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무리 말해도 세상 사람들은
원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하늘의 별마저 새롭게 보이는 원산 어느 언덕에 올라서서,
멀리 초가집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노라면
완전한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
"한국의 풍경은
마치 조바위를 쓰고 서 있는 한국 여인의 차분한 얼굴처럼
평안하고 조용해 보였다.
한국의 경치는 너무나 아름다워
때때로 여행객은 기이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
그 풍경의 아름다움은
한국 문화의 유서 깊은 전통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성루의 야산이나 대동강변을 걸어보면
시간을 초월한 황홀경을 느끼게 된다.
이 감각적인 즐거움은 고국의 풍경,
가령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의 전원을
산책할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20세기 초 서양 미술인들은 미술의 대안책을 모색하면서
동양 판화의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에 매료되게 된다.
이것은 마침내 일본으로 건너와
목판화를 배우는 서양미술인을 낳게 된다.
이러한 작가는 크게 영국인 엘리자베스 키스,
미국인 릴리언 메이 밀러,
프랑스인 폴 자쿨레로 요약될 수 있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20세기 초 아시아,
특별히 한국에 대하여 각별한 시선을 갖고
이를 작품에 표현한 영국 여류화가이다.
그녀는 이미 여러 나라에 잘 알려져 있고
또한 인정받는 작가이다.
1933년 런던의 스튜디오 출판사는
<스튜디오판 채색 판화의 대가들> 책에서
키스를 일본의 가츠시카 호큐사이,
우타가와 히로시게와 더불어
아홉 명의 채색 판화 대가 중의 한 사람으로
선정한 바 있다.
또한 그녀의 작품은
일본, 미국, 영국 등의 여러 유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여러 차례 미국 및 일본 등지에서 전시! 를 열었고
앞으로도 그녀를 조명하는 전시가 계획 중이다.
엘리자베스 키스(Elizabreth Keith 1887~1956)는
스코틀랜드 에버딘셔에서 태어나 런던에 거주하였다.
1915년 여동생과 제부를 따라 일본에 방문하게 되었고
이후 1919년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비록 일본의 식민지였지만 작가의 눈에 비친 한국은
자신의 거주지인 일본과는 달랐다.
그녀는 작지만 강한 한국인과
한국인의 생활상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그 안에 살아 있는 문화와 정신을 귀중히 여겨
수 십점의 수채화 및 판화작품을 남기었다.
이 당시 동양을 동경하여 이주하였던 작가가 그랬듯이
키스 판화 작품도 일본 우끼요에 판화에 영향을 받았다.
한국에서 수채화로 그린 후
대부분 일본에서 목판화로 재 제작 되어
보다 많은 수의 작품을 남기었으며
이것을 일본, 미국, 유럽 등에서 순회전시를 하여
당시 한국의 현실, 생활문화, 예의와 풍습 등을
세계에 알리는 특별한 역할을 하였다.
키스가 작품의 주제로 삼은 것은 명승지와 풍경 등도 있지만
주로 일상을 분주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함이었다.
농부, 과부, 아낙네, 노인에서부터 왕실공주, 음악연주자,
학사, 양반 댁 규수, 무인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볼 수 있었던 인물과 그들의 생활을
과장이나 폄하 없이
간결하고 진솔하게 사실적으로 재현하여
당시 한국의 생활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1919년 최초 일본 전,
1920년 서울 전을 비롯하여
다수의 전시를 국내외에서 가진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작가가 특별히 사랑하던 한국에서는
아직 그녀를 조명하는 전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본 전시는
한국에서 작가에 대한 깊이 있는 조명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작가의 주옥 같은 작품 중
소재를 파악할 수 있는 한국 주제 작품 30 여점과
일본, 중국 등 동북아를 주제로 한 작품 30여점을 전시하되
소재를 파악 할 수 없는 한국 주제 작품은
영상물로 제작하여 상영 전시하였다.
또한 엘리자베스 키스와 엘스펫 키스 자매가
당시에 썼던 글을 함께 병행 전시하여
작품을 제작할 당시 작가가 한국을 바라보던 시각을
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올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이번 전시를 통해 80년 전
한국을 특별히 사랑한 영국여성의 순수한 열정을
만끽하는 귀한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