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모에 대한 효(孝) ㅇ 事親以孝(사친이효) : 어버이를 섬김에 효도로써 함. 세속오계의 하나 ㅇ 父子有親(부자유친) : 아버지와 아들의 道는 친애에 있음. 五倫의 하나 ㅇ 父爲子綱(부위자강) :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 지킬 떳떳한 도리. 삼강의 하나. ㅇ 昏定晨省(혼정신성) : 조석으로 부모의 안부를 물어 살핌 ㅇ 反哺之孝(반포지효) : 자식이 자라서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는 효성 ㅇ 反哺報恩(반포보은) : 자식이 부모가 길러 준 은혜를 갚음 ㅇ 風樹之嘆(풍수지탄) : 효도하고자 할 때에 이미 부모는 돌아가셔서, 효행을 다하지 못하는 슬픔 ㅇ 出必告反必面(출필고반필면) : 밖에 나갈 때 가는 곳을 반드시 아뢰고, 되돌아와서는 반드시 얼굴 ............................................ 을 보여 드린다. ㅇ 昊天罔極(호천망극) : 끝없는 하늘과 같이 부모의 은혜가 크다는 것을 말함 ㅇ 望雲之情(망운지정) : 객지에서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 ㅇ 白雲孤飛(백운고비) : 멀리 떠나는 자식이 어버이를 그리워 함 ㅇ 冬溫夏?(동온하청) : 부모에 효도함. 겨울은 따뜻하게 여름은 시원하게 해드림. ㅇ 伯兪之孝(백유지효) : 韓伯兪는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로부터 종아리를 맞아도 아프지 않다 하여 ................................ 어머니의 노쇠함을 탄식함. 2. 친구간의 우정
4. 부부(夫婦)와 관련 6. 세상의 형편(世態) 7. 서로 다툼(相爭) 9. 일에 일관성이 없음 |
11. 위태로운 일의 형세
ㅇ 風前燈火(풍전등화) : 바람 앞에 놓인 등불, 사물이 매우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음을 비유하는 말.
ㅇ 焦眉之急(초미지급) : 눈썹이 타면 끄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매우 다급한 일을 일컬음.
ㅇ 危機一髮(위기일발) : 위급함이 매우 절박한 순간.(거의 여유가 없는 위급한 순간)
ㅇ 累卵之勢(누란지세) : 새알을 쌓아놓은 듯한 위태로운 형세.
ㅇ 百尺竿頭(백척간두) : 백척 높이의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 몹시 위태롭고 어려운 지경에 빠짐
ㅇ 如履薄氷(여리박빙) : 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다는 뜻으로, 몹시 위험하여 조심함을 이르는 말.
ㅇ 四面楚歌(사면초가) : 사방에서 적군 초나라 노랫소리가 들려옴. 사면이 모두 적에게 포위되어 고립된 상태.
ㅇ 一觸卽發(일촉즉발) : 조금만 닿아도 곧 폭발할 것 같은 모양. 막 일이 일어날 듯하여 위험한 지경.
12. 이러지도 저러지도
ㅇ 進退兩難(진퇴양란) : 앞으로 나아가기도 어렵고 뒤로 물러나기도 어려움
ㅇ 進退維谷(진퇴유곡) : 앞으로 나아가도 뒤로 물러나도 골짜기만 있음. 어쩔 수 없는 궁지에 빠진 상태
ㅇ 鷄肋(계륵) : '닭갈비'라는 뜻으로 먹자니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움
13. 아주 무식함
ㅇ 目不識丁(목불식정) : ‘낫 놓고 기역자도 모름’
ㅇ 魚魯不辨(어로불변) : '魚'자와 '魯'자를 분별하지 못함
ㅇ 一字無識(일자무식) : 글자 한자도 알지 못함
14. 원수사이
ㅇ 氷炭不相容(빙탄불상용) : 얼음과 숯불은 서로 용납되지 아니함
ㅇ 氷炭之間(빙탄지간) : 얼음과 숯불의 사이(관계)
ㅇ 不俱戴天之讐(불구대천지수) : 하늘을 함께 이고 살아갈 수 없는 원수
15. 평범한 사람들
ㅇ 甲男乙女(갑남을녀) : 갑이라는 남자와 을이라는 여자
ㅇ 張三李四(장삼이사) : 장씨 세 사람과 이씨 네 사람(당시 흔했던 성씨임)
ㅇ 匹夫匹婦(필부필부) : 한 쌍의 지아비와 한 쌍의 지어미
ㅇ 樵童汲婦(초동급부) : 나무하는 아이와 물 긷는 아낙네
16. 무척 고지식함
ㅇ 刻舟求劍(각주구검) : 배에 금을 긋고 칼을 찾음
ㅇ 膠柱鼓瑟(교주고슬) : 이교로 붙이고 거문고를 탐
ㅇ 守株待兎(수주대토) : 구습을 고수하여 변통할 줄 모름. 진보가 없음을 비유
17. 자연에 대한 애착
ㅇ 泉石膏?(천석고황) : 산수를 사랑하는 것이 정도에 지나쳐 마치 불치의 고질과 같음
ㅇ 煙霞痼疾(연하고질) : 깊이 산수의 경치를 사랑하고 집착하여 여행을 즐기는 고질같은 성격
18. 부모님에게 효도
ㅇ 昏定晨省(혼정신성) : 저녁에는 부모님의 잠자리를 정하고 아침에는 부모님께서 안녕히 주무셨는지를 살핌
ㅇ 斑衣之戱(반의지희) : 부모를 위로하려고 색동 저고리를 입고 기어가 보임
ㅇ 反哺報恩(반포보은) : 자식이 부모가 길러 준 은혜를 갚음
ㅇ 風樹之嘆(풍수지탄) : 효도를 다하지 못하고 어버이를 여읜 자식의 슬픔을 비유한 말.
(참고) 이는 "樹欲靜而風不止하고 子欲養而親不待니라"(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은 멎지 아니하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니는 그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19. 한바탕의 헛된 꿈
ㅇ 南柯一夢(남가일몽) : 꿈과 같이 헛된 한 때의 꿈
ㅇ 一場春夢(일장춘몽) : 한바탕의 봄꿈처럼 헛된 영화(富貴榮華)
ㅇ 邯鄲之夢(한단지몽) : 세상의 부귀영화가 허황됨을 이르는 말.
20. 누군가를 그리워함
ㅇ 寤寐不忘(오매불망) : 자나 깨나 잊지 못함
ㅇ 輾轉反側(전전반측) : 누워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을 이루지 못함
ㅇ 輾轉不寐(전전불매) :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함
21. 마음에서 마음으로
ㅇ 以心傳心(이심전심) :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함
ㅇ 心心相印(심심상인) : 마음과 마음에 서로를 새김
ㅇ 不立文字(불립문자) : 문자나 말로써 도를 전하지 아니함
ㅇ 敎外別傳(교외별전) : 석가 일대의 설교 외에 석가가 마음으로써 따로 심원한(깊은) 뜻을 전함
ㅇ 拈華微笑(염화미소) : 이심전심의 경지를 이름
22. 겉 다르고 속 다름
ㅇ 面從腹背(면종복배) : 면전에서는 따르나 뱃속으로는 배반함
ㅇ 勸上搖木(권상요목) : 나무 위에 오르라고 권하고는 오르자마자 아래서 흔들어 댐
ㅇ 羊頭狗肉(양두구육) : 겉으로는 그럴 듯하게 내세우나 속은 음흉한 딴 생각이 있음
ㅇ 敬而遠之(경이원지) : 겉으로는 존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멀리함
ㅇ 口蜜腹劍(구밀복검) : 입 속으로는 꿀을 담고 뱃속으로는 칼을 지녔다는 뜻으로 입으로는 친절하나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품었음을 비유하여 일컫는 말
ㅇ 表裏不同(표리부동) : 겉과 속이 다름.
23. 실패에 굴하지 않음
ㅇ 百折不屈(백절불굴) : 여러 번 꺾어져도 굽히지 않음
ㅇ 七顚八起(칠전팔기) : 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째는 꼭 일어남
24. 아주 빼어난 여자
ㅇ 傾國之色(경국지색) : 임금이 혹하여 국정을 게을리함으로써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게 할 미인이라는 뜻.
ㅇ 傾城之美(경성지미) : 한 성(城)을 기울어뜨릴 만한 미색(美色).
ㅇ 花容月態(화용월태) : 꽃같은 용모에 달같은 몸매.
ㅇ 丹脣皓齒(단순호치) : 붉은 입술에 흰 이를 가진 여자.
25. 학문에 전념함
ㅇ 自强不息(자강불식) : 스스로 힘써 행하여 쉬지 않음
ㅇ 發憤忘食(발분망식) : 발분(분발)하여 끼니를 잊고 노력함
ㅇ 手不釋卷(수불석권) : 손에서 책을 놓을 사이 없이 열심히 공부함
ㅇ 螢窓雪案(형창설안) : 반딧불이 비치는 창과 눈(雪)이 비치는 책상이라는 뜻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학문에 힘씀을 비유한 말. 참고: 螢窓雪案의 고사의 주인공은 '차윤'과 '손강'이다.
ㅇ 切磋啄磨(절차탁마) : 옥돌을 쪼고 갈아서 빛을 냄. 곧 학문이나 인격을 수련, 연마함
ㅇ 走馬加鞭(주마가편) :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한다.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노력함.
26. 달면 삼키고 쓰면
ㅇ 甘呑苦吐(감탄고토) :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음)필요할 때는 취하고 필요 없을 때는 미련 없이 버림.
ㅇ 兎死狗烹(토사구팽) :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충실한 사냥개는 주인에게 잡혀 먹힘
※ 원래는 狡兎死而良狗烹(교토사양구팽)의 준말로 할 일이 없는 사냥개는 아무리 훌륭해도 쓸모 없는 존재가 됨을 이르는 말.
27. 앞길이 유망함
ㅇ 前程萬里(전정만리) : 앞길이 구만 리 같음.
ㅇ 鵬程萬里(붕정만리) : 붕새가 날아가는 하늘 길이 만리로 트임.
28. 정사를 떠받들 재목
ㅇ 股肱之臣(고굉지신) : 팔, 다리가 될 만한 신하.
ㅇ 社稷之臣(사직지신) : 사직(왕조)을 지탱할 만한 신하.
ㅇ 棟梁之材(동량지재) : 대들보(동량)가 될 만한 재목.
ㅇ 柱石之臣(주석지신) : 주춧돌(주석)이 될 만한 신하.
29. 고래싸움에 새우등
ㅇ 鯨戰鰕死(경전하사) :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약자가 강자 틈에 끼어 고생함.
ㅇ 間於齊楚(간어제초) :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끼임.
30. 매우 가까운 거리
ㅇ 咫尺之地(지척지지) : 매우 가까운 곳.
ㅇ 咫尺之間(지척지간) : 매우 가까운 거리.
ㅇ 指呼之間(지호지간) : 손짓하여 부를만한 가까운 거리.
ㅇ 五十步百步(오십보백보) : 피차의 사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같다. (<孟子>에 나온 말임)
31. 남에게 의심 살 만한
ㅇ 瓜田不納履(과전불납리) : 외밭(오이밭)에 신을 들여 놓지 않음.
ㅇ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 :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을 바로 쓰지 않음.
32. 견문이 좁은 사람
ㅇ 井底之蛙(정저지와) : 우물 안의 개구리
ㅇ 坐井觀天(좌정관천) : 우물에 앉아서 하늘을 본다 함이니, 견문이 좁음을 뜻함.
ㅇ 管見(관견) : 붓 대롱 속으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소견머리가 없음.
ㅇ 通管窺天(통관규천) : 붓 대롱을 통해서 하늘을 엿본다.
33. 뒤늦게 손을 씀
ㅇ 死後藥方文(사후약방문) : 죽은 뒤에야 약방문(藥方文:현대의 처방전)을 줌.
ㅇ 亡羊補牢(망양보뢰) : 양(羊)을 잃은 후에 우리를 고침.(=소잃고 외양간 고친다)
ㅇ 渴而穿井(갈이천정) : 목이 마르니까 비로소 우물을 판다.
34. 진리를 찾기 어려움
ㅇ 亡羊之歎(망양지탄) : 달아날 양을 쫓는데 갈림길이 많아서 잃어버리고 탄식한다는 뜻으로, 학문의 길이 다방면이어서 진리를 깨닫기가 어려움을 한탄함을 비유한 말.
ㅇ 多岐亡羊(다기망양) : 여러 갈래의 길에서 양을 잃음.
35. 앞날의 길흉화복은
ㅇ 塞翁之馬(새옹지마) : 변방에 사는 늙은이가 기르던 말이 달아났다가 준마와 함께 돌아왔는데, 그 노인의 외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었다. 때마침 난리가 일어나 성한 젊은이들은 모두 전쟁에 끌려나가 죽었으나 그 노인의 아들은 절름발이여서 목숨을 보전하였다는 데서 나온 말
ㅇ 轉禍爲福(전화위복) : 화가 바뀌어 복이 됨
36. 부부 사이의 금슬
ㅇ 百年偕老(백년해로) : 부부가 화락하게 일생을 늙음.
ㅇ 偕老同穴(해로동혈) : 함께 늙어서 같이 묻힘.
ㅇ 琴瑟相和(금슬상화) : 거문고와 비파 소리가 조화를 잘 이룸을 비유한 말.
37. 고향에 대한 그리움
ㅇ 首邱初心(수구초심) : 여우가 죽을 때에 머리를 저 살던 굴 쪽으로 향한다는 뜻,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ㅇ 看雲步月(간운보월) : 낮에는 구름을 바라버고 밤에는 달빛 아래 거닌다는 뜻,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38 맨처음, 시작
ㅇ 嚆矢(효시) : '우는 화살'이란 뜻으로 옛날에 전쟁을 할 경우에 가장 소리가 잘나는 화살을 쏘아서 개전(開戰)을 알렸다는 데서 유래한 말. 예) 우리나라 근대극의 효시.
ㅇ 濫觴(남상) : '술잔에서 넘친다'는 뜻으로 아무리 큰 물줄기라 하더라도 그 근원을 따지고 보면 자그마한 술잔에서 넘치는 물로부터 시작된다는 뜻.
ㅇ 破天荒(파천황) : 이전에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처음으로 함.
39. 몹시 가난함
ㅇ 三旬九食(삼순구식) : 서른 날에 아홉 끼니밖에 못 먹음.
ㅇ 桂玉之嘆(계옥지탄) : 식량 구하기가 계수나무 구하듯이 어렵고, 땔감을 구하기가 옥을 구하기만큼 어려움.
※ 참고 : 계옥지탄은 물가가 너무 비싼 것을 탄식한다는 뜻고 있음.
ㅇ 男負女戴(남부여대) : 남자는 지고 여자는 이고 감. 곧 가난한 사람들이 떠돌아다니며 사는 것을 말함.
40. 가혹한 정치
ㅇ 苛斂誅求(가렴주구) : 세금을 너무 가혹하게 거두어 들임.
ㅇ 泡烙之刑(포락지형) : 잔혹하고 가혹한 형벌.
ㅇ 塗炭之苦(도탄지고) : 진구렁에 빠지고 숯불에 타는 고생.
41. 대를 위해 소를 희생 42. 환경의 중요성 43. 입장이 서로 바뀜 46. 시절이 무척 태평함 48. 스승보다 나은 제자 50. 학문과 관련된 성어 51. 독서와 관련된 성어 52. 나이와 관련된 성어 54. 은혜를 저버림 55. 소문과 관련된 성어 56. 애정과 관련된 성어 57. 좋음과 관련된 성어 61. 행복과 관련된 성어 62. 무례와 관련된 성어 63. 출중(出衆)한 사람 65. 속담과 관련된 성어 ②
★각주구검 <刻 새길 각. 舟 배 주. 求 구할 구. 劍 칼 검. >
☆겉뜻: 배에 새겨 칼을 찾다 ☆속뜻: 어리석고 미련하여 융통성이 없다는 뜻. ☆유래: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한 젊은이가 양자강(揚子江)을 건너기 위해 배를 탔다. 배가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그만 실수하여 손에 들고 있던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뿔사! 이를 어쩐다." 젊은이는 허둥지둥 허리춤에서 단검을 빼들고 칼을 떨어뜨린 그 뱃전에다 표시를 하였다. 이윽고 배가 건너편 나루터에 닿자 그는 곧 옷을 벗어 던지고 표시를 한 그 뱃전 밑의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칼이 그 밑에 있을 리가 없었다.
★군계일학 <群무리 군, 鷄 닭 계, 一 한 일, 鶴 학 학>
☆겉뜻 : 닭의 무리 속에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 ☆속뜻 : 여러 평범 한 사람들 가운데 뛰어난 한 사람이 섞여 있음의 비유. ☆유래: 위진(魏晉)시대, 완적(阮籍), 완함(阮咸), 혜강(瑞康), 산도(山濤), 왕융(王戎) , 유령(劉伶), 상수(尙秀) 곧 죽림 칠현(竹林七賢)으로 불리는 일곱 명의 선비 가 있었다. 이들은 종종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북동부에 있는 죽림에 모여 노장(老莊)의 허무 사상을 바탕으로 한 청담(淸談)을 즐겨 담론했다. 그런데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위(魏)의 중산대부(中散大夫)로 있던 혜강(瑞康) 이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당했다. 그때 혜강에게는 나이 열 살 밖에 안되는 아들 혜소(瑞紹:? ∼304)가 있었다. 혜소가 성장하자 당시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 이부(吏部)에서 벼슬하던 산도(山濤)가 무제(武帝:256∼290, 위나라를 멸하고 진나라를 세운 사마염 司馬炎)에게 상주(常住)하였다. "폐하, 서경(書經)의 강고편(康誥篇)에는 아비의 죄는 아들에게 미치지 않으며 아들의 죄는 그 아비에게 미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혜강은 도륙 당했음). 비록 혜소는 혜강의 아들이나 그 슬기나 지혜는 춘추시대 진(晉) 나라의 대부 극결에게 결코 뒤지지 않사오니 그를 비서랑(비書郞)으로 기용 하시오소서." "그대가 추천할 만한 사람이라면 승(丞)을 시켜도 좋을 듯하오." 이렇게 말하면서 무제는 비서랑보다 한 단계 높은 벼슬인 비서승(秘書丞)으로 혜소를 등용했다. 혜소가 처음으로 낙양(洛陽)에 들어갔을 때 어떤 사람이 칠현의 한 사람인 왕융 (王戎)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저께 많은 혼잡한 군중 속에서 혜소를 처음 보았습니다. 그의 드높은 혈기와 기개는 마치 '닭의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의 학[群鷄一鶴]'과 같더군요." 이 말을 듣고 왕융은 대답했다. "그대는 혜소의 아버지를 본 적이 없지만 그는 혜소보다 훨씬 더 늠름했다네."
★계란유골 <鷄 닭 계, 卵 알 란, 有 있을 유, 骨 뼈 골>
☆ 겉뜻 : 계란에도 뼈가 있다. ☆ 속뜻 :운수가 나쁜 사람의 일은 모처럼 좋은 기회가 있더라도 무엇하나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유래: 송남잡지(松南雜識)에 의하면, 세종 때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황희(黃喜, 號 : 尨村)는 마음이 착하고 생활이 검소하였다. 황정승의 생활이 매우 빈한한 것을 상감(上監)께서 궁휼히 여기시고 어떻게 잘 살게 할 방도를 생각하시었다. 한 묘안을 얻어 명령하시되 내일은 아침 일찍 남대문을 열 때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이 문을 들어오는 물건을 다 황정승에게 주신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날은 뜻밖에도 새벽부터 폭풍우가 몰아쳐 종일토록 멎지 아니하므로 문을 드나드는 장사치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가 다 어두워 집에 들어갈려고 할 때 무슨 까닭인지 시골 영감이 달걀 한 꾸러미를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어 이것을 사 가지고 집에 돌아와 곧 삶아 먹으려고 하니 알마다 곯아서 한 알도 먹지 못하고 말았다 한다.
★갈택이어<竭다할 갈,澤못 택,而말이을 이,漁고기잡을 어>
☆겉뜻 ;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 고기를 잡는다는 뜻 ☆속뜻 ;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먼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을 말함. ☆유래 ;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 춘추시대 진(晉)나라 문공(文公)은 성복(城)이라는 곳에서 초(楚)나라와 일대 접전을 벌이게 되었다. 그러나 초나라 군사의 수가 진나라 군사보다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병력 또한 막강하였으므로 승리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 호언(狐偃)에게 물었다. "초나라의 병력은 많고 우리 병력은 적으니 이 싸움에서 승리할 방법이 없겠소"라고 하자 호언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예절을 중시하는 자는 번거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움에 능한 자는 속임수를 쓰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속임수를 써 보십시오." 문공은 다시 이옹(李雍)의 생각을 물었다. 이옹은 호언의 속임수 작전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별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다만 이렇게 말했다. "못의 물을 모두 퍼내어 물고기를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그 훗날에는 잡을 물고기가 없게 될 것이고, 산의 나무를 모두 불태워서 짐승들을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뒷날에는 잡을 짐승이 없을 것입니다(竭澤而漁 豈不獲得 而明年無魚 焚藪而田 豈不獲得 而明年無獸). 지금 속임수를 써서 위기를 모면한다 해도 영원한 해결책이 아닌 이상 임시 방편의 방법일 뿐입니다." 이옹의 비유는 눈앞의 이익만을 위하는 것은 화를 초래한다고 본 것이다.
★남가일몽 <南 남녘 남. 柯 가지 가. 一 한 일. 夢 꿈 몽. >
☆겉뜻 : 남쪽 나뭇가지의 꿈이란 뜻. ☆속뜻 : ① 덧없는 한때의 꿈. ② 인생의 덧없음의 비유. ③ 꿈과 같이 헛된 한 때의 부귀 영화. ☆유래 : 당(唐)나라 9대 황제인 덕종(德宗 : 780-804) 때 광릉(廣陵) 땅에 순우분 (淳于분)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순우분이 술에 취해 집 앞의 큰 홰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다. 그러자 어디서 남색 관복을 입은 두 사나이가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괴안국왕(槐安國王)의 명을 받고 대인(大人)을 모시러 온 사신 이옵니다." 순우분이 사신을 따라 홰나무 구멍 속으로 들어가자 국왕이 성문 앞에서 반가이 맞이했다. 순우분은 부마(駙馬)가 되어 궁궐에서 영화를 누리다가 남가(南柯) 태수를 제수(除授) 받고 부임했다. 남가군을 다스린 지 20년, 그는 그 간의 치적을 인정받아 재상(宰相)이 되었다. 그러나 때마침 침공해 온 단라국군(檀羅國軍)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설상가상 (雪上加霜)으로 아내까지 병으로 죽자 관직을 버리고 상경했다. 얼마 후 국왕은 '천도(遷都)해야 할 조짐이 보인다'며 순우분을 고향으로 돌려 보냈다. 잠에서 깨어난 순우분은 꿈이 하도 이상해서 홰나무 뿌리 부분을 살펴보았다. 과연 구 멍이 있었다. 그 구멍을 더듬어 나가자 넓은 공간에 수많은 개미의 무리가 두 마리의 왕 개미를 둘러싸고 있었다. 여기가 괴안국이었고, 왕개미는 국왕 내외였던 것이다. 또 거기서 '남쪽으로 뻗은 가지 [南柯]'에 나 있는 구멍에도 개미떼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남가군이었다. 순우분은 개미 구멍을 원상태로 고쳐 놓았지만 그날 밤에 큰 비가 내렸다. 이튿날 구멍 을 살펴보았으나 개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천도(遷都)해야 할 조짐'이란 바로 이 일이었던 것이다.
★남원북철<南남녘 남,轅끌채 원,北북녘 북,轍바퀴자국 철>
☆겉뜻 ; 수레의 끌채는 남을 향하고 바퀴는 북으로 감. ☆속뜻 ; 마음과 행위가 모순되고 있음을 비유 ☆유래 ; 당(唐)나라의 백거이(白居而:자는 樂天)의 《신악부(新樂府)》〈입부기시(立部伎詩)〉 편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전국시대 위(魏)나라 왕이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鄲)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때마침 여행을 하고 있던 신하 계량(季梁)이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 그는 왕에게, “저는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남방의 초나라를 향해 가고 있다고 하면서 북쪽을 향해 마차를 몰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나라로 간다면서 북쪽으로 가는 까닭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그는‘이 말은 아주 잘 달립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이 잘 달려도 이쪽은 초나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라고 하자, 그 사람은 ‘나는 돈을 넉넉히 가지고 있고, 마부가 마차를 모는 기술은 훌륭합니다’라고 엉뚱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왕께서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의 행동은 초나라와 더욱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하고 말하였다. 계랑은 말을 잠시 머추었다가 다시 말하였다. “왕께서는 항상 패왕(覇王)이 되어 천하가 복속하도록 하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왕께서는 나라가 조금 큰 것만을 믿고 한단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왕의 영토와 명성은 떨칠 수 있을지라도 왕의 목표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만난 사람처럼 마음은 초나라로 간다고 하면서 몸은 마차를 북쪽으로 몰고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남원북철’은 위 글의 대의를 나타낸 말이며, 또한 ‘북원적초(北轅適楚:수레의 끌채는 북을 향하고 수레는 남의 초로 가려 함)’이라고도 한다. 계량은 무력이 아니고, 덕(德)으로 천하를 제패할 것을 진언(進言)한 것이다.
★내우외환 <內 안 내, 憂 근심 우, 外 바깥 외,患 근심 환>
☆겉뜻 : 안의 근심과 밖의 재난. ☆속뜻 ; 근심·걱정 속에 사는 것을 뜻함 ☆유래 : 송(宋)나라에 환원이라는 대부(大夫)가 있었다. 그는 지성을 다해 진(晉)과 초(楚)를 설득하여 기원전 579년에 송나라의 서문 밖에서 양국의 대표자가 맹약을 조인케 하였다. 그 맹약의 주된 내용은 서로 침범하지 않을 것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환란이 있을 때엔 서로 도우며 복종하지 않은 나라가 있을 때에는 두 나라가 연합하여 공벌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남북을 대표하는 두 나라가 평화를 유지함으로써 천하의 소란을 가라앉히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맹약이 깨어진 것은 3년이 지나서였다. 초나라가 정나라를 침략함으로써 맹약은 깨어지고 이듬해인 575년에는 진의 영공과 초의 공왕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언릉이라는 곳에서 대치했다. 이 싸움에서 초나라의 공왕은 눈에 화살을 맞고 패주하여 초나라의 기세가 크게 꺾이는 비운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낙서(樂書)라는 이는 진나라에 항거하는 정나라를 치기 위해 동원령을 내렸었다. 이때 초나라와 싸울 것을 주장하자 범문자가 반대했다. "제후로 있는 자가 반란하면 이를 토벌하여야 함이 마땅한 것이지 그를 돕게 되면 나라가 혼란해지는 것이요." 낙서가 말했다. "성인이라면 밖으로의 재난을 견딜 수 있겠지만, 우리는 밖으로의 재난이 없으면 반드시 안으로 우환이 있을 것이요. 그러니 그것을 어찌 견디겠소."
★노마지지<老 늙을 로. 馬 말 마. 之 어조사 지, 智 지혜 지. >
☆겉뜻 : 늙은 말의 지혜란 뜻 ☆속뜻 :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저마다 장기나 장점을 지니고 있음을 이르는 말. ☆유래 : 춘추 시대, 오패의 한 사람이었던 제(齊)나라 환공(桓公: 재위 B.C.685∼643) 때의 일이다. 어느 해 봄, 환공은 명재상 관중(管仲:?∼B.C.645)과 대부 습붕(柝朋)을 데리고 고죽국[孤竹國:하북성(河北省) 내]을 정벌하러 나섰다. 그런데 전쟁이 의외로 길어지는 바람에 그 해 겨울에야 끝이 났다. 그래서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전군(全軍)이 진퇴 양난(進 退兩難)에 빠져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했다. "이런 때 '늙은 말의 지혜[老馬之智]'가 필요하다." 즉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전군이 그 뒤를 따라 행군한 지 얼마 안 되어 큰길이 나타났다. 또 한번은 산길을 행군하다가 식수가 떨어져 전군이 갈증에 시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습붕(柝朋)이 말했다. "개미란 원래 여름엔 산 북쪽에 집을 짓지만 겨울엔 산 남쪽 양지 바른 곳에 집을 짓고 산다. 흙이 한 치[一寸]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땅 속 일곱 자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 군사들이 산을 뒤져 개미집을 찾은 다음 그곳을 파 내려가자 과연 샘물이 솟아났다. 이 이야기에 이어 한비자(韓非子:韓非, ?∼B.C.233)는 그의 저서《한비자》 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관중의 총명과 습붕의 지혜로도 모르는 것은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그러나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어리석음에도 성현의 지혜를 스승으로 삼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 .
★대기만성<大큰 대,器그릇 기,晩늦을 만,成이룰 성>
☆겉뜻 ; 큰 그릇은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말 ☆속뜻 ;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 ☆유래 ; 《노자(老子)》 41장에서 나온 말이다. 노자는 이 장에서 옛글을 인용하여 도(道)를 설명하였는데 "매우 밝은 도는 어둡게 보이고,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도는 뒤로 물러나는 것 같다. 가장 평탄한 도는 굽은 것 같고, 가장 높은 덕은 낮은 것 같다. 몹시 흰 빛은 검은 것 같고, 매우 넓은 덕은 한쪽이 이지러진 것 같다. 아주 건실한 도는 빈약한 것 같고, 매우 질박한 도는 어리석은 것 같다.”라고 말하였다. 또 "그러므로 아주 큰 사각형은 귀가 없고(大方無隅),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大器晩成). 아주 큰 소리는 들을 수 없고(大音希聲), 아주 큰 형상은 모양이 없다(大象無形). 왜냐하면 도는 항상 사물의 배후에 숨어 있는 것이므로 무엇이라고 긍정할 수도, 또 부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여기에서 보듯 만성(晩成)이란 본래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로, 거의 이루어질 수 없다는 뜻이 강하다. 그런데 후일 이 말이 늦게 이룬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 비롯된 듯하다. 삼국시대 위(魏)나라에 최염(崔琰)이라는 이름난 장군이 있었다. 그에게는 최림(崔林)이라는 사촌동생이 있었는데, 외모도 빈약하고 출세가 늦어 친척들로부터 멸시를 당하였다. 하지만 최염만은 그의 재능을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큰 종이나 큰 솥은 그렇게 쉽사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큰 인물도 성공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내가 보기에 너도 그처럼 대기만성형이다. 좌절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라. 그러면 틀림없이 네가 큰 인물이 될 것이다." 과연 그의 말대로 최림은 후일 천자를 보좌하는 삼공(三公)에 이르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나이 들어 성공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사용되고 있다.
★도원결의 <桃복숭아 도,園동산 원,結맺을 결,義옳을 의>
☆겉뜻 : 복숭아 밭에서 결의를 맺는다는 말 ☆속뜻 : 뜻이 맞는 사람끼리 한 목적을 위해 행동을 같이 할 것을 약속한다는 뜻. ☆유래 : 원(元)나라 때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 환관의 발호로 정치가 어지럽자 생할고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새로운 살길을 찾게 되었다. 신흥 종교인 태평도(太平道)의 교주 장각(張角)은 이러한 틈을 이용해 세력을 넓히고 난을 일으켰다. 이것이 후한을 멸망시킨 황건적의 난이다. 조정에서는 하진을 대장군으로 삼아 이를 진압하려 했으나 미치지 못하자 각 지방에 병사를 모집하는 방을 붙이게 되었다. 유주(幽州) 탁현(縣)에 살던 유비(劉備)는 이 방문을 보자 가슴이 뛰었다. 그는 평소에 큰 일을 하고 싶어했으며, 일찍이 뤄양에 차를 사러 갔다가 황건적 무리의 횡포를 직접 체험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의욕만 앞설 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한숨만 쉬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거한이 유비 곁으로 다가와 한숨만 쉬는 것을 꾸짖었다. 장비(張飛)였다. 둘은 뜻이 같음을 알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가까운 주막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는 또 범상치 않은 얼굴의 거한이 있어 서로 마음이 통하였다. 그가 관우(關羽)였다. 서로 의기가 투합하자, 장비의 제안으로 다음날 장비의 집 후원 복숭아 밭에서 의형제 결의를 맺고 피를 나누었다.
★독서망양 < 讀 읽을 독,書 책 서,亡 잊을 망,羊양 양>
☆겉뜻 ; 책을 읽다가 양을 잃어버린다는 뜻 ☆속뜻 : 다른 일에 정신이 뺏겨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하게 된다는 비유. ☆유래 : 장(臧)과 곡(穀) 두 사람은 한 집에 살면서 서로 함께 양을 돌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양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장에서 어떤 일을 하다가 양을 돌보지 못하고 잃어버리게 되었느냐고 추궁하자 장은 "댓가지를 옆에 끼고 책을 읽고 있다 양을 잃었다(讀書亡羊)." 고 대답했다. 그리고 곡은 "주사위 놀이를 하느라 양을 돌보지 못하고 잃어버렸노라." 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양을 돌보는 일을 하는 중 한 일은 서로 달랐지만 그 양을 잃어버림에 있어서는 똑같다는 것이다.
★득어망전<得 얻을 득, 魚 고기 어, 忘 잊을 망, 筌 가리 전.>
☆겉뜻 :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린다는 뜻 ☆속뜻 : 목적을 이루면 그 때까지 수단으로 삼았던 사물은 무용지물이 됨을 이르 는 말. ☆유래 : "전(筌)은 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나 고기를 잡고 나면 전은 잊어버리게 된다. 제(蹄 : 덫)는 짐승 을 잡기 위한 것이나 짐승을 잡고 나면 제는 잊어버린다. 말(言)은 뜻을 나타내는 것이나 뜻을 다 알게되면 그 말은 잊어버린다." (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여기서 망전(忘筌), 망제(忘蹄), 망언(忘言)은 어느 것이나 시비와 선악 같은 것을 초월한 절대의 경지를 말하고 있다. 상대를 초월하여 이 세상의 만물은 한몸이라 고 생각하는 절대적인 경지에 서면,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으며, 선한 것도 악함도 없으며,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없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장자가 보는 그 당연한 일 면을 보통 사람들은 인간의 기회주의적인 모순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마부작침 <磨갈 마,斧도끼 부,作만들 작,針바늘 침>
☆겉뜻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말 ☆속뜻 ;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뜻. ☆유래 ; 남송(南宋) 때 축목(祝穆)이 지은 지리서 《방여승람(方與勝覽)》과 《당서(唐書)》 문예전(文藝傳)에 보이는 말이다. 당(唐)나라 때 시선(詩仙)으로 불린 이백(李白)은 서역의 무역상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촉(蜀)에서 보냈다. 젊은 시절 도교(道敎)에 심취했던 이백은 유협(遊俠)의 무리들과 어울려 쓰촨성[泗川省] 각지의 산을 떠돌기도 하였다. 이때 학문을 위해 상의산(象宜山)에 들어갔던 이백이 공부에 싫증이 나 산에서 내려와 돌아오는 길에 한 노파가 냇가에서 바위에 도끼를 갈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이백이 물었다. "할머니,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 것입니까?" "바늘을 만들려고 한단다. " 노파의 대답을 들은 이백이 기가 막혀서 "도끼로 바늘을 만든단 말씀입니까?" 하고 큰 소리로 웃자, 노파는 가만히 이백을 쳐다보며 꾸짖듯 말하였다. "얘야, 비웃을 일이 아니다.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 도끼로 바늘을 만들 수가 있단다." 이 말을 들은 이백은 크게 깨달은 바 있어 그 후로는 한눈 팔지 않고 글공부를 열심히 하였다고 한다. 그가 고금을 통하여 대시인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러한 경험이 계기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철저이성침(磨鐵杵而成針), 마철저(磨鐵杵), 철저성침(鐵杵成針), 우공이산(愚公移山)이나 수적석천(水滴石穿)과 같은 의미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끈기를 가지고 계속 노력하면 마침내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만사일생 <萬일만 만,死죽을 사,一한 일, 生살 생>
☆겉뜻 ; 만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다는 말 ☆속뜻 ; 요행히 살아나거나 겨우 죽음을 모면하는 것을 뜻한다. ☆유래 : 수나라 말, 정국이 어수선해지자 두건덕, 두복위, 맹해공, 곽자화 등을 필두로 하는 반란군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황제는 이연에게 이들을 진압하도록 명령을 내렸고, 이때 18세의 나이였던 이세민도 참가하였다. 그런데 황제는 이연이 출정한 뒤, 사람을 시켜 그가 반란군에 동조하지 않는지 감시하도록 했다. 이세민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반란군의 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이들을 전부 토벌할 수 있습니까? 만약 이들을 토벌하지 못한다면, 황제는 아버님께 벌을 내릴 것입니다." 그리고는 직접 군대를 일으켜 자립할 것을 권하였다. 그래서 이연은 태원을 거점으로 하여 병사를 일으키고 다른 곳에서 일어난 반란군들을 회유하여 하나하나 자신의 세력 밑으로 끌어들였다. 이 과정에서 수양제는 우문화에게 시해되고, 수나라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중국 통일의 염원을 이세민이 이룬 것이다. 이세민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생사고락을 같이한 수많은 인재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령 진숙보, 장량, 이정, 이훈, 방현령, 두여회 등이다. 이세민이 재능 있는 인사를 아꼇다는 것은 이정과의 인연에서 엿볼 수 있다. 일찌기 이연이 병사를 일으키려고 했을 때, 이 사실을 눈치 챈 관리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이정이다. 이정은 장안으로 가서 보고하려고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때 이연은 자신의 거사를 망치려고한 이정을 죽이려고 했지만, 이세민은 아버지를 만류하고 훗날 재상으로 삼았다. 이정은 평상시 자신보다 지혜와 능력이 월등한 사람을 보면 자기 자리를 서슴없이 내놓는 그런 사람이다. 이세민은 그의 이러한 면을 아꼈던 것이다. 이세민은 정관황제가 된 이후에도 사람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방현령은 나를 따라 천하를 평정하느라 고생을 하고, 만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오기도 하였다."
★문경지교<刎목 찌를 문. 頸목 경. 之어조사 지. 交사귈 교. >
☆겉뜻 : 목을 베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절친한 사귐. ☆속뜻 ;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벗. ☆유래 : 전국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신하 목현(繆賢)의 식객에 인상여 (藺相如)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에게 빼앗길 뻔했던 천하 명옥(名玉)인 화씨 지벽(和氏之璧)을 원상(原狀)대로 가지고 돌아온 공으로 일약 상대부(上大夫) 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3년 후(B.C. 280), 소양왕이 혜문왕을 욕보이려는 소양왕을 가로막고 나서서 오히려 그에게 망신을 주었다. 인상여는 그 공으로 종일품(從一品)의 상경(上卿)에 올랐다. 그리하여 인상여의 지위는 조나라의 명장으로 유명한 염파(廉頗)보다 더 높아졌다. 그러자 염파는 분개하여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싸움터를 누비며 성(城)을 쳐서 빼앗고 들에서 적을 무찔러 공을 세웠다. 그런데 입 밖에 놀린 것이 없는 인상여 따위가 나보다 윗자리에 앉다니……. 내 어찌 그런 놈 밑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언제든 그 놈을 만나면 망신을 주고 말테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를 피했다. 그는 병을 핑계대고 조정에도 나가지 않았으며, 길에서도 저 멀리 염파가 보이면 옆길로 돌아가곤 했다. 이같은 인상여의 비겁한 행동에 실망한 부하가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그러자 인상여는 그를 만류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염파 장군과 진나라 소양왕과 어느 쪽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가?" "그야 물론 소양왕이지요." "나는 소양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많은 신하들 앞에서 소양왕을 혼내 준 사람이야. 그런 내가 어찌 염파 장군 따위를 두려워하겠는가?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강국인 진나라가 쳐들어 오지 않는 것은 염파 장군과 내가 버티어 있기 때문일세. 이 두 호랑이가 싸우면 결국 모두 죽게 돼. 그래서 나라의 안위를 생각하고 염파 장군을 피하는 거야." 이 말을 전해 들은 염파는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다. 그는 곧 '웃통을 벗은 다음 태형(笞刑)에 쓰이는 형장(荊杖)을 짊어지고[肉袒負荊:사죄의 뜻을 나타 내는 행위]' 인상여를 찾아가 섬돌 아래 무릎을 꿇었다. "내가 미욱해서 대감의 높은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소. 어서 나에게 벌을 주시오."하고 염파는 진심으로 사죄했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었다고 한다.
★문전작라 <門 문 문. 前 앞 전. 雀 참새 작. 羅 벌일 라.>
☆겉뜻 : 문 앞에 새그물을 친다는 뜻으로, ☆속뜻 : 권세를 잃거나 빈천(貧賤)해지면 문 앞 (밖)에 새그물을 쳐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방문객의 발길이 끊어진다는 말. ☆유래: 전한 7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 급암과 정당시(鄭當詩)라는 두 현신(賢臣)이 있었다. 그들은 한때 각기 구경(九卿:9개 부처의 각 으뜸 벼슬)의 지위에까지 오른 적도 있었지만 둘 다 개성이 강한 탓에 좌천 면직 재등용을 되풀이하다가 급암은 회양 태수 (淮陽太守)를 끝으로 벼슬을 마쳤다. 이들이 각기 현직에 있을 때에는 방문객이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나 면직되자 방문객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고 한다.
이어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급정열전(汲鄭列傳)〉에서 이렇게 덧붙여 쓰고 있다. '급암과 정당시 정도의 현인이라도 세력이 있으면 빈객(賓客)이 열 배로 늘어나지만 세력이 없으면 당장 모두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경우는 더 말 할 나위도 없다.'
또 적공(翟公)의 경우는 이렇다. 적공이 정위(廷尉)가 되자 빈객이 문 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붐볐다. 그러나 그가 면직되자 빈객은 금새 발길을 끊었다. 집 안팎이 어찌나 한산한지 '문 앞(밖)에 새그물을 쳐 놓을 수 있을 정도[門外可設雀羅]'였다. 얼마 후 적공은 다시 정위가 되었다. 빈객들이 몰려들자 적공은 대문에 이렇게 써 붙였다.
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곧 사귐의 정을 알고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함에, 곧 사귐의 태도를 알며 한 번 귀하고 한 번 천함에, 곧 사귐의 정은 나타나네
★방약무인<傍곁,의지할 방.若갈을 약.無없을무. 人사람인. >
☆겉뜻 : 곁에 사람이 없는 것 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속뜻 : 주위의 다른 사람을 전혀 의 식하지 않은 채 제멋대로 마구 행동함을 이르 는 말. ☆유래 : 전국 시대도 거의 막을 내릴 무렵, 즉 진왕(秦王) 정(政:훗날의 시황 제)이 천하를 통일하기 직전의 일이다. 당시 포학 무도한 진왕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자객 중에 형가(荊軻)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위(衛)나라 사람이었으나 위나라 원군(元君)이 써주지 않자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연(燕)나라에서 축(筑:거문고와 비슷한 악기)의 명수인 고점리 (高漸離)를 만났다. 형가와 고점리는 곧 의기투합(意氣投合)하여 매일 저자에서 술을 마셨다. 취기가 돌면 고점리는 축을 연주하고 형가는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가 감회가 복받치면 함께 엉엉 울었다. 마치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傍若無人]'……. 그 후 秦나라로부터 치욕을 받은 연나라 태자 단(丹)의 부탁으로 秦始皇을 암살하기 위하여 진나라로 들어 갔으나 피살당하고 말았다.
★배반낭자<杯잔 배,盤쟁반 반,狼어지러울 낭藉어지러울 자>
☆겉뜻 ; 술잔과 그릇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는 뜻 ☆속뜻 ; 한창 술을 흥겹게 마시고 노는 모양 또는 술자리가 끝난 이후의 난잡한 모 습을 나타내는 말. ☆유래 ; 《사기(史記)》의 〈골계열전(滑稽列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유명한 해학가 순우곤은 언변이 뛰어나 여러 차례 사신으로 파견되었지만 비굴한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초(楚)나라의 침략을 불시에 받은 제나라 위왕(威王)은 조(趙)나라에게 구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순우곤을 파견하였다. 순우곤이 조나라 병사 10만 명과 전차 1,000승(乘)을 이끌고 제나라로 돌아오자 이를 본 초나라 병사는 밤에 철수해 버렸다. 위기를 모면한 위왕은 매우 기뻐하여 순우곤을 위해 축하연을 베풀었다. 이 술자리에서 위왕과 순우곤의 대화 가운데 순우곤이 “날이 저물어 술도 거의 떨어지게 되어 취흥이 돌면 남녀가 무릎을 맞대고 서로의 신발이 뒤섞이며 술잔과 그릇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으며[杯盤狼藉]”라고 대답한 데서 배반낭자가 나왔다. 또한 지혜롭고 상대편의 마음을 잘 읽는 순우곤은 주색을 겸비한 위왕에게 간접적으로 다음과 같이 간(諫)하였다. “술이 극에 달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퍼지는데 만사가 모두 그와 같습니다[酒極則亂 樂極則悲萬事盡然].” 이 말은 곧 달도 차면 기울고 모든 사물이 그와 같으므로 나라의 운세도 같다는 뜻이다. 이후 위왕은 순우곤의 진솔하고 충직함을 깨닫고 철야로 주연을 베푸는 것을 삼갔다고 하며, 순우곤을 제후의 주객(主客:외국사신을 접대하는 관리의 우두머리)으로 삼아 왕실의 주연이 있을 때는 꼭 곁에 두고 술을 마셨다고 한다. 배반낭자는 구양수(歐陽脩)의 〈취옹정기(醉翁亭記)〉에도 나온다. 오늘날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과도하게 술을 마셔 몸과 마음을 해치는, 나아가 사회 분위기가 혼탁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경계하는 의미에서 배반낭자라는 고사성어가 주는 의미는 크다.
★백전백승<百 일백 백. 戰 싸울 전. 百 일백 백 勝 이길 승.>
☆겉뜻 :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는 뜻 ☆속뜻 : 싸울 때마다 반드시 이긴다는 말. ☆유래 : 춘추 시대, 제(齊)나라 사람으로서 오왕(吳王) 합려(闔閭:B.C. 514∼ 496)를 섬긴 병법가 손자(孫子:孫武)가 쓴 "손자"〈모공편(謀攻篇)〉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승리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적을 공격하지 않고서 얻는 승리와 적을 공격한 끝에 얻는 승리인데 전자는 최상책(最上策)이고 후자는 차선책(次善策)이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겼다[百戰百勝]'해도 그것은 최상의 승리가 아니다.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승리인 것이다. 곧, 최상책은 적이 꾀하는 바를 간파하고 이를 봉쇄하는 것이다. 그 다음 상책은 적의 동맹 관계를 끊고 적을 고립시키는 것이고, 세 번째로 적과 싸우는 것이며, 최하책은 모든 수단을 다 쓴 끝에 강행하는 공성(攻城)이다.
★부화뇌동<附 붙을 부, 和 화할 화, 雷 천둥 뇌, 同 같을 동 >
☆겉뜻 : 우뢰 소리에 맞춰 함께 한다는 뜻 ☆속뜻 : 자신의 뚜렷한 소신 없이 남이 하는 데로 따라감. ☆유래 : 타협과 절충보다 아집과 독선으로 일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뚜렷한 자기 주관 없이 맹목과 방종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부화뇌동(附和雷同) 이다. 부화(附和)란 무조건 남의 주장에 따르고 아부하는 것을 말하며, 뇌동(雷同) 역시 같은 뜻이다. 굳이 '천둥'을 뜻하는 '뇌(雷)'자를 덧붙여 뇌동(雷同) 이라 한데는 까닭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자연의 모든 현상이 그것을 주재하는 어떤 거대한 존재에 의해 이루어 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비나, 바람, 이슬, 눈은 물론이고 지진이나 일식, 태풍까지 신(神)의 조화로 돌렸다. 재미있는 것은 천둥과 번개에 대한 인식이다. 지금이야 그것의 발생 원리를 초등학생도 다 알지만 옛날에는 모두 신(神)의 조화로 알았다. 그런데 그들은 거대한 천둥소리가 지상(地上)에 부딪쳐 메아리 치는 것을 두고 만물(萬物)이 그 소리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천둥 소리가 크게 울리면 반응도 크고 작으면 작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만물은 천둥소리에 따라 한치의 착오도 없이 무조건 반응하게 된다. 이처럼 천둥소리에 함께 따르는 것을 뇌동(雷同)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뇌동(雷同)에는 옛 조상들의 과학지식이 담겨 있다. 그러나 부화(附和)든, 뇌동(雷同)이든 상대방의 의견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므로 좋은 뜻은 아니다. 그것 보다는 자신(自身)의 주관(主觀)에 따라 당당(堂堂) 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아집과 독선은 곤란하겠지만….
★삼인성호 <三 석 삼. 人 사람 인. 成 이룰 성. 虎 범 호.>
☆겉뜻 :세 사람이 짜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도 할 수 있다는 뜻 ☆속뜻 :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하면 곧이듣는다는 말. ☆유래 전국 시대, 위(魏:梁)나라 혜왕(惠王) 때의 일이다. 태자와 중신 방총이 볼모[人質]로서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으로 가게 되었다. 출발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방총이 심각한 얼굴로 혜왕에게 이렇게 물었다. "전하, 지금 누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전하께서는 믿으시겠나이까?" "누가 그런 말을 믿겠소." "하오면, 두 사람이 똑같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어찌하시겠나이까?" "역시 믿지 않을 것이오." "만약,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그땐 믿으시겠나이까? " "그땐 믿을 것이오." "전하,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한 사실이옵니다. 하오나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되옵니다. 신은 이제 한단으로 가게 되었사온데, 한단은 위나라에서 저잣거리보다 억만 배나 멀리 떨어져 있사옵니다. 게다가 신이 떠난 뒤 신에 대해서 참언(讒言)을 하는 자가 세 사람만은 아닐 것이옵니다. 전하, 바라옵건대 그들의 헛된 말을 귀담아 듣지 마시오소서." "염려 마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과인은 두 눈으로 본 것이 아니면 믿지 않을 것이오." 그런데 방총이 한단으로 떠나자마자 혜왕에게 참언을 하는 자가 있었다. 수년 후 볼모에서 풀려난 태자는 귀국했으나 혜왕에게 의심을 받은 방총은 끝내 귀국할 수 없었다고 한다.
★ 새옹지마<塞변방 새. 翁늙은이 옹. 之어조사 지. 馬말 마. >
☆겉뜻 :변방에 사는 늙은이의 말. ☆속뜻 : 인생의 길흉화복은 늘 바뀌어 변화가 많음을 이르는 말. ☆유래 : 옛날 중국 북방의 요새(要塞) 근처에 점을 잘 치는 한 노옹(老翁)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이 노옹의 말[馬]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애석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福)이 될는지?" 몇 달이 지난 어느날,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치하(致賀)하자 노옹은 조금도 기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화(禍)가 될는지?" 그런데 어느날,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옹의 아들이 그 오랑캐의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슬픈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날, 오랑캐가 대거 침입해 오자 마을 장정들은 이를 맞아 싸우다가 모두 전사(戰死)했다. 그러나 노옹의 아들만은 절름발이었기 때문에 무사했다. 그러므로 인간세상에서 복(福)이 화(禍)가 되고 화(禍)가 복(福)이 되는 것은 그 변화가 너무 깊어 측량 할 수가 없다.
★속수지례<束묶을 속,脩육포 수,之어조사 지,禮예절 례>
☆겉뜻 ; 묶은 육포의 예절이라는 말 ☆속뜻 ; 스승을 처음 만나 가르침을 청할 때 작은 선물을 함으로써 예절을 갖춘다 는 뜻. ☆유래 ; 《논어》술이(述而)편에 나오는 말이다. 자왈(子曰;공자가 말하기를) 자행속수지이상 오미상무회언(自行束修之以上, 吾未嘗無誨焉;속수 이상의 예를 행한 자에게 내 일찍이 가르쳐주지 않은 바가 없었다.) 속수(束修)는 열 조각의 마른 고기로, 예물 가운데 가장 약소한 것이다. 공자는 모든 가르침은 예(禮)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제자들에게 가장 작은 선물인 속수 이상의 예물을 가지고 오도록 함으로써 제자의 예를 지키도록 하였다. 여기에서 속수지례란 제자가 되기 위하여 스승을 처음 뵈올 때에 드리는 예물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수어지교< 水물 수,魚물고기 어,之어조사 지,交사귈 교>
☆겉뜻:물과 물고기의 사귐. ☆속뜻:임금과 신하 사이의 두터운 교분. 부부의 친밀함. 아주 친밀하여 떨어질 수 없는 사이. ☆유래 유비에게는 관우와 장비와 같은 용장이 있었지만, 천하의 계교를 세울 만한 지략이 뛰어난 모사(謀士)가 없었다. 이러한 때에 제갈공명(諸葛孔明)과 같은 사람을 얻었으므로, 유비의 기쁨은 몹시 컸다. 그리고 제갈공명이 금후에 취해야 할 방침으로, 형주(荊州)와 익주(益州)를 눌러서 그 곳을 근거지로 할 것과 서쪽과 남쪽의 이민족을 어루만져 뒤의 근심을 끊을 것과 내정을 다스려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실리를 올릴 것과, 손권과 결탁하여 조조를 고립시킨 후 시기를 보아 조조를 토벌할 것 등의 천하 평정의 계책을 말하자 유비는 그 계책에 전적으로 찬성하여 그 실현에 힘을 다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유비는 제갈공명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어 두 사람의 교분은 날이 갈수록 친밀해졌다. 그러자 관우나 장비는 불만을 품게 되었다. 새로 들어온 젊은 제갈공명(이 때 공명의 나이는 28세)만 중하게 여기고 자기들은 가볍게 취급받는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이 이리 되자 유비는 관우와 장비 등을 위로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제갈공명을 얻은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 즉 나와 제갈공명은 물고기와 물과 같은 사이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렇게 말하자, 관우와 장비 등은 더 이상 불만을 표시하지 않게 되었다.
★양상군자<梁대들보 양,上위 상,君임금 군,子아들 자>
☆겉뜻 ; 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 ☆속뜻 ; 도둑을 가리키는 말. ☆유래 ; 《후한서(後漢書)》 〈진식전(陳寔傳)〉에 나오는 말이다. 진식은 학식이 뛰어나고 성질이 온화하며 청렴결백하여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그가 태구현(太丘縣)의 현감으로 있을 때 어느날 밤 도둑이 그의 방으로 들어와 천장 들보 위에 웅크리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진식은 곧 의관을 정제하고 아들과 손자들을 불러들여 훈계를 시작하였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기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착하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도 반드시 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아니다. 평소의 잘못된 버릇이 성격으로 변하여 나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저 들보 위의 군자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도둑은 이 말에 깜짝 놀라 얼른 들보 위에서 뛰어내려와 이마를 조아리며 죽여 주십사하고 사죄하였다. 진식은 그를 조용히 타이르고 비단 두 필을 주어 돌려보냈다. 이 일이 알려지자 고을 안에 도둑질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한다.
★여도지죄<餘남을 여.桃복숭아 도.之어조사 지,罪허물 죄.>
☆겉뜻 : '먹다 남은 복숭아를 먹인 죄'란 뜻 ☆속뜻 : 애정과 증오의 변화가 심함의 비유. ☆유래 : 전국 시대, 위(衛)나라에 왕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彌子瑕)란 미동(美童)이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전갈을 받은 미자하는 허락 없이 임금의 수레를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 당시 허락 없이 임금의 수레를 타는 사람은 월형 (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이라는 중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자하의 이야기를 들은 왕은 오히려 효심을 칭찬하고 용서했다. "실로 효자로다. 어미를 위해 월형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 " 또 한 번은 미자하가 왕과 과수원을 거닐다가 복숭아를 따서 한 입 먹어 보더니 아주 달고 맛이 있었다. 그래서 왕에게 바쳤다. 왕은 기뻐하며 말했다. "제가 먹을 것도 잊고 '과인에게 먹이다'니…‥. "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미자하의 자태는 점점 빛을 잃었고 왕의 총애도 엷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하가 처벌을 받게 되자 왕은 지난 일을 상기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놈은 언젠가 몰래 과인의 수레를 탔고, 게다가 '먹다 남은 복숭아 [餘桃]'를 과인에게 먹인 일도 있다. " 이처럼 한 번 애정을 잃으면 이전에 칭찬을 받았던 일도 오히려 화가 되어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관규천 <以 써 이, 管 대롱 관, 窺 엿볼 규, 天 하늘 천>
☆겉뜻 :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다. ☆속뜻 : 좁은 소견으로 사물을 살펴 보았자 그 전체의 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 ☆유래 : 춘추시대 말기의 일이다. 뒷날 동양 의학의 원조(元祖)이자 의성(醫聖)으로도 일컬어지는 편작(扁鵲)이 괵이라는 나라에 갔을 때였다. 마침 병을 앓던 이 나라의 태자가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편작은 궁정의 의사를 찾아 갔다. 태자의 병이 무슨 병인가를 물어보고 현재의 상태를 알아낸 편작은 말했다. "그럼 내가 태자를 소생시켜 보겠습니다." 편작이 팔을 걷고 나서자 궁정의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무책임한 말씀은 삼가시오. 어린애도 그런 말은 곧이듣지 않을게요." 그러자 편작은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하듯 말했다. "당신의 의술 따위는 '대롱으로 하늘을 엿보며(以管窺天)' 좁은 틈새로 무늬를 보는 것과 같소." 잠시 뜸을 들였다가 편작은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내 말을 정 믿지 못하겠다면 다시 한번 태자를 살펴보시오. 그의 귀가 울고 코가 벌름거리는 소리가 들려올게요. 그리고 양쪽 사타구니를 쓰다듬다가 음부에 손이 닿으면 그곳은 아직 따뜻할 것이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진찰해보니 편작이 말한 그대로이자, 궁정의사는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괵나라 임금은 편작에게 매달렸다. 편작이 침을 놓자 태자는 소생했고 치료를 더하자 20일 후에는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편작이 죽은 사람도 소생시킬 수 있다고 말하자 편작은 이렇게 말했다. "죽은 사람을 소생시킨 게 아니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고친 것뿐이오'"
★이포역포 <以써 이暴사나울 포易바꿀 역暴사나울 포>
☆겉뜻 ; 폭력을 폭력으로 다스린다는 뜻 ☆속뜻 ; 정치를 하는데 있어 힘에 의지하는 것을 비유한 말. ☆유래 ; 이포여포란 위정자가 정치를 함에 있어, 힘에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한 고사가 《사기(史記)》 〈백이숙제열전편(伯夷叔齊列傳篇)〉에 실려 있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이다. 왕은 아우 숙제로 하여금 자신의 뒤를 잇게 하였다. 그러나 왕이 죽자 숙제는 백이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백이는 아버지의 명을 따라야 한다고 나라를 떠났으며, 숙제 또한 그 뒤를 따라갔다. 나라에서는 할 수 없이 둘째를 왕으로 삼았다. 이때 백이와 숙제는 서백(西伯) 창(昌)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 의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서백은 이미 죽어 문왕(文王)에 추존되었으며, 그의 아들 무왕(武王)이 아버지의 위패를 수레에 싣고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을 정벌하려 하였다.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이렇게 간(諫)하였다. “부친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바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효라 할 수 있는가? 신하된 자로서 군주를 시해하려는 것을 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무왕의 호위 무사들이 그들을 죽이려 하였으나, 태공이 이들을 의인이라고 하며 돌려보내게 하였다. 무왕이 은을 평정하여 천하가 주(周) 왕실을 종주로 섬겼으나, 백이와 숙제는 그 백성이 되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다. 지조를 지켜 주나라의 양식을 먹으려 하지 않고,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비[薇]를 꺾어 배를 채웠다. 그들은 굶주려 죽기 전에 이런 노래를 지었다. 저 서산에 올라 산중의 고비나 꺾자구나. 포악한 것으로 포악한 것을 다스렸으니, 그 잘못을 알지 못하는구나. 신농(神農), 우(禹), 하(夏)의 시대는 홀연히 지나가고 우리는 장차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아! 이제는 죽음뿐이로다, 쇠잔한 우리의 운명이여! 역사 이전부터 백이와 숙제가 힘의 정치에 대한 부당성을 비판하였지만, 지금도 이런 정치 형태는 여전히 그 힘을 발한다.
★전거후공<前 앞 전, 倨 오만할 거, 後 뒤 후, 恭 공손할 공>
☆겉뜻 ; 이전에는 거만하다가 나중에는 공손하다는 뜻 ☆속뜻 ; 상대편의 입지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상반되는 것을 비유한다. ☆유래 ; 춘추전국시대에 종횡가(縱橫家)로 손꼽히는 소진(蘇秦)이 있었다. 그는 본래 낙양(洛陽) 사람으로 귀곡자(鬼谷子)를 스승으로 섬겼고, 수년 동안 제후들에게 유세하러 다니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하여 결국 실의에 빠진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의 낙향에 아내와 형제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형수는 노골적으로 경멸하며 비웃었다. 소진은 두문불출하고는 마침내 종횡의 이론을 생각했다. 소진은 연(燕)나라와 조(趙)나라로 가서 제(齊), 초(楚), 위(魏), 한(韓)등 6개 나라가 연합하여 막강한 진(秦)나라에 대항하자는 건의를 했다. 결국 그의 견해는 받아들여져 6국은 소진을 승상의 지위까지 맡겨 진나라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소진은 어느 날 북방에 있는 조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옛날 생각이 나서 고향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그가 집에 도착하자, 그의 형제와 아내는 감히 그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곁눈질하며 시중을 들었다. 특히 형수의 태도는 더욱 공손하였다. 소진은 그 모습을 보고 형수에게 물었다. “옛날에는 무척 거만했는데, 지금은 이다지도 공손해지셨습니까?” “이제는 서방님의 지위가 높아 감히........” 이 말을 듣고 난 소진은 한탄하며 이렇게 되뇌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소진인데, 부귀할 때는 남들이 두려워하고 빈천할 때는 멸시하니, 부와 명예가 이렇게도 대단하던가!” 우리 주변에도 소진의 형수 같은 무리들이 적지 않음을 자주 보게 된다. 특히 권력을 장악하고 있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 추종자들의 그들에 대한 상반된 태도는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면이 많다.
★조령모개 <朝아침 조令법 령暮저녁 모改고칠 개>
☆겉뜻 : 아침에 내린 명령을 저녁에 고친다는 뜻 ☆속뜻 : 일관성이 없이 갈팡질팡함을 이르는 말. ☆유래 : 《사기(史記)》〈평준서(平準書)〉 재정경제사장(財政經濟史章)에는, 전한(前漢) 문제(文帝) 때의 일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흉노(匈奴)가 자주 변방을 침략하여 약탈을 자행하니, 경작하면서 수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자연히 변방에서 수확하는 곡식만으로 충당하기에 식량이 부족하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곡식을 헌납받는 사람들과, 그 곡식을 변방까지 수송할 사람들을 모집하여 벼슬을 주기로 하였다. 그 벼슬의 지위는 대서장(大庶長)까지였다. 이 조치는, 문제와 경제(景帝) 때의 어사대부(御史大夫)였던 조조(晁錯)의 헌책(獻策)을 취한 것이었음을 《한서(漢書)》〈식화지(食貨志)〉에서 밝히고 있다. 조조가 상소한 이 헌책은 후세에 〈논귀속소(論貴粟疏)〉라 불리게 되는데, 여기에 조령모개라는 말이 있다. 조조는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지금 다섯 가족의 농가에서는 부역이 과중하여, 노역(勞役)에 복종하는 사람이 두 사람을 내려가지 않는다. 따라서 경작하여 수확하는 것은 백 묘(畝)가 고작인데, 이 백 묘는 많아야 백 석에 지나지 않는다. 봄에 경작하고 여름철에 풀 뽑고, 가을에 수확하여 겨울에 저장하는 외에, 관청을 수리하고 부역에 불려나가는 등 춘하추동 쉴 날이 없다. 또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을 보내고 맞이하며, 죽은 자를 조문하고 고아들을 받고, 어린이를 기른다. 또한 홍수와 한발의 재해를 당하는 위에 갑자기 세금이나 부역을 당한다 이것은 일정한 때도 정해져 있지 않아, 아침에 영을 내리고 저녁에 고친다(朝令而暮改). 전답이 있는 사람은 반값으로 팔고, 없는 사람은 빚을 내어 10할의 이자를 낸다. 이리하여 농지나 집을 방매(放買)하고, 아들과 손자를 팔아 부채를 갚는 자가 나오게 된다. 여기서 '조령모개'는 '법령에 일관성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청(淸)나라 때의 학자 왕염손(王念孫)은 후한(後漢) 때의 순열(荀悅)이 《한기(漢紀)》에 기록한 대로, '조령이모득(朝令而暮得)’으로 고쳐 써야 한다고 하였다. '조령모득'은 '아침에 법령을 내리고 저녁에 거둔다'는 뜻이다.
★죽마고우<竹 대나무 죽. 馬 말 마. 故 옛 고. 友 벗 우.>
☆겉뜻 ; 어릴 때 같이 죽마(대말)를 타고 놀던 벗이란 뜻. ☆속뜻 ; ① 어렸을 때의 벗. (소꼽동무) ② 어렸을 때 친하게 사귄 사이. ③ 어렸을 때부터 오랜 친구. ☆유래 ; 진(晉 : 東晉)나라 12대 황제인 간문제(簡文帝 : 371-372) 때의 일이다. 촉(蜀) 땅을 평정하고 돌아온 환온(桓溫)의 세력이 날로 커지자 간문제는 환온을 견제하기 위해 은호(殷浩)라는 은사(隱士)를 건무장군(建武將軍) 양주자사(楊州刺史)에 임명했다. 그는 환온의 어릴 때 친구로서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인재였다. 은호가 벼슬길에 나아가는 그날부터 두 사람은 정적(政敵)이 되어 반목(反目)했다. 왕희지(王羲之)가 화해시키려고 했으나 은호가 듣지 않았다. 그 무렵, 오호 십육국(五胡十六國) 중 하나인 후조(後趙)의 왕 석계룡(石季龍) 이 죽고 호족(胡族)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자 진나라에서는 이 기회에 중원 땅을 회복하기 위해 은호를 중원장군에 임명했다. 은호는 군사를 이끌고 출병했으나 도중에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결국 대패하고 돌아왔다. 환온은 기다렸다는 듯이 은호를 규 탄하는 상소(上疏)를 올려 그를 변방으로 귀양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환온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은호는 나와 '어릴 때 같이 죽마를 타고 놀던 친구[竹馬故友]'였지만 내가 죽마를 버리면 은호가 늘 가져가곤 했지. 그러니 그가 내 밑에서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환온이 끝까지 용서해 주지 않음으로 해서 은호는 결국 변방의 귀양지에서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지어지앙<池못 지,魚물고기 어,之어조사 지,殃재앙 앙>
☆겉뜻 ; 연못 속 물고기의 재앙이라는 뜻 ☆속뜻 ; 뜻밖의 횡액을 당함을 비유하는 말. ☆유래 ; 《여씨춘추(呂氏春秋)》〈필기편(必己篇)〉에 전한다. 춘추전국시대 송(宋)나라에 사마(司馬) 벼슬의 환(桓)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매우 진귀한 보석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죄를 지었다. 처벌을 받을 것 같자, 보석을 가지고 도망쳤다. 그의 보석 이야기를 들은 왕이 욕심이 생겨 수중에 넣고 싶어하였다. 왕은 측근의 환관에게 속히 처리할 것을 명하였다. 환관이 어렵게 환을 찾아내자, "그 보석은 내가 도망칠 때 궁궐 앞 연못에 던져버렸다"라고 하였다. 환관이 그대로 보고하자, 왕은 당장 그물로 연못의 바닥을 훑게 하였다. 보석이 나오지 않자 이번에는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었다. 그러나 보석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물을 모두 퍼내는 바람에 애꿎은 물고기들만 말라 죽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보석과 물고기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물고기만 영문도 모른 채 떼죽음당했을 뿐이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초(楚)나라의 원숭이와 성문의 화재 이야기가 있다. 초나라 왕궁에서 원숭이를 기르다가 놓쳤다. 원숭이를 잡기 위해 달아난 산에다 불을 놓아 나무를 모두 태워버렸다. 또 초나라 왕궁 성문에 불이 났다. 사람들이 성문 옆의 연못에서 물을 퍼내어 불을 껐다. 이 때문에 연못의 물이 말라버려 물고기들이 다 죽었다. 모두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남 때문에 뜻밖의 재앙을 당한 경우이다. 우리 속담의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맞는다"는 것과 통할 법한 이야기이다.
★창해일속 <滄푸를 창,海바다 해,一한 일,粟조 속>
☆겉뜻 ; 푸른 바다에 좁쌀 한 톨이라는 뜻 ☆속뜻 ;아주 작고 보잘것없음을 비유한 말. ☆유래 ; 소동파(蘇東坡)가 《적벽부(赤壁賦)》에서 처음 이 표현을 사용하였다. 사람들은 흔히 이 적벽부를 천하 명문(名文)의 하나로 꼽는다. 두 편으로 된 이 부는 소동파가 황주(黃州)로 귀양가 있을 때 지은 것으로, 인간사에 미련을 두지 않으려는 자신의 근황을 신선(神仙)에 기탁하여 나타내었다. 음력 7월 중순의 어느 날, 소동파는 벗과 함께 적벽을 유람하였다. 때마침 날씨는 맑고 바람마저 잔잔하였다. 달빛은 일렁이는 물결에 부서졌다 모이고 하여, 인간의 감정을 고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러한 적벽의 주변 풍광은 마치 선경(仙境)과도 같았다. 서로 술잔을 주고받으며 시를 읊조리던 중에, 소동파는 문득 그 옛날 조조(曹操)와 주유(周瑜)가 여기서 천하를 두고 한판 승부를 펼쳤던 적벽의 싸움[赤壁大戰]을 떠올렸다. 자신도 모르게 소동파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달이 밝고 별은 드문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날아간다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조조)의 시(詩)가 아닌가? 서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이 서로 엉겨 울창하다. 이는 조맹덕이 주랑(周郞: 주유)에게 곤경에 처했던 곳이 아닌가. 그가 형주(荊州)를 격파하고 강릉(江陵)으로 내려와 물결을 따라 동으로 나아갈 때, 전함은 천 리에 뻗어 있고 깃발이 하늘을 가렸다. 술을 걸러 강에 임하고 창을 비껴 들고 시를 읊노니, 진실로 한 세상의 영웅이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하물며 그대와 나는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 하면서, 물고기, 새우들과 짝하고, 고라니, 사슴들과 벗하고 있다. 작은 배를 타고 술바가지와 술동이를 들어 서로 권하니, 우리 인생은 천지간에 하루살이처럼 짧고, 우리의 몸은 푸른 바다에 한 톨 좁쌀[滄海一粟]과도 같구나. 정말, 너무나 짧구나! 어찌 장강(長江)처럼 다함이 없는가? 여기서 창해일속이라는 말이 나왔다. 무한한 우주 속에 미미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무상함이 깔려 있다.
★천고마비<天 하늘 천. 高 높을 고. 馬 말 마. 肥 살찔 비.>
☆겉뜻 ;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 ☆속뜻 ; ① 하늘이 맑고 오곡 백과(五穀百果)가 무르익는 가을을 형용하는 말. ② (흉노에게 있어, 전하여 오늘날에는 누구에게나) 활약(동) 하기 좋은 계 절을 이르는 말. ☆유래 ; 천고마비(天高馬肥)란 말은 본래 흉노족(匈奴族)의 침입을 경계하고자 나온 말이다. 은(殷)나라 초기에 중국 북방에서 일어난 흉노는 주(周), 진(秦), 한(漢)의 삼왕조(三王朝)를 거쳐 육조(六朝)에 이르는 근 2000년 동안 북방 변경의 농경 지대를 끊임없이 침범 약탈해 온 표한(剽悍)한 유목 민족이었다. 그래서 고대 중국의 군주들은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늘 고심했는 데 전국시대에는 연(燕), 조(趙), 진(秦)나라의 북방 변경에 성벽을 쌓았고,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은 기존의 성벽을 수축(修築)하는 한편, 증축 연결(增築連結)하여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완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흉노의 침입은 끊이지 않았다. 북방의 초원에서 방목과 수렵으로 살아 가는 흉노에게 우선 초원이 얼어붙는 긴 겨울을 살아야 할 양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흉노족이 사는 곳은 중국의 북쪽에 위치해 있고 광활한 초원에서 방목과 수렵을 업으로 하고 있다. 봄부터 여름까지 풀을 먹은 말은 가을에는 토실토실하게 살이 찐다. 그러나 겨울이 되면 그들은 식량을 찾아 살찐 말을 타고 중국 변방을 쳐들어 와 곡식이며 가축을 노략질해 갔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병사들은 활줄을 갈아 매고 활촉과 칼을 벼르며 경계를 강화시켰다. 북방 변경의 중국인들은 '하늘이 높고 말이 살지는[天高馬肥]' 가을만 되면 언제 흉노가 쳐들어올지 몰라 전전긍긍(戰戰兢兢)했다고 한다. 또한 두보(杜甫)의 조부 두심언(杜審言)이 흉노족을 막기 위해 변방으로 떠나는 친구 소미도(蘇味道)에게 "맑은 눈발이 아름답게 별 떨어지듯 하고, 가을 하늘은 드높고 변방의 말은 살이 찌네. (雪淨妖星落하고, 秋高塞馬肥 하네.)" 라고 한 오언율시(五言律詩)의 한편의 시를 적어 위로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杜審言의 詩)
★청운지지 <靑푸를 청,雲구름 운,之어조사 지,志뜻 지>
☆겉뜻 ; '청운의 뜻' ☆속뜻 ; 입신출세하고 싶은 마음 또는 고결하여 속세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유래 ; 일반적인 의미는 입신출세하려는 대망, 즉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자 하는 뜻으로 '능운지지(陵雲之志)'와 같은 말이다. 다음은 당나라 때의 문인 장구령(張九齡)의 '거울을 비춰 백발을 보다'라는 뜻의 《조경견백발(照鏡見白髮)》이라는 오언절구의 시이다. 옛날 청운의 뜻을 품고 벼슬길에 나아갔는데[宿昔靑雲志] 다 늙은 지금에 와서 차질을 빚게 되었네[蹉白髮年] 누가 알리요, 밝은 거울 속의 그림자와[唯知明鏡裏] 그것을 보고 있는 내가 서로 측은히 여기고 있는 것을[形影自相憐] 위의 시에서 '청운지(靑雲志)'는 바로 입신 출세하여 높은 벼슬자리에 올라가고자 하는 마음을 나타낸 말이다. 이 시를 풀이하면, '그 옛날 푸른 꿈을 안고 재상이 되어 나라를 위해 힘을 다했으나, 뜻대로 되지 못하고 늙은 나이에 미끄러져 물러나고 말았다. 거울 속에 비친 백발을 보며 서글퍼하는 마음을 그 누가 알아주리오'라는 내용이다. 장구령은 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재상으로 문재(文才)가 뛰어나고 어진 재상이었으나, 이임보(李林甫)에게 미움을 받아 벼슬길에서 파직되어 초야에서 여생을 보낸 인물이다. 그가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나며 쓸쓸한 감회를 읊은 것이 바로 위의 시이다. 한편 '청운지지'는 높이 세상 밖에 초탈하여 속세를 떠나려는 마음인 '능운지지(凌雲之志)'와 같은 뜻으로도 쓰인다.
★칠종칠금 <七일곱칠,縱놓을 종,七일곱 칠,擒사로잡을 금>
☆겉뜻 ;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풀어준다는 뜻 ☆속뜻 ; 상대를 마음대로 다룸을 비유하거나 인내를 가지고 상대가 숙여 들어오기 를 기다린다는 말.
☆유래; 제갈량(諸葛亮)이 맹획(孟獲)을 사로잡은 고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마음대로 잡았다 놓아주었다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칠금(七擒)'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삼국지(三國志)》에 다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제1대 황제인 유비(劉備)는 제갈 량에게 나랏일을 맡기고 세상을 떠났다. 제갈량은 후주(後主)인 유선(劉禪)을 보필하게 되었는데, 그때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위(魏)나라를 공략하여 생전의 유비의 뜻을 받들어야 했던 제갈 량은 먼저 내란부터 수습해야 했다. 유선이 아직 어리고 철이 없어 군대를 동원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한 제갈 량은 적진에 유언비어를 퍼뜨려 이간책을 썼다. 과연 반란군은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켜 서로 살육을 일삼았다. 그 결과 마지막으로 등장한 반란군이 바로 맹획이라는 장수였다. 맹획이 반기를 들자 제갈량은 노강 깊숙이 들어가 그를 생포했다. 제갈량의 계략에 걸려들어 생포된 맹획은 분함을 이기지 못했다. 맹획을 생포한 제갈량은 오랑캐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그를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이에 대해 촉한의 무장인 마속(馬謖)도 '용병의 도리는 최상이 민심을 공략하는 것으로, 군사전은 하책일 뿐 심리전을 펴 적의 마음을 정복하라'고 했다. 제갈 량은 오랑캐의 마음을 사로잡고 나면 그들의 인적, 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북벌(北伐)도 한결 용이할 것이라 생각하여 맹획을 풀어주었다. 고향에 돌아온 맹획은 전열을 재정비하여 또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제갈량은 자신의 지략을 이용하여 맹획을 다시 사로잡았지만 또 풀어주었다. 이렇게 하기를 일곱 번, 마침내 맹획은 제갈량에게 마음속으로 복종하여 부하 되기를 자청했다. 여기서 '칠종칠금'이란 말이 나왔으며, 오늘날 이 말은 '상대편을 마음대로 요리한다'는 뜻으로 비유되어 사용된다.
★탐천지공<貪 탐할 탐.天 하늘 천.之 어조사 지.功 공훈 공.>
☆겉뜻 ; 하늘의 공을 탐내다. ☆속뜻 ; 남의 공로도 자기 것으로 하는, 남의 공을 도용(盜用) 함을 이름. ☆유래 ; 춘추 시대 진(晉)나라 문공(文公)은 오랜 유랑 끝에 진(秦)나라의 원조로 귀국하여 즉위한 후 논공행상했다. 망명을 함께 한 자나 자금을 제공한 자에게는 토지를 내리고 가봉(加封)이 있었으며, 귀국을 환영한 자로부터 일반인에게까지 상이 미쳤으므로 모두가 기뻐했다. 문공은 행여 빠진 자가 있을까 염려해 해당자는 신고하라고 포고했다. 망명을 함께 한 개자추(介子推)라는 충신이 빠져 있어서, 그 이웃 사람이 포고를 보고 개자추에게 고했다. 개자추는 문공이 귀국한 후에 병이 나서 집에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공을 자랑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겨, 벼슬을 하려 하지 않고 모친을 지키며 청빈에 만족하고 있었다. 이웃 사람의 권유에 개자추가 웃으며 상대하지 않자, 그의 모친이 말했다. "너는 굶주린 문공에게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바칠 만큼의 공로가 있었는데, 왜?" 개자추는 웃으며 말했다. "뭘 바라고 충의를 다한 건 아니니까요." 이웃 사람은 기가 막혔다. "신고만 하면 이런 가난은 면할 텐데." "헌공(獻公)의 9공자 중 문공님은 가장 현명한 분이시니 오늘날의 즉위는 당연하다. 그런데 다들 그것을 모두 자신의 공로인 듯이 말하고 있다. 볼꼴사나운 일이다. 군주에 대해 탐천지공(貪天之功)을 다투는 것은 도둑질을 하는 것보다 더욱 수치스러운 행위다. 차라리 짚신을 삼는 편이 훨씬 즐겁다." 모친도 개자추의 마음을 알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차라리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겠느냐?" 그날 밤 개자추는 지체없이 어머니를 업고, 때마침 환하게 비치는 달빛을 의지하여 면산(綿山)으로 깊숙이 들어간 후로는 나오지 않았다. 그것을 안 문공은 개자추를 찾아 온 장안을 뒤져 그가 산속에 숨어 있는 것을 알고 나올 것을 권유했으나 말을 듣지 않자, 나오게 하려고 산까지 태웠다. 개자추는 그래도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마침내 불에 타 죽었다. 문공은 슬피 여겨 개자추가 불에 타 죽은 날을 기억하여 제사 지내고 그날 만큼은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게 했다고 한다. 바로 한식(寒食)의 유래다.
★태산북두 <泰클 태,山뫼 산,北북녘 북,斗별이름 두>
☆겉뜻 ; 태산과 북두칠성이라는 뜻 ☆속뜻 ;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뛰어난 인물을 비유하는 말 또는 학문이나 예술 분야의 권위자나 대가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유래 ; 한유(韓愈)는 중국 당나라 때의 문학자이자 사상가로, 이백(李白), 두보(杜甫), 백거이(白居易)와 함께 당나라의 대표적 4대 시인의 한 사람이며,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꼽히는 중국 제일의 문장가이다. 그는 25세 때 진사과에 급제한 뒤 벼슬이 이부상서(吏部尙書)까지 되었으나 황제가 관여하는 불사(佛事)를 극간하다가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었다. 천성이 강직했던 한유는 그후에도 여러 차례 좌천과 파직을 당하기도 했는데, 만년에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낸 뒤 57세의 나이로 죽었다. 한유는 순탄하지 못했던 벼슬살이와는 달리 학문과 사상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친구인 유종원 등과 고문운동을 제창하여, 고문이 송대 이후 중국 산문 문체의 표준이 되게 했으며, 그의 문장은 그 모범으로 알려지는 등 후세에 영향을 주었다. 사상 분야에서는 도교와 불교를 배격하고 유가의 사상을 존중하여 공자 이래의 유학을 왕성하게 하는 데에 힘써 송대 이후의 도학(道學)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 결과 후학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게 되었다.
★타면자건<唾침 타,面낯 면,自스스로 자,乾마를 건>
☆겉뜻 ;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그것이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 ☆속뜻 ; 처세에는 인내가 필요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유래 ; 이 말은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것으로, 남이 나의 낯에다 침을 뱉을 때 이를 바로 닦으면 그 사람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되므로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이다. 당(唐)나라의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중국사상 유일한 여제(女帝)로서 약 15년간 전국을 지배하였다. 측천무후는 고종이 죽자, 자신의 아들 중종(中宗)과 예종(睿宗)을 차례로 즉위시키고 정권을 독차지하여 독재 권력을 휘둘렀다. 자신의 권세를 유지하기 위하여 탄압책을 쓰는 한편, 유능한 신흥 관리를 많이 등용하고 명신을 적절히 등용하여 정치를 담당시켰기 때문에 천하는 그런 대로 태평했다. 그 무렵, 측천무후의 유능한 신하 중에 누사덕(婁師德)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성품이 온후하고 관인(寬仁)하여, 아무리 무례한 일을 당해도 그 자세에 흔들림이 없이 항상 똑같았다. 하루는 그의 아우가 대주자사(代州刺史)로 임명되어 부임하려고 할 때였다. 그는 동생을 불러 "우리 형제가 다같이 출세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만큼 남의 시샘도 크다고 보면 틀림이 없을 거다. 그렇다면 그러한 시샘을 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처신하면 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동생이 "비록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결코 상관하거나 화내지 않고 잠자코 닦겠습니다. 만사를 이런 식으로 사람을 응대하여 결코 형님에게 걱정이나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동생의 대답을 듣고 누사덕은 다음과 같이 훈계했다. "내가 염려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네게 침을 뱉는다면 그것은 네게 뭔가 크게 화가 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네가 바로 그 자리에서 침을 닦아버린다면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게 되어 그는 틀림없이 더 크게 화를 내게 될 것이다. 침 같은 것은 닦지 않아도 그냥 두면 자연히 마르게 되니, 그런 때는 웃으며 그냥 침을 받아 두는 게 제일이다."
★투편단류<投던질 투,鞭채찍 편,斷끊을 단,流흐를 류>
☆겉뜻 ; 채찍을 던져 강의 흐름을 막는다는 뜻 ☆속뜻 ; 병력이 많고 강대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유래 ; 《진서(晉書)》의 〈부견재기〉에 나오는 말로, ‘강을 건너는 병사의 수가 많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전진(前秦)의 제3대 왕인 부견은 전연(前燕)과 전량(前凉)을 항복시켜 강북을 통일하였다. 부견은 이 기세를 몰아 남방의 동진(東晉)을 공략해 천하를 통일하려고 융졸(戎卒) 60만, 기병 27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장안(長安)을 출발했다. 그러나 신하들 중 권익은 ‘동진에는 현신(賢臣)이 많다’는 이유로, 또 석월(石越)은 ‘동진은 양쯔강의 험란함에 의거하고 있고 그 조정에 혼란의 증후도 없으므로 군사를 움직이는 것은 불리하다’며 출병을 반대했다. 그러자 사기가 충천함만을 믿고 부견은 “우리 대군의 채찍으로도 강의 흐름을 막을 수 있다[投鞭斷流].”라고 호언장담하고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부견은 사현(謝玄)이 이끄는 동진군에게 비수(水)에서 크게 패해 뤄양[洛陽]으로 도망쳤다. 결국 부견은 부하에게 살해되고, 전진은 서진(西秦)에 의해 멸망하였다. 전쟁이란 단지 군사의 수가 많다고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주는 이 ‘비수(페이수이)의 싸움’에서 ‘풍성학려(風聲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하였다.
★쾌도난마<快 쾌할 쾌, 刀 칼 도, 亂 어지러울 란, 麻 삼 마.>
☆겉뜻 ; 날랜 칼로 복잡하게 헝클어진 삼을 베다. ☆속뜻 ; 어지럽게 뒤얽힌 일이나 정황 (情況)을 재빠르고 명쾌하게 처리하는 것 ☆유래 ; 남북조(南北朝)시대 북제(北齊)의 창시자 고환(高歡)은 선비족화(鮮卑族化)한 한족(漢族)으로 그의 부하도 대부분 북방 변경지대의 선비족이었다. 선비족의 군사는 난폭했지만 전투에는 용감했기 때문에 고환은 이러한 선비족 군사의 힘을 배경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고환은 아들을 여럿 두고 있었는데 하루는 이 아들들의 재주를 시험해 보고 싶어 한 자리에 불러들였다. 그는 아들들에게 뒤얽힌 삼실 한 뭉치씩을 나눠주고 추려내 보도록 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한 올 한 올 뽑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양(洋)이라는 아들은 달랐다. 그는 잘 드는 칼 한 자루를 들고 와서는 헝클어진 삼실을 싹둑 잘라버리고는 득의(得意)에 찬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 아버지 앞에 나아간 고양은 " 어지러운 것은 베어버려야 합니다(亂者須斬·난자수참)"고 말했다.
★파부침선<破 깨트릴 파,釜 가마솥 부,沈 잠길 침,船 배 선>
☆겉뜻 ; 밥 짓는 가마솥을 부수고 돌아갈 배도 가라앉히다. ☆속뜻 ; 결사의 각오로 싸움터에 나서거나 최후의 결단을 내림을 비유하는 말. ☆유래 ; 진(秦)나라가 말기 증세를 보이자 각지에서 반기를 들고 일어나는가 하면 제후들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초나라 때부터 장군의 전통을 이어온 항우(項羽)와 그의 삼촌 항량(項梁)도 반기를 들었다. 호응하는 사람들로 세력을 크게 불린 항량과 항우는 곳곳에서 진나라 군대를 무찔렀다. 그러나 봉기군은 정도(定陶)에서 진나라 장군 장한에게 크게 패해 봉기군 총수 항량도 목숨을 잃었다. 장한은 승세를 몰아 조나라의 수도였던 한단을 격파하고 조왕이 있는 거록(鋸鹿)을 포위했다. 조왕의 구원 요청을 받은 초왕은 송의(宋義)를 상장, 항우를 차장으로 앉혀 조나라를 구원하게 했다. 송의는 군대를 안양(安陽)까지 진격시키고는 40여일이나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작전상 그렇게 했지만 몇번이나 진군을 재촉해도 송의가 듣지 않아 항우는 송의의 목을 베었다. 상장이 된 항우는 전군을 이끌고 황하(黃河)를 건넜다. 전군이 강을 건너자 항우는 '타고 온 배를 전부 가라앉히고 가마솥과 시루를 부수고(皆沈船破釜甑·개침선 파부증)' 진영을 불태운 뒤 사흘분 군량미만 지급함으로써 결사적으로 싸울 것을 지시했다. 과연 전장병은 결사의 각오로 싸웠다. 이 싸움에서 항우군은 일당백의 용맹을 떨쳐 조왕을 구원하러 온 다른 제후들의 군사들은 그저 입을 딱 벌리고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싸움이 끝나자 제후의 장군들이 항우의 진영에 모였는데 모두 머리를 숙이고 무릎걸음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이 싸움으로 반진(反秦)연합군 가운데서 항우는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파죽지세<깨뜨릴 파. 竹 대나무 죽. 之 갈 지. 勢 기세 세.>
☆겉뜻 ;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라는 뜻. ☆속뜻 ;① 맹렬한 기세. ② 세력이 강대하여 적대하는 자가 없음의 비유. ③ 무인지경을 가듯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쳐들어 가는 당당한 기세. ☆유래 ; 위(魏)나라의 권신(權臣) 사마염(司馬炎)은 원제(元帝)를 폐한 뒤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무제(武帝:265-290)라 일컫고, 국호(國號)를 진(晉)이라고 했다. 이리하여 천하는 3국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오(吳)나라와 진(晉)나라로 나뉘어 대립하게 되었다. 이윽고 무제는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 두예(杜預)에게 출병을 명했다. 이듬해(280년) 2월, 무창(武昌)을 점령한 두예는 휘하 장수들과 오나라를 일격에 공략할 마지막 작전 회의를 열었다. 이 때 한 장수가 이렇게 건의했다. "지금 당장 오나라의 도읍을 치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곧 잦은 봄비로 강물은 범람할 것이고, 또 언제 전염병이 발생할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단 철군했다가 겨울에 다시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에 찬성하는 장수들도 많았으나 두예는 단호히 말했다. "그건 안 될 말이오. 지금 아군의 사기는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破竹之勢]'요, 대나무란 처음 두 세 마디만 쪼개면 그 다음부터는 칼날이 닿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지는 법인데, 어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버린단 말이오." 두예는 곧바로 휘하의 전군을 휘몰아 오나라의 도읍 건읍(建業 : 南京]으로 쇄도(殺到) 하여 단숨에 공략했다. 이어 오왕(吳王) 손호(孫晧)가 항복함에 따라 마침내 진(晉)나라는 삼국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천하를 통일했다. "옛날에 악의(惡毅)는 제서(齊西)의 한 번 싸음에서 승리하여, 강한 제(齊) 나라를 합쳤다. 지금 아군은 위세를 이미 떨치고 있다. 비유하면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다. 몇 마디를 쪼갠 다음에는 다 칼날을 맞아 쪼개어질 것이니, 다시 손을 댈 곳이 없다."
★포호빙하<暴사나울 포,虎범 호,馮탈 빙,河물 하>
☆겉뜻 ; 범을 맨손으로 때려잡고 황허강[黃河]을 걸어서 건넌다는 뜻 ☆속뜻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모한 용기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유래 ; 《논어(論語)》의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말로, '포호빙하지용(暴虎馮河之勇)'과 같은 뜻이다. 공자는 군자(君子)란 마음에 어떤 집착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자기를 알아주는 자에게 등용되면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고, 등용되지 않으면 자신의 자취를 감출 뿐이라고 생각했다. 공자는 이처럼 집착함이 없이 무심히 살 수 있는 사람은 자신과 안회(顔回:顔淵)뿐이라고 생각하였다. 하루는 공자가 안회에게 "권력 있는 자가 써 주면 행하고 버리면 물러나 마음 속에 감출 수 있는 이는 나와 너 두 사람뿐일 것 같구나"라고 말했다. 이때 곁에서 듣고 있던 자로(子路)는 자신을 제쳐두고 한참 후배인 안회를 인정하는 스승의 말에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도 인정받고 싶은 욕심에 "만약 선생님께서 삼군(三軍)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더불어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무용(武勇)에 관한 한 자신 있는 자로는 은근히 기대하며 공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공자는 자로의 기대와는 달리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맨손으로 범을 잡으려 하고 맨발로 황허강을 건너려다가 죽어도 후회함이 없는 자와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일에 임하여 두려운 생각을 가지고 즐겨 도모하여 일을 성공시키는 사람과 함께 할 것이다[暴虎馮河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포호빙하 사이무회자 오불여야 필야임사이구 호모이성자야)]." 공자의 이 대답은 자로의 경솔한 태도와 만용(蠻勇)을 경계하기 위한 것으로, 제자에 대한 깊은 배려가 들어 있다.
★풍수지탄<風바람 풍,樹나무 수,之 어조사 지,嘆 탄식할탄.>
☆겉뜻 ; 바람과 나무의 탄식이란 말 ☆속뜻 ; 효도를 다 하지 못한 자식의 슬픔 ☆유래 ; '나무는 조용하고자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수욕정이풍부지 樹欲靜而風不止)'에서 나온 말로 부모가 살아 있을 때 효도하지 않으면 뒤에 한탄하게 된다는 말이다. 공자가 자기의 뜻을 펴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돌고 있을 때였다. 그날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몹시 슬피 우는 소리가 공자의 귀에 들려왔다. 울음소리를 따라가 보니 곡성의 장본인은 고어(皐魚)라는 사람이었다. 공자가 우는 까닭을 물어보았다. 울음을 그친 고어가 입을 열었다. "저에게는 세가지 한(恨)이 되는 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공부를 한답시고 집을 떠났다가 고향에 돌아가보니 부모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둘째는 저의 경륜을 받아들이려는 군주를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셋째는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친구와 사이가 멀어진 것입니다." 고어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리 바람이 조용히 있고 싶어도 불어온 바람이 멎지 않으니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樹欲靜而風不止). 마찬가지로 자식이 효도를 다하려고 해도 그때까지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子欲養而親不待). 돌아가시고 나면 다시는 뵙지 못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저는 이제 이대로 서서 말라 죽으려고 합니다." 고어의 말이 끝나자 공자는 제자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 이 말을 명심해 두어라. 훈계로 삼을 만하지 않은가" 이날 충격과 함께 깊은 감명을 받은 공자 제자 중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를 섬긴 사람이 열세명이나 되었다.
★하로동선< 夏 여름 하, 爐 화로 로, 冬 겨울 동, 扇 부채 선>
☆겉뜻 ;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 ☆속뜻 ; 곧 격이나 철에 맞지 않거나 쓸데 없는 사물을 비유하는 말. ☆유래 ; 후한 시대의 학자 왕충(王充)이 쓴 논형(論衡)에 이런 대목이 보인다. "쓸모 없는 재능을 내세우고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의견을 내놓는 것은 여름에 화로를 권하고 겨울에 부채를 내미는 것과 같다" (作無益之能 納無補之說 (獨如以夏進爐以冬奏扇 亦徒耳) 겨울의 화로와 여름의 부채는 유용하고 환영 받는 물건이지만 겨울의 부채와 여름의 화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무용지물인 것 같다. 그러나 여름의 화로라 하더라도 그것으로 젖은 것을 말릴 수도 있으며 겨울의 부채라 하더라도 그것을 부침으로써 꺼져가는 불을 살려서 활활 타게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좀 더 비약하면 아무 쓸모 없이 보이는 것이 때로는 어느 것보다 더 유용하게 쓰이는 이른바 장자의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無用之用)'의 철학에도 생각이 미친다. 장자는 '사람들은 모두 유용(有用)의 쓰임을 알지만 무용(無用)의 쓰임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버린 돌이 주춧돌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못쓰겠다고 단념하고 내버린 것이 나중에 중용(重用)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범속한 인간들의 눈에 무용으로 보이는 것이 도리어 대용(大用 크게 쓰임)으로 쓰일 수도 있다.
★혜전탈우<蹊 지름길 혜, 田 밭 전, 奪 빼앗을 탈, 牛 소 우>
☆겉뜻 ; 남의 소가 내 밭을 짓밟았다고 그 소를 빼앗다. ☆속뜻 ; 가벼운 죄에 대한 처벌이 혹독하다는 뜻 ☆유래 ; 춘추시대 진(陳)나라의 대부 하징서(夏徵舒)가 자기 집에 놀러와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임금 영공(靈公)을 시해(弑害)했다. 이 소식을 들은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군사를 일으켜 진(陳)나라의 수도를 공략하고 하징서를 죽임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장왕은 내친 김에 진나라를 초나라의 한 고을로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장왕이 우쭐해 있을 때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있던 대부 신숙시 (申叔時)가 돌아왔다. 그가 장왕에게 업무 보고만 하고는 그대로 물러나려고 하자 장왕은 불쾌한 표정으로 불러 세우고는 말했다. "하징서가 무도하게도 그 임금을 시해했기 때문에 과인이 쳐들어가 그를 죽였다. 제후(諸侯)와 현공(縣公)들이 모두 축하해주는데 그대만 아무 말이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신숙시의 대답은 이랬다. "임금을 시해한 죄는 물론 크지요. 그를 처단하신 전하의 의리는 대단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소가 내 밭을 짓밟았다고 해서 그 소를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남의 소가 무단히 내 밭을 짓밟았다면 잘못된 일이지요. 그렇다고 남의 소를 빼앗는다면 지나친 처벌이 되지 않겠습니까. 제후들이 전하를 칭송하는 것은 죄지은 자를 징벌했기 때문입니다. 진나라를 이 나라의 한 고을로 만든 것은 남의 부(富)를 탐낸 것입니다. 죄 있는 자를 징벌하면서 남의 땅까지 탐낸다면 이게 옳은 일이 되겠습니까?" 장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는 말이야. 과인의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군. 지금이라도 돌려주면 되지 않겠는가." 그 신하에 그 임금. 장왕은 빼앗은 진(陳)나라를 즉각 원상 회복시켜 주었다.
★호가호위 <狐 여우 호. 假 거짓 가. 虎 범 호. 威 위엄 위>
☆겉뜻 ;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리다. ☆속뜻 ;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림의 비유. ☆유래 ; 전국시대인 기원전 4세기 초엽, 초(楚)나라 선왕(宣王) 때의 일이다. 어느날 선왕은 위(魏:梁)나라에서 사신으로 왔다가 그의 신하가 된 강을(江乙) 에게 물었다. "위나라를 비롯한 북방 제국(諸國)이 우리 재상 소해휼(昭奚恤)을 두려워 하고 있다는데 그게 사실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북방 제국이 어찌 일개 재상에 불과한 소해휼 따위를 두려워하겠습니까. 전하, 혹 '호가호위(狐假虎威)'란 말을 알고 계십니까?" "모르오." "그러면 들어 보십시오. 『어느날 호랑이한테 잡아먹히게 된 여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나를 잡아먹으면 너는 나를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로 정하신 천제(天帝) 의 명을 어기는 것이 되어 천벌을 받게 된다. 만약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당장 내 뒤를 따라 와 보라구. 나를 보고 달아나지 않는 짐승은 단 한 마리도 없을 테니까.' 그래서 호랑이는 여우를 따라가 보았더니 과연 여우의 말대로 만나는 짐승마다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달아나는 것 이었습니다. 사실 짐승들을 달아나게 한 것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었는데도 호랑이 자신은 그걸 전혀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북방 제국이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은 소해휼이 아니라 그 배후(背後)에 있는 초(楚)나라의 군세(軍勢), 즉 전하의 강병(强兵) 입니다." 이처럼 강을이 소해휼을 폄(貶)하는 이유는 아부(阿附)로써 영신(?臣)이 된 강을에게 있어 왕족이자 명재상인 소해휼은 눈엣가시였기 때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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