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씨원류응화 사적책판 보물591호
소 재 지; |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불교중앙박물관 보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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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인조 9년(1631) 정두경이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가져온 책을 바탕으로 현종 14년(1673) 승려 자습이 양주 불암사에 목판본으로 발간한 책판이다. 이 책은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석가모니 이후 서역 및 중국에서 불법이 전파된 사실을 400항에 걸쳐 기술한 것으로, 각 항의 4자 1구로 제목을 붙이고 먼저 사적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 다음 면에 그 내용을 서술하였다. 글자의 새김은 매우 정교하고 그 기법이 우수하다. 책 첫머리에는 중국 명나라 헌종 22년(1486)에 헌종이 직접 쓴 서문이 있고, 다음에 당나라 왕발의 석가여래성도기(釋迦如來成道記)가 있다. 책 끝에는 화가와 인쇄조각자 18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데, 정확하게 누가 이 책을 썼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 중국서 목록에도 나와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없어져 전해지지 않는 글로 보인다.
허목 수고본
금속운부
고문운부
허목 수고본 보물592호
소 재 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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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미수 허목(1595∼1682)이 쓴 수필원고본들이다. 허목은 전서체에 뛰어난 유학자이며, 23세 때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퇴계 이황의 학문을 존중하였다. 이로 인해 스승 정구로부터 퇴계의 학문을 이어 받아 다시 그 학문이 이익에 의해 계승, 발전되는 매개체역할을 하였다. 유물을 보면『동해비첩』1책,『금석운부』2책, 『고문운부』9책으로 총 3종 12책이다. 이것들은 모두 허목의 대표적 전서체 작품들로서 그의 필체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① 동해비첩(東海碑帖) 1책(冊) 첩장(帖裝) 50㎝ ×32.7㎝필자(筆者)는「전위동방제일(篆爲東方弟一)」이라는 평을 받을만큼 전서명가(篆書名家)인데, 그 전(篆)을 대표하는 것이 곧 이 동해비(東海碑)이다. 동해비(東海碑)는「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로 현재 삼척군(三陟郡)에 있으며 그 비의 탁본(拓本)은 세간에 많이 유포되고 있다. 동해비(東海碑)의 추기(追記)에 의하면 「처음에 세운 비는 현재의 비보다 글씨가 더 컸었는데 풍랑에 침몰되었으므로 선생이 따로 써 둔 소자본(小字本)에 의하여 다시 모각(模刻)하였다.」한 것을 보면 필자는 이 비의 고본(稿本)을 몇 가지로 써 두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② 금석운부(金石韻府) 2책(冊) 사본(寫本) 선장(線裝) 34.7㎝ ×22㎝고금석(古金石)에 나타난 전서(篆書)를 총망라한 전서자전(篆書字典)이다. 이 책은 석판(石版)으로 영인간행(影印刊行)된 적이 있었다. ③ 고문운부(古文韻府) 9책(冊) 사본(寫本) 선장(線裝) 34.5㎝ ×22.7㎝고문헌(古文獻) 및 금석(金石)에 나타난 고전문(古篆文)을 운별(韻別)로 정리하여 먼저 해서(楷書)를 쓰고 다음에 각체(各體)의 고문(古文)과 전(篆)을 기입(記入)한 고문자전(古文字典)이다.
동해비첩 보물592-1호
소 재 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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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유학자인 미수 허목(1595∼1682)이 쓴 수필원고본들 가운데 하나이다. 동해비는 본래 ‘척주동해비’로 현재 삼척군에 있으며, 그 비의 탁본은 많이 유포되어 있다. 원래 동해비의 글씨는 현재의 비보다 더 컸는데 파도에 침몰되어 선생이 따로 작은 글씨로 써둔 것을 보고 다시 새겼다. 크기는 가로 32.7㎝, 세로 50㎝이다.
금석운부 보물592-2호
소 재 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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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 허목(1595∼1682)이 쓴 수필원고본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것은 옛 금석문에 나타난 전서를 총망라하여 만든 전서자전으로, 석판으로 영인간행된 적이 있다. 크기는 가로 22.7㎝, 세로 34.5㎝이다.
고문운부 보물592-3호
소 재 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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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유학자인 미수 허목(1595∼1682)이 쓴 수필원고본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것은 옛 문헌 및 금석에 나타난 옛 전서문을 운별로 정리하여 먼저 해서를 쓰고 다음에 각 체의 고문과 전을 기입한 고문자전이다.『금석운부』는 금석자료에 한정되었으나 이 책은 고문헌까지 망라하였으므로, 내용이 더욱 방대하다. 크기는 가로 22.7㎝, 세로 34.5㎝이다.
나한
발문
이상좌 불화첩 보물593호
소 재 지; |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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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화가인 학포(學圃) 이상좌(李上佐)(1465∼?)가 그린 여러 가지 불상그림을 모은 가로 31.1㎝, 세로 50.7㎝의 그림책이다. 이상좌는 노비출신이었으나 그림을 잘 그려 그림을 담당한 관청인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는데, 특히 인물화를 잘 그렸다. 부처의 설법을 듣고 성자가 된 나한을 그린 이 화첩의 그림들은 종이 바탕에 채색없이 묵선만으로 그린 것이다. 나한의 머리위에 번호가 있는 것으로 보아 16나한을 그린 듯하지만 현재 5점만이 남아있다. 이 그림들은 비록 밑그림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붓놀림이 활발하고 유려한 필치로 인물을 잘 표현하고 있다. 얼굴은 가는 선으로 섬세하게 표현하였고, 옷은 가는 선과 굵은 선을 적당히 사용하였다.
최덕지 영정 및 유지 초본 보물594호
소 재 지; | 전남 영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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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최덕지의 초상화의 원본과 초본이다.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는 조선(朝鮮) 태종(太宗) 5년(1405)에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전라도(全羅道)의 여러 주군(州郡)을 다스리고, 남원부사(南原府使)·예문관(藝文館) 직제학(直提學)을 지낸 인물이다. 현재 영보리(永保里) 녹동서원(鹿洞書院)에 봉안되어 있는 최덕지 영정은 조선시대 최고(最古)의 사대부(士大夫) 초상화(肖像畵)이며, 함께 소장된 유지초본(油紙草本) 역시 정본(正本)과 같은 크기로서 작가의 초안(草案)과정이 여실히 나타나는 귀중한 자료이다. 초상화의 원본은 비단 바탕에 채색되었으며, 크기는 가로 53㎝, 세로 74㎝이다. 책이 놓여져 있는 책상을 앞에 두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인데, 얼굴은 오른쪽을 향하고 몸체는 정면으로 돌려져 있다. 모자는 고려말 조선초의 과도기적 형태이며 반투명한 모자 속에 상투 부분이 검게 비치고 있다. 의복은 하나의 색으로 표현되었고, 얼굴은 전체적으로 갈색빛을 띠고 있으며 눈썹은 먹으로 엷게 칠한 위에 털을 한올한올 밑으로 숙여지게 표현하였다. 발 부분은 나타나 있지 않고 손은 밖으로 나와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 초상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선생의 만년기 때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얼굴 및 옷주름 등의 처리에서 사실적이고 세밀한 묘사를 잘 보여 준다.
초충도수병 보물595호
소 재 지; | 부산 서구 동대신동3가 1 동아대학교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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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비단(묵공단(墨貢緞))에 색실로 풀 ·꽃 ·벌레 ·나비 등을 아름답게 수놓아 만든 한 폭당 가로 40㎝, 세로 64㎝인 여덟 폭짜리 병풍이다. 여성의 정숙한 분위기를 이루는 이 자수병풍에는 민들레·패랭이꽃·맨드라미·벌·나비 등 무려 20여종의 풀과 벌레를 볼 수 있으며, 구도나 기법이 독특하다. 초충수병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실적으로 세밀하게 묘사했다는 점이며, 한국의 전통적인 자수기법을 응용한 초충도수병의 수작이다. 18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병풍으로 추측되며, 고상하고 우아하면서도 사실적이어서 궁중이나 양반댁에서 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신사임당(申師任堂)의 작품이라고 전해지지만 확실하지 않으며 작품이 좋아서 그렇게 전해 오고 있는 듯하다.
궁궐도 보물596호
소 재 지; | 부산 서구 동대신동3가 1 동아대학교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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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249호 동궐도 로 승격지정됨에 따라 1995년6월23일 해지
융기문 토기 보물597호
소 재 지; | 부산 서구 동대신동3가 1 동아대학교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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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신동 패총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초기의 토기로, 크기는 높이 12.4㎝, 지름 16.4㎝이다. 이 토기의 특징은 아가리 한 쪽에 짧은 주구가 부착되어, 내용물을 담아 따르도록 되어 있다는 점과 아가리 밑으로 융기된 장식무늬가 있다는 점이다. 장식무늬는 덧띠문(점토대)를 W자형으로 붙인 뒤, 이 덧띠문를 띠모양으로 눌러 눈금을 새겨 장식효과를 높이고 있다. 바탕흙은 점토질로 황갈색을 띠며, 아래쪽으로 내려올수록 검은색을 띤다.
마두식 각배 보물598호
소 재 지; | 부산 서구 동대신동3가 1 동아대학교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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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무덤들 중 제7호 무덤에서 출토된 말머리 장식의 뿔잔(각배)이다. 각배란 본래 쇠뿔과 같은 동물의 뿔(각)로 만든 것을 말하지만, 넓게는 흙이나 금속 등으로 뿔잔의 형태를 본떠 만든 것도 포함시켜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라·가야 지역의 무덤에서는 여러 형태의 뿔잔이 다수 출토되었는데, 이 뿔잔은 그 중에서도 뛰어난 걸작이다. 이 뿔잔은 큰 것이 높이 14.4㎝, 길이 17㎝, 작은 것은 높이 12.1㎝, 길이 17㎝로 크기는 서로 다르나, 전체적인 형태와 제작 수법은 거의 동일하다.
쌍자승자 총통 보물599호
소 재 지; | 부산 서구 동대신동3가 1 동아대학교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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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사용하던 개인용 소용화기(小用火器)의 일종으로, 총구에 화약과 실탄을 장전, 불씨를 점화하여 발사하는 유통식이다. 총신이 쌍으로 이루어져 한쪽 총신에서 3발을 동시에 장전, 발사할 수 있어 양쪽 6발을 목표에 집중 사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비, 눈, 바람이 있을 때는 거의 사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총신이 짧아 원거리 사격에 적합하지 않다. 임진왜란 때 총신이 긴 반자동식 조총이 도입되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길이 52.2㎝, 구경 1.7㎝, 손잡이 6㎝인 이 총통의 총구쪽은 2개의 마디(죽절)가 있고, 손잡이 부분은 단순하게 처리하여 세련미를 자아낸다. 총신에는 글이 씌여 있는데, 선조 17년(1583)에 제작되었음과 사용법이 씌여 있다. 사용법에 의하면 탄환을 2개씩 장전할 수 있으므로 총 12발을 발사할 수 있는 희귀한 예이다. 이 총통(銃筒)에는 만력계미팔월(萬曆癸未八月) 일(일) 쌍자육십육량(雙字六什六兩) 장서준매(匠徐俊每) 일화선일촌반(一火線一寸半) 약이전식(藥二錢式) 환이식(丸二式) 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광주 약사암 석조여래좌상 보물600호
소 재 지; | 광주 동구 운림동 약사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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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방에서 보기 드문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보존 상태까지 양호하다. 거친 화강암 석재를 다듬어서 만들었으며, 질병에 빠진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약사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약간 숙이고 있는 얼굴은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모양이다. 체구는 전체적으로 당당하게 표현되었으나 어깨선이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약간 쳐져 보인다. 허리는 지나치게 가늘게 표현되어 상대적으로 가슴쪽의 양감이 풍부해 보인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입은 옷은 가슴 앞에서 한번 접었고 몸에 얇게 밀착되어 상체의 굴곡을 잘 드러내준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하체는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하고 앉아 있는데, 무릎이 지나치게 넓어 보인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전형적인 8각의 연꽃무늬 대좌인데, 각각 한 개의 돌로 상·중·하대를 구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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