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인 전통은 한 민족의 살아 있는 생활사이다. 그리고 전통문화는 그 민족의 살아 있는 얼굴이다. 다시 말해 전통문화를 통해 그 민족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의 양태 및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전통문화가 없는 민족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부평초와 다를 바 없다.
전통문화야말로 한 민족 전체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힘인 동시에 공동운명체임을 보장하는 확실한 근거이다. 민족의 정체성은 전통문화를 통해 확립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을 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문화가 유입되면서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전통문화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한층 심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민족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되고 그 미래 또한 불안하기 마련이다.
옥전 강지주는 전통회화로 일관해왔다. 서구미학의 유입으로 재료 및 표현양식이 다양화하는 상황에서도 전래의 방식을 고수해오고 있다. 그것은 오직 전통회화에 대한 확고한 인식 및 작가적인 신념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소치 허 유, 의재 허백련으로 이어지는 남화의 화풍을 이어가는 일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자신의 고향이기도 하며 남화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진도 출신으로서의 남다른 사명감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소치와 의재의 화풍을 그대로 좇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남화의 전통적인 화풍을 이어가는 한편 그 속에서 개별적인 형식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남화의 전통을 잇는 길은 화풍의 답습이 아니라, 정신의 계승에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물론 그 정신의 맥을 짚어내기 위해서는 배우는 과정에서 화풍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일 수 있다. 실제로 초기에는 남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는 의재의 화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소송 김정현으로부터는 문인화를, 옥산 김옥진에게서는 산수화를 사사한 이후 한동안 그 영향권에 있었다. 특히 산수화는 스승인 옥산의 영향이 컸다. 갈필을 구사하는 의재와는 달리 옥산은 중봉을 활용하는 명확하면서도 둔중한 필법으로 남화의 새로운 화풍을 전개시켰다. 그는 당연히 스승 옥산의 화풍에 깊이 빠져들었다. 동시에 사생을 통해 남화를 강력히 지배하고 있는 관념성을 떨어내고자 노력했다.
실사를 거치지 않으면 안일하게 습관적으로 이전의 화풍이나 답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남화가 가지고 있는 관념성은 다른 시각에서 볼 때 정신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화풍이라는 점에서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어쩌면 개별적인 형식이라는 것도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형식미를 만들어내는 일이고 보면 관념성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기에 그렇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그 자신은 세속으로부터 절연되는 삶을 이상으로 여기는 남화가 성행하던 세상과는 다른 환경에 살고 있다는 현실적인 자각에서 비롯되었다. 정신적인 가치를 이어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자신이 보고 느끼는 감회 또는 심회를 그림 속에 투사시키는 일에 우선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인 풍경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현실이 아름답다고 해도 화폭에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마음속에 품었다가 그림이 갖추어야 할 요건에 합당하게 재해석해 내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었다.
산수화의 종국은 어떤 경우에라도 개인적인 심회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시각에 동조하게 된 것이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는 그 자신의 느낌, 즉 미적 감흥이나 주관적인 해석의 여지가 적기 마련이다. 이는 창의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작가에게는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이다. 그것은 곧 개별적인 조형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실경에 몰두하면서도 점차 청록산수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단 스승의 길을 답습하지 않고 자신만의 조형세계, 즉 개별적인 형식미를 모색하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실제로 여름날 자연과 마주하고 보면 나뭇가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온통 초록색 물결이건만 단지 수묵에 의탁하는 것만으로는 무언가 성이 차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수묵산수화로 화업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현실적인 요구에 응답하기로 결심하고 채색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청록산수는 말 그대로 청록색을 중심으로 한 산수화를 일컫는데 초록색으로 격조 있는 그림을 만들어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초록의 자연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색채 이미지를 물감으로 제대로 혼합해내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자칫하면 천박하기 십상이기에 그렇다. 그 또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초록색을 얻기까지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했다.
그러다가 하나의 해결책을 강구하게 되었는데, 수묵을 적절히 혼용함으로써 기품이 있는 초록색을 얻기에 이른 것이다. 수묵을 초록색의 배색으로 처리하게 되면 짐짓 가볍고 화려하며 촌스러운 이미지가 상쇄된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채색을 이용하게 되면서 청록산수를 중심으로 하게 되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색깔을 경원한 것은 아니었다.
사계절을 사생하는 그의 눈에 초록색만 들어올 리가 없기에 가을에는 당연히 울긋불긋 단풍 든 산수를 그렸고 봄에는 분홍빛 복사꽃의 화사함에 이끌렸다. 이렇듯이 채색화를 시작하면서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적인 관점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보다 구체적인 산수의 모양이 펼쳐지게 되었으니, 사실적인 이미지 및 분위기가 강조되었다. 초록의 자연을 묘사한 청록산수는 더욱 그랬다. 굳이 비유하자면 부분적으로는 자연주의 수채화에 근접하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깊이에서는 수채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역시 수묵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결과인데, 수묵과 초록색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그 투명한 발색은 신비로울 지경이다.
초기의 청록산수는 색채에 대한 감각이 익지 못한 탓인지 채도는 물론이려니와 순도가 떨어져 상큼한 초록색의 이미지를 살리지 못했다. 물론 자기만의 색채감각을 익히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을 거듭하고 있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수묵과 초록색의 비율, 농담의 차이, 채도 및 순도의 변화 따위를 주시하면서 모색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점차 투명하면서도 상큼하고 아름다운 초록색을 구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추상적인 표현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러한 일련의 새로운 기법 및 조형적인 모색 또한 납득할 만한 청록산수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가령 90년대 초의 ‘귀로’라는 작품은 화면의 삼분의 이 정도를 이렇다 할 형상이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단일 평면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단색평면은 아니다. 수묵과 채색을 혼용하여 수 차례 작업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갖가지 표정이 엉킨, 밀도 높은 추상적인 이미지를 얻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실험적인 추상적인 이미지는 결과적으로 청록산수에서 채색의 밀도를 높이는 데 유효한 결과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추상적인 이미지는 사실적인 형태 및 현실적인 공간의 압축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비록 구체적인 형상은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거기에는 무수한 물상의 존재성이 내포되어 있다. 실제의 자연풍경에서 원경의 경우 개개의 물상의 형태는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거기에 개개의 물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듯이, 그의 청록산수화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산을 그릴 때 윤곽선으로 단순화되는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덩어리처럼 보인다는 것은 추상적인 이미지로 처리되고 있음을 말한다.
나무와 바위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은 채 전체적인 형태만이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반적인 추상적인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깊이와 더불어 사실성이 느껴진다. 추상적인 풍경이 아니라 사실적인 풍경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 및 모색과정을 거쳐 그의 청록산수화는 개별적인 형식으로 완성된다. 일반적으로 청록산수는 수묵 필선을 기반으로 한 골격에다가 청록색채로 마무리하는 형국이었다. 이에 반해 그의 청록산수는 수묵과 청록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서로가 용해되어 하나의 색채 이미지로 합일한다. 이러한 특수한 관계로 맺어진 두 색채는 한 몸이 되어 거대한 산의 자태를 단순화할 수 있었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압축하는 방식으로 산의 형태가 단순화되면서 화폭은 갑자기 커진다. 이와 같은 청록산수의 조형적인 특징은 높고 우람하며 줄기를 많이 거느린 장엄한 산세를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따라서 화폭이 커지는 데 따른 위험부담이 없다. 오히려 화폭이 커질수록 청록산수는 더욱 그 진가를 발휘했다. 옆으로 길게 누운 산세를 화폭에 담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한 화폭이 필요하게 되므로 자연히 화폭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처럼 대형 화폭에 들어오는 산의 모습은 또한 원경의 구도일 수밖에 없으니, 세부가 생략되고 단순화되기 마련이어서 추상적인 이미지로 처리되는 그의 청록산수 기법은 여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그의 화풍은 일신한다.
청록산수를 포함하여 수묵담채에서도 완연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이다. 그 변화란 당연히 오랜 경륜에서 오는 세련미와 지적인 이해, 그리고 예민한 미적 감수성에 의해 형성되는 개별적인 형식미로 완성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수묵담채의 경우 이쯤에서는 남화의 전통적인 화풍이나 스승의 화법에서 벗어나고 있다. 실경산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기반으로 보다 세심한 관찰 및 그에 상응한 치밀한 묘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변화이다.
따라서 그의 조형적인 특징은 거꾸로 세부를 찾아 들어가는 듯한 입장을 보인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실경산수를 추구하는 화가의 경우 젊은 시절에는 극히 사실적인 묘사에 전념하다가도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형태를 점차 소거해 가는 까닭이다. 그는 이와 같은 일반성을 무시하듯 이전과 달리 보다 구체적인 형태묘사에 매료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그 답은 그의 최근 작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깊은 산 속에 자리한 너와집을 그린 작품에서 그는 확실히 이전과 다른 깊이에 도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먹의 농도도 짙어졌거니와 수묵이 한층 두터워지고 깊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먹빛깔이 짙어졌음에도 전혀 탁하지 않다. 아니,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맑아졌다. 구도에서도 깊은 산의 이미지를 살리면서 그 안쪽에 깊이 자리한 너와집의 이미지 및 그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산과 계류가 어우러지는 작품에서는 거의 직선적인 준법을 구사하면서 역시 사실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특히 적묵법을 활용하여 바위에 힘과 두께를 부여함으로써 암벽의 기세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최근의 수묵산수는 한층 치열한 작업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심중에서 만들어지는 산의 이미지보다 현실적인 산수의 이미지가 보다 더 강렬한 감동을 줄 수 있음을 강변하기라도 하듯 사실성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청록산수도 수묵산수화에서 실현되고 있는 사실적인 시각이 반영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청록색이 이전보다 한결 맑고 투명하며 선명해졌다. 아울러 수묵 또한 농도가 짙어졌는가 하면 명료해졌다. 그러기에 산의 윤곽선이 명확해지면서 힘이 실리게 되었다.
청록색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으리만치 빛나고 윤기가 흐른다. 수묵과 청록 색깔의 질감이 두터워진 탓이다. 한 점 티없이 맑은 하늘 아래 느슨하고 여유 있게 가로누운 장엄하고 장쾌한 산줄기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 위에 나룻배 하나가 어우러지는 청록산수 작품은 그가 도달한 이상경으로 보인다. 어디 그뿐인가. 역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바위들을 너그럽게 품에 안으며 나지막하게 가로누운 산 아래 눈부신 갈대꽃이 장관을 이루는 또 다른 청록산수화도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갈대꽃이 그처럼 화사하고 아름다운 하얀 색깔로 표현된 예는 일찍이 본 일이 없다. 이는 역시 수묵과 청록색의 그 맑은 기운이 하얀색을 투명하게 떠받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그의 수묵과 청록색은 이상적인 청록산수화의 색깔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실주의, 즉 실경산수로는 개별성을 실현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개인적인 해석의 여지가 좁은 탓이다. 다시 말해 개별적인 조형성을 통한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일구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더욱 치열한 사실묘사를 요구하는 실경으로 되돌아온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조형적인 해석의 문제보다 그림의 밀도, 깊이, 두터움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진실한 그림의 정서 따위를 미적 가치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는 데 있다. 이러한 조형개념의 변화는 근래의 청록산수 및 수묵산수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사실적인 그림을 통해 느끼는 감동이 훨씬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은 화가에 의해 제시되는 명명백백한 현실은 자연의 아름다움 그 자체일 수 있음을 반증한다. 그러나 그가 우리 앞에 제시하는 실경산수도 자세히 보면 많은 부분에서 그 자신의 미적 감각에 의해 재해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경산수란 그런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묘사한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성, 즉 실제와 다르지 않은 느낌을 주면 되는 것이다. 더구나 그림과 현실을 일치시킬 필요도, 그럴 수도 없기에 그렇다. 그림은 어디까지나 평면에서 이루어지는 인위적인 세계일 따름이다. 고희에 이르러 세상을 좀더 허심탄회하게 볼 수 있는 입장이 된 것이 아닐까. 그림에서 표현양식이나 형식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예술적인 가치를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지 모른다. 실제로 그런 듯싶다.
근래의 작품이 부드럽고 너그러워지고 여유가 느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제 그 자신에게는 조형적인 변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듯싶다. 그러한 인식은 더욱 견고한 조형성과 함께 내면적인 깊이로 자신의 작품을 이끌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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