 또 얼마 전에 열렸던 경북도민체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길이 60m의 작품을 구미 공단지역에서 진행중이라 개인작업은 한동안 손을 놓은 상태다.
때문에 구체적인 전시회를 계획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곳에서 전시회 제의가 있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있는 젓이다. 전시회 작품마감 날짜를 정해놓고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만들어진 작품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소박함이 묻어난다.
뭔가를 창조하는 직업의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그도 작품을 제작하는 시간보다 구상하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또, 구상한 작품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가면 거기에 매몰된다. 그래서 그는 작품에 관심을 가지며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는데도 애써 거절한다. 작품 하는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말일 테다. 그만큼 작품에 몰입한다는 말이요,
그렇게 몰입해서 만든 작품이기에 작가의 정신이 어린 것이요 그렇기에 그 작품은 더 빛이 나게되는 것은 아닐까.
전통에 기반하여 새로운 것을 접목시키고자
"예전에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이 비교적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대학에서는 그런 구분없이 조형계열로 학생들을 모집하는 추세인데 미술 자체도 퓨젼쪽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행위예술을 하는 사람도 평면예술을 할 수 있다는 말이죠. 물론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접목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전통이 없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고 전통이 작품을 만드는데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어떤 재료든지 접목시적가며 활동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다부진 욕심을 가지고 있다. 그 한 사람의 만족감에 그칠 욕심이 아니라 새로운 분야의 국내대중화가 최종 목적지이고, 장애 받지 않는 자유로운 예술을 해 나가는 것이 그의 인생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전통 한국화의 평면 구성에서 탈피해 입체구성의 선두로 나선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러했고 회화와 데생뿐만 아니라 조각, 판화에서 도 명성을 떨친 피카소가그러하다. 개인의 창작 범주 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이 퓨전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끌어오지 알더라도 이미 예술로써 인정받아왔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이런 퓨전적 예술이 '이런 종류의 작품은‥‥ 이라고 내리까는목소리로 심사받기에는 너무도 안타까운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
"도자/회화/조각/공예의 모든 요소들이 접목되기에 그만큼 기술적인 부븐이 이루어져야 하는 그리움이 있다 하지만 생각이상으로 표현 가능한 방식이 넓어지고 신업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또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런 부분을 접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화장실이나 주방 등의 타일이나 벽돌에서부터 반영구적인 작품의 특성상 건물의 외벽 등에도 활용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에 도시미관이나 개인의 개성표현이 가능한 장르다. 이러한 도자벽화는 어디에도 적용 가능한 것이다
그의 사랑하는 생활
그는 청도 각남면에 손수 지은 집에서 고등학교 동기로 만나 40년 세월의 반 이상을 함께 살아온 그의 오랜 친구인 아내 우명숙씨와 생활하고 있다. 잘 관리된 것은 아니 었지만 6월의 푸름을 자랑하고 있는 잔디 위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 유치원생 작은 딸 은혜 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딸 소망이 이렇게 네 식구가 함께 모여 산다. 그리고 낯선 취재원들을 경계하며 응접탁자 주위를 돌며 컹컹 짖는 충성스러운 강아지 두 마리 역시 이들과 함께 한다.
이곳 청도 집에는 5분 거리 내에 그림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데, 이들과 자주 만나 작업이나 전시계획을 얘기하며 지낸다. 경산에서 다른 곳이 아니라 이곳 청도로 옳긴 젓도 그 이유에서다. 함께 작품 얘기를 나누는 벗들이 있는 이곳 청도에서 가족과 함께 작업에 몰두할수 있는 생활이 전영신 그에게는 더 없는 행복이다.
이런 그의 오랜 친구인 아내와 함께 사진 촬영을 한다. 사진기 앞에서 활짝 웃음이 자연스럽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가 보다. 모델이 되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며 어색해 하는 부인에게 농담을 건네 부인의 얼굴에 웃음을 만들어 준다. 그는 이렇게 그의 오랜 친구와 함께 이곳에 있다. 더위를 조금 가시는 시원한 바람이 이들의 머리칼을 만져주고 가을이면 활짝 꽃 피을 국화가 늘어서 있다.
[2001년 6월11일 오전 10시 청도 작업실에서]
월간 일하는 멋(2001/7) 허민영 기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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