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사진모음방

도자기인다 벽화인가

모링가연구가 2010. 4. 13. 17:04

 

도자 벽화 작가

전영신
(Jeon, young Sin)

 

 

 


그리움 / 백토 + 황토 +철사 +코발트 + 고온소성안료 / 60×90Cm

 

그리움 / 백토 + 황토 +철사 +코발트 + 고온소성안료 / 60×90Cm

 

빗살그리움, 백토 + 황토 +철사 +코발트 + 고온소성안료 60×90Cm

 

 


그리움 / 백토+ 황토+철사 +코발트+고온소성안료 / 0×120Cm

 

빗살 그리움 / 백토 + 황토 +철사+유리+고온소성안료 / 60 × 90Cm

 

그리움

백토+황토+철사+코발트+고온소성안료

39.5 × 61.5Cm

 


그리움 /
백토 + 황토 +철사 +코발트 + 고온소성안료 / 58.5 × 87Cm

 

그리움 / 백토+ 황토 +철사 +코발트 + 고온소성안료  / 39.5 × 61.5Cm

 

 

빗살 그리움 / 백토+ 황토+철사 +코발트 + 고온소성안료 / 58 × 58Cm

 

빗살 그리움

도판.황토.고온소성안료

57 × 47Cm

 

그리움, 60×60cm 도판, 황토. 고온소성안료 1999

 

빗살.그리움, 91×71cm 도판, 황토. 고온소성안료 1999

 

 

빗살.그리움, 90×60cm 도판, 황토. 고온소성안료 1999

 

 

 

빗살, 90×60cm 도판, 황토. 고온소성안료 1999

 

그리움 60×30 백토,황토,고운소성안료

 

빗살그리움 60×30 백토,황토,고운소성안료

 

그리움 51×48 백토,황토,고운소성안료

 

그리움 73×29 백토,황토,고운소성안료

토끼세마리60×75 백토,황토,고운소성안료

빗살그리움 60×90 백토,황토,고운소성안료

 

그리움 61×62×2 백토,황토,고운소성안료

 

빗살그리움 60×30 백토,황토,고운소성안료

 

빗살-그리움40×53×10

백토,황토,고온소성안료 2002

빗살-그리움40×53×10

백토,황토,고온소성안료 2002

 

빗살-그리움48×50×10cm

백토,황토,고온소성안료 2002

빗살-그리움48×50×10cm

백토,황토,고온소성안료 2002

 

"다른이들은 도자기라고 하고 나는 이것을 회화라고 한다"

[도자벽화작가 전영신의 작품속으로]

지난봄 청도소싸움대회가 열렸던 흔적이 내려다보이는 다리를 지나고 쾌청하게 부는 바람속에서 산들거리는 들꽃에게 물주는 손길도 만난다.

사슴무리 뛰노는 겹겹산 아래. 빗살무늬 토기가늘어서고 정교하지 않고 투박스럽지만 그래서 더 낮익은 연꽃이 수 놓여 있다.

그리고, 흙의 풍경 가득한 그곳 조용한 작업실에서 자연의 그리움을 빛어내는 작가 전영신, 그를만난다.

어디를 가도 흙 밟기 어려운 세상이다. 흙 만지기도 어렵고 흙 냄새 맡기조차 어렵다. 차들은 시멘트 덕지덕지 씌운 포장도로를 달리고 사람들은 블록을 깔아놓은 인도를 걷는다. 가끔 공원을 찾기도 하고 산을 오르기도 하지만 흙과 함께 숨쉬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는 힘든 회색 빛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 연유에 우리는 흙에 대한 향수를 꿈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그마한 밭때기 일구며 사는 노년을 꿈꾸는 현대인들의 소망은 바로 흙에 대한향수에서 비롯된 것일지도모른다. 어찌 보면 우리는 결국 흙으로 돌아갈 운명 인데도 너무 동떨어진 생의 순간을 이어가고 있는 젓은 아닌가. 흙을 만지고 흙 속에 세상을 그리고 흙 위에 생명을 탄생시키는 작가 전영신. 그래서 그의 삶은 흙의 순리를 닮은 듯 하다.

「빗살-그리움」전영신 도화벽화읜 작품세계

 '도화벽화' 라는 장르는 우리에게 생소한 장르이다. 전영신의 작품을 보고 미술평론가들조차도 그의 작품을 도화라고 해야할지 도판화 또는 도벽화라고 해야할지 마땅한 이름을 찾는데 고심했을 정도니 말이다. 이런 장르의 작품들이 흔치 않은 방식이긴 하지만, 또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의 작품이 생소하면서도 생소하지 않은 이유는 전통적으로 여러 형태의 도편 위에 그려진 그림이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도예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회화작품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엄격히 말한다면 제작과정이 도자기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예 도자기의 범주에 포함된다. 하지만 작가 전영신은 이들 작품의 회화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도편위에 선묘와 형상을 통해 작가의 의도대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 이다.

그렇다면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빗살-그리움」 이라는 일관된 제목의 작품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인간 생명의 탄생지 '흙'이 가지고 있는 그리움과, 꾸미지 않은 빗살무늬의 소박함으로 자연을 향한 회귀(回歸)를 꿈꾸는 것. 그것이 그가 도자벽화라는 생소한 장르의 작품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다.

작업실에 놓여 있는 작품에는 사슴 무리, 연꽃, 달이 떠있는 산, 백로나 해오라기 같은 새 등이 존재하고 있다. 작가의 애정어린 그곳 세계에서 그들은 생명감을 얻은 듯 하다.

 그의 작품을 바라보며 놀라운 것은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색감이다. 황토및 색감만이 아니라 내용을 표현하는데 사용된 자연스러운 청색이나 짙은 초코렛 색 등이다. 일반적인 회화재료에 익숙한 눈으로 바라보니, 그의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색감의 재료 역시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직만 작가는 그러한 색감들을 광물에서 찾는데, 그마저도 자연에서 찾으려는 작가의 애정이 돋보인다.

녹슨 철(산화철)은 초코렛 색이 나고 코발트계통의 용물은 자연스러운 청색을 불러낸다. 이런 자연스러운 청색은 전통에서도 쓰였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유약을 바른 색이 아니라 자체의 색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유약을 처리하여 작품을 굽는 경우에는 작가가 의도한 색감과 다른 것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 런 변수를 최대한 줄여서 표현하고자 하는 색을 불러내기 위해서이다.

하나의 도판 형태를 만들어 거기에다 그림을 그리거나 또는 벽돌 크기의 작은 도편에 따로따로 그린 그림을 모자이크 하듯 타일링 해서 하나의 전체 형태를 만드는 식으로 작품을 한다. 작품 자체를 고온의 열에서 소성시키면서 결정한 책식 등이 일반적인 회화재료에서 감지되는 안료의 느낌들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고온의 열에 의해 물리적. 확학적 변성을 거친 아주 큰 내구성을 지닌 도자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 그리고 요즘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커서는 공예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에서 다시 한국화를 전공했다. 처음부터 도자벽화라는 장르의 작품을 할 의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면서도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는 이유로 도자기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지만 그는 표현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의 감수성을 ?아 적절하고도 만족스러운 매체인 도자벽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작품을 통해 표현욕구를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흙을 만지고 불을 가까이 하던 공예학교 시절 친숙감이 그의 회화적 표현욕구가 자연스럽게 결함하게 된 것이다.

이런 도자벽화는 외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많이 활성화 된 것과 달리 국내는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책자나 전문서적 없이 실험을 거쳐 혼자 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젊기에 그런 시행착오를 통해 장르를 고착화 시켜 가고자 하는 열의가 있음을 강조한다.

인터뷰 도중 그의 어깨 너머로 고운 색채가 보인다. 흙판 위에 녹색 소주벙 유리를 잘게 부수어 얹어 1,200℃의 열에서 구워 유리를 녹여 만든 것이다. 유약의 광택이 없는 대신 유리를 활용하는 식의 작품은 초기에 작업을 많이 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양에 으해 결정된는 광물의 농도로 먼 신과 가까운 산을 표현하며 작품에 깊이를 더하고 있다.

 요즘의 그는 개인빌딩에 들어갈 작품을 의뢰 받아서 작업하고 있는 중이다. 작업실 바닥에 놓여있는 꽤 큼직한 흙판이 그것인 듯 했다. 또 얼마 전에 열렸던 경북도민체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길이 60m의 작품을 구미 공단지역에서 진행중이라 개인작업은 한동안 손을 놓은 상태다.

때문에 구체적인 전시회를 계획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곳에서 전시회 제의가 있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있는 젓이다. 전시회 작품마감 날짜를 정해놓고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만들어진 작품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소박함이 묻어난다.

뭔가를 창조하는 직업의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그도 작품을 제작하는 시간보다 구상하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또, 구상한 작품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가면 거기에 매몰된다. 그래서 그는 작품에 관심을 가지며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는데도 애써 거절한다. 작품 하는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말일 테다. 그만큼 작품에 몰입한다는 말이요,

그렇게 몰입해서 만든 작품이기에 작가의 정신이 어린 것이요 그렇기에 그 작품은 더 빛이 나게되는 것은 아닐까.

 전통에 기반하여 새로운 것을 접목시키고자

 "예전에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이 비교적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대학에서는 그런 구분없이 조형계열로 학생들을 모집하는 추세인데 미술 자체도 퓨젼쪽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행위예술을 하는 사람도 평면예술을 할 수 있다는 말이죠. 물론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접목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전통이 없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고 전통이 작품을 만드는데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어떤 재료든지 접목시적가며 활동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다부진 욕심을 가지고 있다. 그 한 사람의 만족감에 그칠 욕심이 아니라 새로운 분야의 국내대중화가 최종 목적지이고, 장애 받지 않는 자유로운 예술을 해 나가는 것이 그의 인생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전통 한국화의 평면 구성에서 탈피해 입체구성의 선두로 나선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러했고 회화와 데생뿐만 아니라 조각, 판화에서 도 명성을 떨친 피카소가그러하다. 개인의 창작 범주 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이 퓨전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끌어오지 알더라도 이미 예술로써 인정받아왔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이런 퓨전적 예술이 '이런 종류의 작품은‥‥ 이라고 내리까는목소리로 심사받기에는 너무도 안타까운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

 "도자/회화/조각/공예의 모든 요소들이 접목되기에  그만큼 기술적인 부븐이  이루어져야 하는 그리움이 있다 하지만 생각이상으로 표현 가능한 방식이 넓어지고 신업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또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런 부분을 접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화장실이나 주방 등의 타일이나 벽돌에서부터 반영구적인 작품의 특성상 건물의 외벽 등에도 활용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에 도시미관이나 개인의 개성표현이 가능한 장르다. 이러한 도자벽화는 어디에도 적용 가능한 것이다

 그의 사랑하는 생활

그는 청도 각남면에 손수 지은 집에서 고등학교 동기로 만나 40년 세월의 반 이상을 함께 살아온 그의 오랜 친구인 아내 우명숙씨와 생활하고 있다. 잘 관리된 것은 아니 었지만 6월의 푸름을 자랑하고 있는 잔디 위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 유치원생 작은 딸 은혜 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딸 소망이 이렇게 네 식구가 함께 모여 산다. 그리고 낯선 취재원들을 경계하며 응접탁자 주위를 돌며 컹컹 짖는 충성스러운 강아지 두 마리 역시 이들과 함께 한다.

이곳 청도 집에는 5분 거리 내에 그림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데, 이들과 자주 만나 작업이나 전시계획을 얘기하며 지낸다. 경산에서 다른 곳이 아니라 이곳 청도로 옳긴 젓도 그 이유에서다. 함께 작품 얘기를 나누는 벗들이 있는 이곳 청도에서 가족과 함께 작업에 몰두할수 있는 생활이 전영신 그에게는 더 없는 행복이다.

 이런 그의 오랜 친구인 아내와 함께 사진 촬영을 한다. 사진기 앞에서 활짝 웃음이 자연스럽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가 보다. 모델이 되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며 어색해 하는 부인에게 농담을 건네 부인의 얼굴에 웃음을 만들어 준다. 그는 이렇게 그의 오랜 친구와 함께 이곳에 있다. 더위를 조금 가시는 시원한 바람이 이들의 머리칼을 만져주고 가을이면 활짝 꽃 피을 국화가 늘어서 있다.

[2001년 6월11일 오전 10시 청도 작업실에서]

월간 일하는 멋(2001/7) 허민영 기자 글

 

지난번 전시회 서문을 쓰면서 전영신의 색다른 작업양식을 도벽화라고 불럿던 기억이 난다. 그의 작업과정을 보면 그룻의 형태를 만들지 않는 점을 제외하면 도예가의 작업 전 과정을 그대로 포함하고 있다.

단지 器形만을 제작한다거나 만들어진 器面에 그림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흙을 수비하고 흙판을 만들고 말린후 그림을 그리고, 채색을하고, 유약을 바르고, 그 다음 불을 때는 일까지 스스로 해내는 일을 지켜보면 그는 여전히 도예가 이다. 그러면서도 드로잉이 두드러지는, 선묘와 형상을 통한 표현에 큰 비중을 둔다는 측면에서는 또한 화가이기도 하다.

사실 그의 작품은 순수한 도예작품도 회화작품도 아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도화라고 해야할지 도판화 또는 도벽화라고 해야할지 마땅한 이름을 찾지 못했다. 공예와 회화작품사이의 이런 애매한 경계가 명확하게 장르를 구분하는데 어려움을 주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순수예술인가 응용미술인가? 따질 일은 아니고, 그렇게 구분해서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허버트 리드의 말대로 그런 구분은 잘못된 인습에서 비롯되었다. 그보다는 진짜 예술과 가짜예술로 구분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정말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공예작품이든 회화 작품이든 혹은 요즘 많이 유행하는 설치작품이든 간에 그것이 얼마나 진지하게 작가의 열정을 통해 나온 것인지 또는 허위의식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하겠다.

창조적인 작가일수록 매체나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것을 본다. 흙과 불의 오묘한 조화와 변화에 매료되어 고갱, 마티스, 퍼카소 등과 같은 많은 근대 예술가들이 한번씩 세라믹 작품에 빠졌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최근 주위에서도 많은 작가들이 전통적인 장르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알맞은 매체를 개발하여 독특한 작업세계를 펼치는 작가들이 많아졌다.

그만큼 현대는 독자적인 새로운 조형언어를 작가들에게 요구하고 있고 또한 작가들은 개성 있는 새로운 조형매체를 개발하고, 표현의 내용을 다양하게 확대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시각경험을 그만큼 풍부하게 해주고 있다. 전영신도 대학에서는 한국화를 전공했지만 고교시절 공예학교 때 받아들인 흙에 대한 남다른 감수성이 결국 세라믹 작품으로 그를 이끈 것으로 보여진다고 지난번에 말한바 있다.

그의 작업을 어떻게 이름짓든 그는 지금 자신의 감수성을 좇아 적절하고도 만족스러운 매체로 자신의 비젼을 구현시키고 있는 것 같다. 그가 그리는 그림의 내용들은 주로 꽃이나 나무 같은 식물이거나 물고기나 새, 사슴 같은 동물들의 모티브로 주로 구성된다.

그는 이런 생명들의 형태들을 패턴화 시키고 편화 시켜 재구성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들 유기적인 생명들과는 좀 색다른 소재로서는 빈번하게 반복해서 등장하는 빗살 무늬 토기 형태가 눈에 띈다. 선사시대의 이 토기는 문명의 원시 상태에서 인류가 만든 가장 이른 시기의 실용적인 용기이자, 추상형태의 기형표면에다가 최초로 장식을 더한 미적표현물 이다. 아마도 흙으로 만든 이 최초의 공예적 미술품이 그에게 창작적 충동을 자극하고 영감의 원천이자 이상으로 제시되고 있는 듯 하다.

이 원뿔형 빗살 무늬 토기가 어떻게 적절히 그의 화면 안에서 효과적으로 디자인되고 있느냐의 문제는 우선 유보하고, 이 모티브가 도자 공예가로서 흙을 빚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로 작업을 하는 한사람의 예술가로서 이상으로 삼는데는 충분한 동기가 납득 되고도 남음이 있다.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처럼 그가 택하고 있는 모티브들은 우선 안이한 듯 지나치게 소박해 보이면서도 한편 거창하고 감당하기 벅찬 소화시키지 못할 주제를 내 거는 것보다 그리고, 그 그림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아닌지톨 떠나서, 그가 선텍하는 주제나 모티브들이 작가가 그리는 꿈들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마음을 공감시킨다.

그것들은 즐거움콰 위안을주는 나름대로 절실한 꿈을 지닌 소재들이다 마티스가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는 편안한 안락의자 와 같은 예술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런 예술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결국 그 편안함과 위안을 주는 예술이 어떤 성질의 것인가가 문계이다.

사람들은 안이하고 진부한 세속적인 달콤함에 생각만큼 만족스러워 하지 않으며 그런 만족이 결코 오래 지속될 수도 없다 만약에 진정으로 즐거움과 안락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예술이다 그렇지 않다면 가짜임이 곧 밝혀질 것이다.

작가는 너무 쉬운 그림을 하고 있지 않는지 늘 반문한다 편안한 그림을 결코 편안하게 그릴 수 없는 것이 작가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의 그림은 그의 삶의 환경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듯 하고 아직까지는 그 이야기가 끝임 없이 장면을 바꾸며 이어져 가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 본 산수화의 구도와 형상들이 지금까지의 구성과 또 다르게 나타나고 그것이 성공적일지 실패에 가까울는지 보다도 계속적인 작품의 변모가 더욱 그의 작품에 흥미를 놓지 알게 한다.

그 산수 속에 한 마리 사슴, 이것은 전퉁적인 산수화에 민화적인 요소를 절층해 넣는것에 다름 아닐 수도있다 그러나 작가가 붓을 잡은 어릴 때부터 그려보고 싶었던 것이었다고 한다 화선지에 모필로는 유치해서 시도하지 못했던 것을 흙을 만지는 동안에 용기가 일어났을 수도 있겠다 싶다 흙은 동심을 일깨우는 마력을 지녔을 터이니까 고리고 그는 이 모든 작업들을 결국 가마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기다려야하는 작업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작가의 손을 떠나 개인적인 힘이 완전히 미치기 힘든 변성의 과정에 결과를 맡겨야 하는 그 특성 때문에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할 때 그 자체로써 결정적인 다른 예술가들의 경우보다 기대하는 데가 더 있다 물론 그 결과를 어느 정도 충분히 예상하고 하는 작업이겠지만 그래도 볼에 의해 다시 소성 되는 단계야말로 그의 작업세계를 특징 지워 주는 부분이니까 이것이 그림의 내용에 오히려 낙관적인 요소가 더 설득력 있게 허용될 수 있도록 하지 않나 싶다.

타블로의 회화작품처럼 벽에 걸리거나 부착된 상태로 감상되도록 모습을 취하긴 해도 이렇게 특수하게 제작된 그의 작품은 우화를 보는 관점과는 아주 다톤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상감이나 조각기법, 재질감으로 나타낸 선묘와 유약과 안료 또는, 소재자제가 고온의 열에서 소성되면서 결정한 채색 등이 일반적인 회화재료에서 감지되는 안료의 느낌과는 아주 다른 차원의 느낌을 제공하게 된다 고온의 열에 의해 물리적, 화학적 변성을 거친 아주 큰 내구성을 지닌 도자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0년 8월 하순    金永東(미술평론)

 

청도소식지 제268호(2002.7.12)에서 펴온글

- 도자백화작가 전영신 -

다른이는 도자기라 하고 그는 화화라 했던가?

겹겹이 둘러 쌓인 산 속에 사슴이 뛰어 놀고 있는 태고의 그리움. 빗살무늬토기처럼 정교하지 않고 투박스럽지만 그의 작품에는 자연에 대한 동경이 물씬 베어 있다.

 

녹음이 짙어가는 초여름 각남 일곡에 자리한 손수 지은 작업실에서 오늘도 그리움을 향한 열망을 빛어내고 있는 작가 전영신을 만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좋아 했으며 공예학교에서 도자기를 배웠고 다시 대학에서는 회화 그렸다.

 

그는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표현의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도자벽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표현욕구를 분출하고자그의 열정을 쏟아 붙고 있다. 흙과 불을 가까이 하던 지난 시절의 친숙함과 그림의 예술감각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 것이다.

 

도자벽화는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많이 활성화되어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전문적프로로 활동하는 작가가 없어 관련서적이나 자료를 구하기 힘들어 자기 스스로 실험을통해 얻어야하는 어려운 작업이라 했다.

 

그의 작품은 하나의 도판에 그림을 그리거나 벽돌 크기의 도편에 따로 그린 그림을 모자이크처럼 타일링해서 전체형태로 만든다. 작품을 곤온에서 소성시켜면선 결정되어 회화재료가 주는 느낌과른 다르다. 고온의 열에 의해 화학적, 물리적 변성을 거쳐 내구성이 좋은 도자상태로 되기 때문이다. 이 많은 과정을 거쳐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다른 예술분야보다는 어려운 작품활동으로 선 뜻 나서는 작가가 많지 않다.

 

주방, 화장실의 타일이나 벽돌에서부터 반영구적인 특성으로 지하철벽면, 건물의 외벽 등 다양한 연출로 일반 서민과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전영신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진정 무엇일가?

 

"빗살-그리움" 한결같은 주제에서 보여 주듯이 사람의 근원이 "흙"이 지니고 있는 그리움과 꾸미지 않은 소박한 빗살무늬를 통한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작가의 꿈일 것이다. 또한 그의 작품을 보면 일관된 색감이다.

 

황토빛과 작품을 표현하는데 쓰는 청색과 짙은 초코렛색이다. 녹슨철(산화철)은 초코렛색이 나며 코발트 계통의 용물은 자연스럽게 청색이 나온다. 이러한 색감들을 광물에서 찾으려 애써는 작가는 자연에 대한 애정이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한국화의 표현이 물씬 풍기는 작품속에는 우리 것을 보게 된다.

 

따가운 초여름의 햇살이 비치는 작업실 창가에서 미소를 머금은 소탈한 그의 모습은 다정한 우리의 이웃으로 다가온다. 지금도 자연에 대한 한없는 동경으로 순수한 열정에 뭍혀 작품활동에 골몰하고 있을 작가 전영신 그에게 진한 감동을  전하다.

 

 

<출처;yahoo 낙숫물소리 (pslj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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