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 속담 방

♤ 눈오는 밤 ♤

모링가연구가 2008. 11. 2. 16:39

 
옛글의 갈피
     
    ♤ 눈오는 밤 ♤ 
                     -이덕무 청언소품- 
    有超世先生, 萬峯中雪屋燈明, 
    硏朱點易, 古爐香烟, 뇨뇨靑立, 
    空中結綵毬狀. 靜玩一二刻, 悟竗, 
    忽發笑. 右看梅花, 齊綻악; 
    左聞茶沸響, 作松風檜雨, 澎湃붕생. 
    세상에 초연한 선생이 있어, 
    깊은 산 속 눈 덮힌 집에서 등불을 밝혀두고, 
    붉은 먹을 갈아 《주역》에 점을 찍는다. 
    묵은 질화로에선 향연香煙이 모락모락 
    푸르게 피어 올라 허공 중에 둥근 채색 공 모양을 만든다. 
    가만히 한 두 시각쯤 바라보다가 
    오묘한 이치를 깨달아 홀연히 웃음을 터뜨린다. 
    오른편에 보이는 매화는 일제히 꽃망울을 부프고, 
    왼편에는 차 끓이는 소리가 솔바람 소리나 
    노송나무에 듣는 빗방울 소리를 내며 보글보글 넘쳐 흐른다. 
    


      깊은 산속 눈오는 밤, 초가집 지붕 위론 소담스런 눈이 내려서 쌓인다. 등불을 밝혀 놓고 밤을 지새는 사람. 붉은 먹을 갈아서는 읽고 있던 《주역》에 기억하고 싶은 글귀마다 점을 찍는다. 해묵은 화로에선 뭉게뭉게 푸른 연기가 둥글게 피어 올랐다간 또 허공으로 자취없이 사라진다. 아하! 그랬구나. 인생이란 한 오리 연기가 허공 위에 둥글게 솟았다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로구나. 살아가는 동안 뜬 욕심 부리지 말고, 초촐히 마음 맑혀 살다 가라는 것이로구나. 책 읽던 눈길이 연기 위로 가 멎는 횟수가 자꾸만 잦아진다. 그 곁에선 깨달음의 한 소식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매화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고, 다른 한켠에선 보글보글 차끓는 소리가 마치 솔바람 파도 소리, 노송나무 너븐 잎에 뚝뚝 듣는 빗방울 소리처럼 들려온다. 시냇물이 콸콸 넘쳐 흐르는 소리인가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