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모음방

오승윤 화백

모링가연구가 2010. 2. 2. 11:41


오 화백은 1939년 개성에서 태어났고 8.15해방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이후 화순 동복으로 이주한 뒤 초등학교 6학년까지를 이곳에서 마쳤고 지금의 광주 지산동으로 옮겨왔다. 부친은 한국근대미술의 선봉 오지호 선생이며 가계는 근동이 알아주는 선비집안이었다. 그가 고교 3년이던1959년, 서울에서 있었던 전국학생실기대회에서 『소묘』로 최고상을 받았고 그것이 인연이 돼 미술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때 한국에는 추상미술의 물결이 유행처럼 밀려들어 너나없이 그 물결에 휩쓸리고 싶어했다. 그럴 때에도 오 화백은 그림의 정석은 튼튼한 기초에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의 자연이나 풍물을 구상화로 표출했는데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부친의 영향이 컸다. 1974년부터는 전남대학교에 봉직하면서 예술대학을 창설했다. 그야말로 후진양성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1980년 초 자신의 회화적 재충전을 위해 파리로 건너갔고 그때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카데미 그랑드 쇼미에르 등 유명 미술관의 전시품을 감상하고 인체 그리기에 돌입했다.
오승윤 화백의 조형언어는 말하자면 원리 면에서는 '풍수'이지만 방법 면에서는 '오방정색'의 자기대입이라고 할 수 있다. 평론가인 빠뜨리스·드·라 뻬리헤르씨는 오승윤은 20세기 저장의 반열에 들면서 자기관의 조형기법을 갖춘 작가라고 평하였다. 오승윤 화백의 회화적 세계성은 우선80년대를 분수령으로 탐색되고 창출된 것이다. 이제 오승윤 화백은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자연을담보로 한 거대한 화맥을 소유한 대부호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채굴하면서 '이것은 꼼짝없는 오승윤만의 그림'이라 할만한 움직일 수 없는 세계를 세계인의 미감 위에 올려놓았다.



물에비친 달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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